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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영재의 필드에서 만난 사람 LPGA 신인왕 전인지

쑥스러워 말 안했지만 기부 많이해
기부처는 꼭 직접 확인한 뒤 결정

가방 사건으로 마음 더 단단해져
에비앙 최소타 우승도 그 덕분
결혼한 인비 언니 보면 부럽지만
골프에 집중, 전 서른 넘어 할래요


전인지(22)는 늘 웃는다. 샷이 엉뚱한 곳으로 빗나가도, 퍼팅이 홀을 훑고 나가도 잠시 뚱한 표정을 지을 뿐, 이내 밝은 미소로 돌아온다.

‘긍정의 힘’이 전인지에게 큰 선물을 줬다. 올해 처음 미국여자프로골프협회(LPGA) 투어 풀 시즌을 뛴 그는 신인상과 베어트로피(최저타수상)를 받았다. 지난 9월 에비앙 챔피언십에선 메이저 대회 최소타(21언더파) 기록을 세우며 우승을 차지했다.
전인지는 지난 3월 ‘러기지 게이트(Luggage Gate)’를 겪었다.

싱가포르 공항 에스컬레이트에서 굴러내려온 짐가방에 맞아 엉덩방아를 찧은 사건이다. 꼬리뼈를 다쳤고, 허리척추 5,6번 사이에 충격을 받았다. 짐가방의 주인이 라이벌 장하나(24·BC카드)의 아버지라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파장은 증폭됐다. 화해는 했지만 양측 모두 상처를 입었다. 그 후유증으로 8월 리우 올림픽에서 공동 13위에 그쳤다. 그러나 전인지는 “그 사건으로 인해 내면이 단단해졌다.



올림픽에서도 많이 배웠고, 그게 에비앙 우승으로 이어졌다”고 했다. 미국에서 돌아와 달콤한 휴식을 취하고 있는 전인지를 지난 8일 만났다. 그의 스윙 코치이자 멘털 트레이너인 박원 JTBC 해설위원이 운영하는 박원골프아카데미(경기도 분당 남서울컨트리클럽 내)에서였다.

-요즘 어떻게 지내세요.
"기말고사 준비에 정신이 없어요. 학교(고려대 국제스포츠학부)를 이번에 마치려고 7과목을 신청했거든요. 허리 부상 완치를 위해 5주간 클럽을 잡지 않기로 했어요.”

-베어트로피를 놓고 리디아 고와 맞대결을 한 마지막 날은 어땠나요.
“둘 다 초반엔 잘 안 풀렸어요. 후반 시작하면서 ‘우리 멋지게 버디 많이 해 보자’고 얘기했어요. 그런데 리디아가 10, 11, 12번 홀에서 3연속 버디를 하는 거예요.”

-그 때 마음이 좀 복잡하진 않았나요.
“전혀요. 어떻게 그 많은 사람들을 다 챙기나 할 정도로 리디아는 나이스한 사람이고, 함께 라운드 하는 게 즐거운 동료입니다. 그런 선수의 멋진 샷에는 진심으로 박수를 쳐 줘야죠.”

-그런데 마지막 세 홀 연속 버디를 했죠.
“18번 마지막 홀은 뒷바람이 강하고 그린이 워낙 딱딱했어요. 선택한 클럽을 믿고 자신있게 샷 했는데 공이 홀 앞에 잘 붙었죠. 넣고 싶다는 마음이 얼마나 컸겠어요. 그렇지만 ‘넣어야 돼’가 아니라 ‘어떻게 하면 넣을까’ 하는 쪽으로 생각을 끌고 왔어요.”

-에비앙에서 메이저 최소타를 쳤는데요.
“에비앙 대회가 열리는 곳을 굉장히 좋아해요. 지난해 컷 탈락한 뒤에 ‘내년에 온다면 가진 것 다 쏟아내 우승하고 싶다’고 생각했는데 그걸 이뤘잖아요. 마지막날 엄청난 부담감 때문에 18홀이 그렇게 길게 느껴진 적이 없었던 기억이 납니다.”

-에비앙 우승 뒤 프랑스어로 소감을 말했죠.
“프랑스 갤러러들께 진심을 전하고 싶었어요. 발음이 너무 어려워 경기 중에도 중얼중얼 연습했는데 그게 오히려 플레이에 도움이 됐어요.”

-뭐라고 하셨습니까.
“메다메 미슈, 메르시 보꾸(신사숙녀 여러분, 감사합니다). 그 담엔 까먹어서 영어로 했어요. 제가 코스 밖에서는 엄청 소심하거든요. 헤헤”

-미국에서는 영어 때문에 힘들었다면서요.응답 :“투어 초반에는 ‘영어 너무 힘들어요. 한국이나 일본에서 편하게 골프 하고 싶어요’ 하면서 운 적도 많았어요. 친구·선생님·부모님·할머니 등등 보고 싶은 사람들도 정말 많았어요.”

-스트레스는 뭘로 풉니까.
“술은 잘 못해요. 대신 뛰는 걸 좋아합니다. 나노블럭 만드는 데 빠진 적도 있는데, 몸을 쓰는 게 스트레스가 더 잘 풀리는 것 같아요.”

-인생 최고의 샷을 꼽으라면.
“2015년 두산매치플레이 챔피언십 때 홀인원을 했어요. 8번 아이언으로 높이 띄웠는데, 1cm 오차도 없이 날아가더니 원하는 곳에 떨어져서, 원하는 그림대로 굴러갔죠.”

-인생 최악의 샷은?
“최악의 샷을 실수 또는 실패한 샷이라고 한다면 전 그런 건 없어요. 2014년 하나외환 챔피언십 연장전에서 공을 물에 빠뜨렸어요. ‘어떻게 이런 샷을 했지’ 싶었죠. 그 뒤로 그 거리 샷 연습을 열심히 했어요. 그 덕분에 에비앙 때 100m 안팎 거리에서 한 번도 실수 없이 공을 그린에 올렸죠. 실패한 샷이 더 좋은 결과를 만들어냈으니 그건 실패가 아닌 거죠.”
.『성공이 성공이 아니고 실패가 실패가 아니다』라는 축구선수 이영표의 책 제목이 생각났다. 인생을 달관한 말 같아서 “노인이랑 대화하는 것 같네요” 농담을 했더니 “노인 아닌데. 스물세살인데…” 라며 정색을 했다. 내친 김에 ‘러기지 게이트’가 잘 마무리됐는지 물었다.
“아∼. (길게 한숨을 쉰 뒤) 스스로 정말 많이 단단해진 것 같아요. 어떤 힘든 일이 와도 털어내고 일어날 수 있는 사람이 됐구나, 나를 올바른 방향으로 끌고가기 위해 애쓰는 분들이 많구나 하는 것도 깨달았죠.”

-올해 상금만 20억원이 넘네요. 돈 많이 버니까 좋죠?
“네. 하하. 내가 번 돈이 의미있게 쓰이는 걸 볼 때마다 행복해요. 어디 가서 얘기하는 스타일은 아니지만 기부를 많이 하는 편입니다. 기부처는 제가 직접 보고 느낀 뒤에 결정합니다.”

-결혼에 대한 생각은?
“그 동안은 20대에 하고 싶었어요. 저랑 가장 친한 서희경(전 프로골퍼) 언니나 (박)인비 언니 보니 진짜 행복해 보였거든요. 근데 두달 전부터 ‘열심히 골프하고 즐겁게 살다가 서른 넘어서 해야겠다’로 바뀌었어요. 중요한 건 저랑 잘 맞고 배려심 있는 사람을 만나는 거겠죠.”

-너무 많은 걸 이뤘으니 앞으로 동기부여가 쉽진 않겠어요.
“아닙니다. 에비앙 우승 때 ‘내 인생의 꽃은 아직 피지 않았다’고 말씀드렸잖아요. 장기 목표를 향해 하나하나 이뤄가고 있습니다. 제가 어떤 선수, 어떤 사람으로 성장해 가는지 지켜봐 주시면 좋겠어요.”
주말 골퍼를 위해 골프를 잘할 수 있는 팁을 하나만 달라고 했다. 모범 답안이었지만 메이저 퀸 말씀이니 새겨들어야 했다. "리듬을 잃지 않는 것, 그리고 욕심을 부리지 않는 겁니다. 파5에서 투 온 하려다 망가지면 곤란하죠."

스포츠선임기자 jerr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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