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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의 한국인 미술가들-113] 현대 보자기 미술가 서원주

보자기 아름다움을 현대 미감(美感)으로 재창조
"다음세대·타민족과 함께 즐기는 현대미술 장르로…"

현대 보자기 미술가 서원주씨는 1964년 서울에서 태어나서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서양화과를 졸업했다. 1998년 실크 페인팅 아티스트로 미국으로 와서 현재는 버겐카운티에 살면서 작품활동을 하고 있다.

서씨는 한국 전통 보자기의 아름다움을 현대적으로 승화시킨 작품을 만들고 있는데 그 동안 한 차례의 개인전과 10여 회 그룹전, 다수의 국내외 크고 작은 공모전에 참가했다. 현재 뉴저지주 뉴왁박물관 등이 그녀의 작품을 소장하고 있다.

서씨는 어린 시절부터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했고, 성동여자실업고교에 들어가 미술 교육을 받으면서 기초를 다졌다. 어린 시절 미술 교사로부터 그림을 잘 그린다는 칭찬을 받은 것이 서씨에게 미술가로서의 인생을 살게 된 첫 번째 계기였다. 헌신적이셨던 미술교사의 가르침으로 미술대학에 진학하고 평생을 직업 미술인으로 살게 됐다.

하지만 대학에 들어간 뒤 서씨는 방황의 세월을 보냈다. 미술대 재학 시절 서씨에게 캔버스에 유채로 그림을 그리는 유화는 너무나 무겁고 버거운 매체였고, 예술은 더 더욱 풀 수 없는 미궁의 세계였다. “나는 왜 존재하며 예술은 나의 인생에서 어떤 의미인가?” 서씨에게 예술가의 길을 걷는다는 것은 도저히 해결할 수 없었던, 멀고도 먼 구도자의 길과도 같이 느껴졌다.



이러한 방황의 세월을 보낸 뒤 대학 졸업 후 직장생활을 하던 어느 날 서씨는 중요한 체험을 하게 된다. 서울시 충무로 근처 을지병원 안에 있었던 작은 박물관에서 보자기 유물 전시를 보게 된 것이다. 서씨는 당시의 상황을 이렇게 설명했다.

“오랜 세월 동안 빛 바랜 천연 염색 보자기 유물들이 한 눈에 들어왔고 그 특유의 따뜻함과 정의로움 그리고 다양하지만 사치스럽지 않은 매력에 압도 되었다. 그 옛날 여인들이 단지 물건을 아끼는 마음으로 한복을 만들고 남은 천을 활용하여 실용성 있는 뭔가를 만들었다고 하기에는 너무나 독특하고 다양한 색상의 배열과 창의적인 구도에 소름이 끼칠 만큼 감탄했다. 그 순간 나는 예술이란 바로 이런 것이라는 깨달음을 갖게 되었다. 예술이 너무나 거대하고 숭고해서 가까이 하려면 숨이 막혀 버릴 것 같았던 지난날 나의 예술에 대한 편견이 바뀌는 체험을 한 것이다.”

서씨는 그 일이 있은 후 이런 깨달음을 바탕으로 직접 보자기를 만들 때까지 긴 세월이 흘러 갔지만 그날 이후로 그의 마음 속에는 보자기가 항상 머물게 됐다.

현재 서씨는 한국의 전통 바느질 기법을 이용하여 현대 보자기 작업을 하고 있다. 원래 보자기는 옛 조상들이 한복을 만들고 남은 실크나 모시를 이용하여 한 겹 또는 두 겹으로 사각의 형태를 만들어서 물건을 싸서 보관하거나 운반 할 수 있도록 하는 기능을 가진 실용적 목적으로 만들어졌다. 그에 반해서 현대 보자기 작업은 실용성을 떠나서 전통 보자기의 아름다움을 현대적 미감으로 재창조하는, 현대 섬유예술의 한 작업형태다.

보자기를 만드는 바느질 기법으로는 공그르기, 홈질, 박음질, 시침질, 쌈솔, 께끼, 꼬집기, 사슬뜨기, 상침 등이 있는데 그 중 많은 부분에 공그르기와 홈질이 쓰이고 있다. 재료로는 한국 견섬유인 공단, 명주, 숙고사, 노방 등이 있고 마섬유인 모시와 삼베도 사용되고 있다. 서씨는 이러한 방법과 재료로 만들어지는 자신의 현대 보자기 작품에 대해 이렇게 설명한다.

“나의 작업은 내가 어디에서 왔고, 어디에 있고, 또 어디로 가고 있는지에 대한 내 안에 있던 오랜 물음에 대한 대답이다. 또한 나의 작업은 현대를 살고 있는 한 사람으로서 나의 뿌리와 근본을 보여 주고 있다. 또한 내가 작가로써 앞으로 해야 할 여러 가지 일들에 대하여 제시하고 있다. 나의 작업에서 내가 선택한 색들은 내 주변환경이고, 인생경험이고, 지식이고, 나의 언어이다. 나의 색들을 자세히 들여다 보면 그 안에서 내가 아는 세상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 실제로 나의 보자기 작업은 내가 이제까지 학교와 사회에서 배우고 체험한 회화, 디자인, 공예에 관한 다양한 나의 미술세계를 드러낸다. 보자기는 나의 모든 것을 바쳐서 만들어지는 창작활동의 결과물이다. 나의 보자기 작업은 전통예술의 계승이라기 보다 그것의 전통적 기법과 한국의 문화를 기반으로 한 내가 스스로 개척한 현대 섬유예술이라고 해야 할 것 같다.”

서씨는 이러한 예술관을 바탕으로 작품을 하면서 한편으로는 이러한 작품들 안에 자신의 어린 시절 감성과 체험한 이미지들이 담겨 있다고 말한다. 자신의 작품에 감수성 많은 어린 시절을 거친 한국 여인의 감성과 내면 의식을 담고 있다는 이야기다.

“나의 보자기 작업에서 볼 수 있는 사각의 외곽 형태는 어릴 적 내가 호기심과 동경으로 밖의 세계를 바라보던 창을 의미한다. 도시에서 태어나 먼 거리를 한번도 여행해 본 적이 없었던 나의 어린 시절, 나에게 있어서 밖의 세상은 때로는 아름답고 신기하기도 하고, 때로는 거칠고 두려운 미지의 세계였다. 또한 그것은 멀고 먼 다른 세상에 대한 막연한 동경이었다. 그것은 아마도 나와 같은 한국의 전통적인 가부장제도에서 자라난 여성들이 막연하게 관습의 틀로부터 자유로워지고 싶어하는 마음의 반영이었다고 생각한다. 또 내가 만든 저고리 작품들은 한국의 여인을 뜻한다. 저고리 곡선 형태는 안과 밖이 지극히 아름다운 여성을 의미한다.”

이러한 서씨에게 가장 중요한 사람은 할머니와 어머니다. 서씨는 아직도 어릴 적 한복을 이리 저리 꿰매고 손질하시던 외할머니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고 말한다. 서씨의 어머니 또한 맏며느리로 집안의 특별한 행사가 있을 때 한복을 자주 입으셨었다고 한다. 서씨가 어릴 적 가끔씩 어머니의 옷장을 열어 볼 때면 반듯하게 개어진 어머니의 한복을 볼 수 있었고, 그 안에 어머니 특유의 향과 따뜻함을 느낄 수 있었다고 한다.

서씨는 미국에 살면서도 항상 각가지 색의 한복 천 꾸러미를 볼 때마다 어머니의 한복과 어릴 적 어머니에 대한 향수를 기억하게 된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서씨가 대학에서 서양화를 전공했지만 붓대신 바늘을 쥐고, 물감대신 각가지 색의 천 자투리를 사용하는 보자기 미술을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는 이렇게 세가지로 설명했다. 첫째는 오래 전 전통 보자기에 매료되어 오랫동안 보자기 작업을 직접 해 보고 싶었었던 것이 중요한 이유고, 둘째는 실크페인팅을 통해서 친근해진 재료가 주는 편안함 때문이다. 셋째는 미국에 사는 한국인으로서 또는 작가로서 우리의 전통적 미감을 잘 보여 줄 수 있는 보자기 문화를, 세계의 많은 다른 민족들과 함께 즐길 수 있는 현대미술로써 정착 시키는데 보탬이 되고 싶기 때문이다.

이러한 바람과 함께 한편으로 서씨는 우리의 전통이 다음 세대에 계승되기를 원한다는 넓은 역사적인 시각도 이야기 한다.

“나는 다음 세대에게 자랑스러운 우리의 문화를 더 많이 보고 즐길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 주고 싶고, 세계의 다른 민족들과 함께 보자기를 통하여 아름다운 한국의 현대 문화를 함께 공유하고 싶다. 보자기 작업을 통해서 화랑이나 박물관 안에서뿐 만이 아니라 나의 가족과 친구들 그리고 이웃이 그들의 주변에서 항상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는 그런 예술을 하고 싶다. 국악이나 무용과 함께 하는 특별한 보자기 전시를 해 보고 싶은 것이 작가로서의 나의 작은 바람이다.”

박종원 기자 jwpark88@korea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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