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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0, 대한민국 하늘을 열다-25] 독립운동 지도자들-5 김종림

힘든 철도노동자 시절부터
한푼이라도 생기면 기부
조선에 고아원 건립도 주도

공군력을 앞세운 독립전쟁을 위해 비행학교 설립을 결심했으나 군자금 문제로 고민하던 노백린은 한 인물을 만나게 된다. 김종림(1884-1973)이었다.

대한민국임시정부 비행학교/비행대 창설을 가능하게 했던 인적 물적 자원은 재미동포들의 애국심과 경제력에서 나왔다. 특히, 재정적 지원을 도맡다시피 함으로써 현실적으로 비행학교/비행대 탄생을 가능하게 했던 인물이 김종림이었다.

송복 전 연세대 교수는 유성룡과 이순신의 만남이 임진왜란으로부터 나라를 구했다는 점에서 이 두 영웅의 만남을 '위대한 만남'이라 일컬었다. 독립전쟁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있은 노백린과 김종림의 만남 역시 또 다른 '위대한 만남'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김종림은 독립운동가이자 신문인이자 사회봉사자인 재미한인 백만장자였다. 임시정부 비행학교/비행대의 창설과 발전에 있어서 정부의 리더십을 대표한 인물이 노백린이었다면 민간의 리더십을 대표한 인물이 김종림이었다.



김종림은 젊은 나이에 빈손으로 미국으로 와 조국도 없는 가난한 이민자로서 제1차 세계대전이라는 난세를 타고 불과 10여년 만에 막대한 부를 축적한 풍운아였으며, 이를 바탕으로 임시정부의 비행학교/비행대 창설이라는 야심찬 계획의 실현을 가능하게 했던 장본인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업적에 대해서는 평생 철저히 침묵으로 일관, 그의 둘째 아들 김두원도 생전 인터뷰에서 "아버지의 사후에도 오랫동안 우리 형제들조차 아버지의 업적에 대해 전혀 몰랐다."고 안타까워했던 인물이다.

김종림은 함경남도 완평군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김도식이 교사였으니 당시 조선의 지식층이었으나, 김종림의 흥사단이력서에는 학력 부문 자체가 없으며 직업 부문은 19세가 되던 1905년 한 해 동안 고향에서 쌀농사를 지었다고 시작하는 것으로 봐서 고등교육은 받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김종림은 일제의 그림자가 짙어가는 조선에서 농부로 사는 것에 회의를 느낀 듯 1906년 하와이로 와서 사탕농사와 벼농사에 손을 댔다.(김종림의 흥사단 이력서, 1913년 10월 17일. 김종림은 흥사단 34단우) 그는 이듬해 정월 '앨러미다'(Alameda) 선편으로 샌프란시스코에 도착해 솔트레이크시티로 갔는데 이번에는 철도 노동자 신분이었다.

이후 각종 기록으로 확인되는 기간만 약 40년에 걸치는 김종림의 조국사랑과 기부와 봉사는 그가 자신의 삶조차 지탱하기 어렵던 철도노동자 시절부터 시작된다.

그는 그해 공립협회에 의연금 10달러를 기부한데 이어 이듬해 정월에는 공립신보의 신문기계 구입을 위해 30달러를 기부하는데 가난한 철도노동자로서는 거금이었다. 공립협회는 안창호가 1905년 캘리포니아주 리버사이드에서 창립해 후에 국민회로 통합된 민족운동단체이고, 공립신보는 이 단체의 기관지로서 후에 신한민보로 개명됐다.

김종림은 철도노동자의 삶을 청산하고 1908년 캘리포니아로 돌아와(공립신보, 1908년 6월 3일), 아세아실업주식회사 설립을 주도하는 것을 시작으로 독립운동가이자 사업가로서 면모를 서서히 드러내기 시작한다(공립신보, 1908년 10월 21일). 아세아실업주식회사는 주식태동실업회사의 전신으로 대한인국민회가 사업을 주관해 만주와 연해주에 독립군 근거지 육성을 목적으로 했던 사업체였다.(신한민보, 1909년 4월 28일)

이때까지만 해도 성공한 사업가는 아니었던 김종림은 독립운동을 위해 적으나마 돈이 있으면 돈을 내고 돈이 없으면 식품이나 자신의 시간을 내놓았으며, 이승만, 이상설 등과 함께 조선 내 고아를 돕는 구휼기관으로 평안북도 선천에 세운 대동고아원 건립을 주도하기도 했다.(공립신보, 1908년 7월 22, 11년 18일)

그는 언론을 통한 독립운동에도 깊은 관심을 보여 공립신보 사무원으로 노력 봉사도 하고 공립신보와 신한민보의 인쇄인을 맡기도 했고 후에는 국민보를 위해서도 헌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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