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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노은과 함께 떠나는 낭만의 여행]이탈리아 밀라노의 브레라 미술관1

나폴레옹, 수도원을 개조해 미술관 세워
라파엘로작 ‘성모의 결혼’ 등 명작 전시

이탈리아는 도시 자체가 미술관인 곳이 많다. 로마, 피렌체, 시에나, 산 지미냐뇨, 베네치아, 아시시, 오르비에토, 피사, 폼페이, 팔레르모 등이 모두 그런 도시다. 수준 높은 미술관으로는 로마의 바티칸, 피렌체의 우피치, 베네치아의 아카데미아, 그리고 밀라노에 브레라가 있다. 브레라 궁은 원래 가톨릭 예수회 소속의 수도원이었다.

그러던 것을 오스트리아 점령시대인 1776년 마리아 테레사가 브레라 미술대학을 설립했다. 미술대학은 현재 브레라 궁의 1층 전체를 사용한다. 유럽에서는 3대 미술대학 중 하나로 꼽히는 명문대학이다. 브레라 미술관은 1809년 8월 15일, 자신의 생일에 맞춰 이곳을 점령했던 나폴레옹이 세운 것이다. 그는 이곳에 제2의 루브르를 만들겠다며 압수한 이탈리아 미술품들을 모아 브레라 미술관을 개관했다. 그래서 미술관 정원에는 안토니오 카노바가 조각한 나폴레옹의 동상이 세워져 있다. 미술관이 위치해 있는 곳은 브레라 궁의 38개 전시관이 갖추어져 있는 2층 건물이다. 미술관은 브레라 미술대학생이나 마랑고니 디자인학교 또는 마랑고니 패션학교 학생들은 모두 무료입장이다. 개방적인 대학은 일반인도 원하기만 하면 수업에 참관할 수 있다고 한다. 단, 학생이 적은 수업에는 참석할 수 없다.

브레라 미술관에는 600여점의 작품이 전시돼 있는데 그 중 명작은 다음과 같다. 성모의 결혼(1504)은 라파엘로가 수련 기간에 그린 마지막 작품이다. 전승에 의하면 다윗 가문의 젊은이 중 나무 막대기에서 꽃이 피는 자가 마리아의 남편이 된다. 요셉의 뒤로는 선택받지 못한 젊은이들이 나무를 들고 있거나 나무를 꺽고 있다. 오직 나이 많은 요셉의 나무 막대기에서만 백합꽃이 핀 것을 볼 수 있다. 원숙과 지혜를 상징하는 턱수염의 요셉은 예수의 아버지가 하나님이라는 것을 강조한 것이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라파엘로는 구혼에 실패한 젊은이들 중 한 명에게 자신의 모습을 그려 넣었다. 뒤에 있는 건축물은 브라만테가 1502년에 완공한 ‘산 피에트로 인 몬토리오 성당’의 템피에토(작은 성전)다. 그의 스승이었던 페루지노도 같은 시기에 성모의 결혼을 그렸는데 작품은 프랑스 캉 미술관에 소장돼 있다. 두 작품을 비교해 보면 라파엘로는 인물들의 행동을 자연스럽게 그리고 페루지노보다는 공간을 더 잘 표현해 냈다.



안드레아 만테냐의 ‘죽은 그리스도’는 브레라 미술관의 작품 중 유리벽 속에 전시한 유일한 작품이다. 마치 루브르의 모나리자와 흡사한 풍경인데 그림의 크기(68cm X 81 cm)도 모나리자 보다 약간 더 크다. 만테냐는 꼼꼼한 작업 방식으로 인해 일의 진척이 늦다고 늘 의뢰인들의 불만을 샀다고 한다. 죽은 그리스도도 극단적인 단축법을 사용했지만 미술관 홈페이지에는 4년에 걸쳐 완성한 작품으로 적혀 있다. 그러나 어찌된 영문인지 죽은 그리스도는 의뢰인에게 전달되지 않았고 그가 죽을 때까지 간직하고 있었다. 그리스도의 머리를 인체에 비해 크게 그린 것은 멀리서도 그리스도의 얼굴이 잘 보이게 하려는 화가의 의도였다. 예수님 옆에서 슬퍼하는 사람은 성모 마리아, 막달라 마리아 그리고 성 요한이다. 후에 돈이 필요했던 만테냐의 아들이 곤자가 추기경에게 작품을 팔아 넘겼고 영국 등 여러 곳을 전전하다가 1824년 브레라 미술관으로 오게 됐다.

조반니 벨리니는 야코포 벨리니의 아들로 형 젠틸레와 함께 아버지 화실에서 그림공부를 했다. 후에 화가 안드레아 만테냐가 조반니의 누이와 결혼하자 벨리니 집안은 이탈리아 최고의 화가 집안이 된다. 처음에는 매부인 만테냐의 영향을 받았으나 이 작품을 계기로 벨리니는 매부의 영향에서 완전히 빠져 나왔다. 가슴이 찔리고 못자국이 선명한 예수의 손을 잡은 마리아의 모습은 슬픔 그 자체라 말할 수 있다. 허망한 눈빛으로 먼 곳을 응시하고 있는 사람은 성 요한이다. 작품 아래 중앙에는 그의 서명이 있는데 내용은 다음과 같다. ‘부어 오른 눈에서 신음 소리가 들릴 때, 조반니 벨리니의 그림도 눈물 흘리리’

알렉산드리아에서 설교하는 성 마르코는 347cmX770cm 크기의 작품으로 전시관(VIII) 한 벽을 모두 차지하고 있는 대작이다. 젠틸레 벨리니는 당시 베네치아에서 가장 권위있는 화가로 이름을 떨치던 화가였다. 1479년(50세)에는 정부의 요청에 의해 콘스탄티노플을 방문하고 몇 년간 술탄의 궁정화가로 일하기도 했다. 정복자 술탄 메메드 2세의 초상화(1480년, 런던 내셔널 갤러리)를 그림으로서 그는 더욱 유명해 졌다. 대작은 베네치아 정부가 젠틸레에게 의뢰하여 1504년부터 그리기 시작한 작품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젠틸레는 1507년 동생에게 작품을 완성해 달라는 유언을 남기고 세상을 등지고 말았다. 이에 동생인 조반니가 붓을 잡아 ‘알렉산드리아에서 설교하는 성 마르코’를 완성시킨 것이다. 공간과 웅장함을 모두 살린 벨리니 형제의 작품은 후배들에게 많은 영향을 끼쳤다. 그 중에는 티치아노와 조르조네가 있다.

여행팁: 브레라 미술관 입장료 10유로, 18세 미만 무료, 매 주 목요일(7-9월)오후 6시~10시 까지는 2유로, 매 월 첫 일요일은 무료 입장, 작품 해설 영어 오디오 5유로.

티켓 구입 등 관련 정보 웹사이트: pinacotecabrera.org/en



곽노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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