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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우리를 기쁘게 하는 것들

“엄마 나 심심해!” “그래 그럼 됐다. 심심한 게 행복한 거다. 그게 행복한 거란다.”

어릴 적 종종 심심해하는 나를 보며, 단 한 순간도 심심할 순간 없이 고단한 삶을 살았던 엄마는 나의 ‘심심’을 ‘행복이고 기쁨’이라 말했다. 누구나 같은 순간을 마주해도 자신의 관점에 따라 기쁨이라 될 수도 있고 슬픔이 될 수도 있다. 나는 어떤 감정의 글이든 마음에 들면 그게 곧 기쁨이다.

한때 안톤 슈낙의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 을 읽고 기쁨을 느껴, 나는 지금도 이 책을 기뻐하며 읽는다. ‘울음 우는 아이들은 우리를 슬프게 한다’는 첫 문장부터 사로잡혀 우는 아이를 보면 괜스레 슬퍼졌고, ‘달리는 기차가 또한 우리를 슬프게 한다’는 구절을 읽고 무작정 기차를 타고 싶어졌다. 또 ‘정원 한편 구석에서 발견된 작은 새의 사체 위에 이른 가을의 햇살이 떨어져 있을 때 대체로 가을은 우리를 슬프게 한다’는 구절에 가을의 슬픔을 음미하는 노력도 했다. 마음에 드는 글에 사로잡힌 모든 순간순간이 기뻤다.

다음으로 강신재의 단편소설 <젊은 느티나무> 의 평범한 첫 문장 ‘그에게서는 언제나 비누 냄새가 난다’에 꽂혀서 비누 냄새가 좋은 남자를 만나고 싶었고, 이 문장은 아직도 내게 가슴 뛰는 첫 문장으로 남아 기쁨을 주더니 이제는 탈모 방지 비누 냄새가 좋은 남자와 살아가고 있다.



또 유홍준의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는 나에게 우리 문화유산에 대한 자긍심을 세워줌으로써 기쁨을 선사했다. 역사의 연륜은 있지만 좁은 땅덩어리에 살고 있다는 내 오랜 자격지심을 한 방에 날려 주고, 우리나라 전 국토가 박물관임을 알게 해 줌과 동시에 나라사랑의 마음마저 일깨워 줬으니 이 얼마나 큰 기쁨이란 말인가!

“인간은 아는 만큼 느낄 뿐이며, 느낀 만큼 보인다. 사랑하면 알게 되고, 알면 보이나니, 그때 보이는 것은 전과 같지 않으리라”는 글귀를 마음에 항상 간직할 수 있음에 또 기쁘다.

사실 무엇보다 글을 읽음으로써 나를 가장 기쁘게 하는 것은 인생의 생활 계획표가 생기게 된 것이다. 이제는 바쁜 삶에서 조금은 비껴가는 나이가 되었으니 ‘지금껏 알고 있는 그곳에 가보고 싶고 글쓴이의 기쁨을 나도 느끼며 나를 위해 여유롭게 기쁨을 만끽’하고 싶다.

올해는 커다란 독수리가 날아다니는 잉카의 유적지 마추픽추에서 라마의 귀를 잡아당겨 보고 싶었던 기쁨을 드디어 맛볼 수 있을 것 같다. 이제는 어디를 가더라도 잠깐 머물지 말고 그곳에서 한 계절은 지내며 그곳 일부가 되고 싶다. 그곳에서 나의 소박한 눈웃음과 아무 요리나 창조적으로 해내는 솜씨로 기쁨을 흠뻑 나눠야지.

예로부터 글 읽는 소리와 자식들 밥 넘어가는 소리가 가장 듣기 좋다고 했다. 그렇다면 읽는 것을 좋아하고 먹는 것을 좋아하는 나는 세상에서 가장 보기 좋게 나와 남을 기쁘게 하며 살아가는 게 아닐까? 이처럼 분명 사람은 누구나 비밀처럼 하나쯤 숨겨놓은 기쁨이 있을진대, 내 주변의 그들에게 기쁨은 과연 뭘까? 남의 기쁨에 관심을 두고 온갖 상상을 하는 지금 이 순간도 내게는 기쁨이다.

박명희/버지니아 통합한국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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