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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불 아래서] 100번 애썼다면 100번 사랑한 사람

한성윤 목사/ 나성남포교회

세상을 향해 광야에서 외치던 소리가 있었습니다. 밝아오던 새벽의 아우성 'Ad Fontes'를 오히려 침묵으로 소리치던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아무도 듣지 않지만, 모두가 듣던 진실이 어둠 속에 반딧불처럼 춤추기 시작했습니다.

말씀은 하나님이 죽음을 통해서 죽음을 이기고 낳으신 아들이었고, 말씀의 아들들은 말씀이신 성자 하나님을 따라 아버지이신 하나님께로 한없이 돌아갔습니다. 그들은 정의가 그리우면 약하고 힘없는 자를 끝까지 도우시던 하나님께 나아갔고, 세상이 유혹하고 흔들면 변하지 않는 영원한 하늘의 아버지를 불렀습니다. 지치고 쓰러질 때면 죽기까지 사랑하신 그리스도를 붙잡았고, 세상에 고함을 치고 싶으면 가시 떨기나무의 불꽃처럼 타오르시는 주님을 보여주었습니다. 요동치던 세상은 이 도도했던 저항을 역사적 변혁의 한 장으로 기억하게 되었지만, 하나님의 말씀과 양심이 꿈틀거리던 이 시간은 세상에서 일어났으나 또한 하늘에 속한 시간이었습니다.

이제 우리는 광야가 아니라 도시에 살게 되었고, 새벽보다 어두움에 익숙해져서 전등만 있으면 그리 불편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본질보다는 현실이 중요하고 진리의 말씀보다는 좋은 직장과 아이들 학교 성적이 먼저 생각납니다. 교회는 성전으로 지어져 가기보다는 기념물로 지어져 가고, 서로가 연약한 죄인으로 성령 하나님께 거룩한 삶을 위해 나아가기보다는 죄를 구석방에 숨기고 악취 제거제만 뿌리기에 바쁩니다.

낙타의 혹은 물이 부족한 곳에서, 낙타의 긴 속눈썹은 모래바람 속에서, 낙타의 발굽은 모래 위를 걷는 데 필요한 것입니다. 동물원에 사는 낙타에게 이 모든 것들이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말씀을 가진 이유는 세상에 지지 말고 한없이 근원이신 하나님께 돌아가기 위한 것이요, 기도하는 이유는 세상이 아니라 하나님만을 의지하기 위한 것이며, 성례를 주신 이유는 우리의 거룩한 삶을 위한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자기만을 사랑하고 세상이 주는 것만 바라보고 있으니 이 모든 것이 무슨 쓸 데가 있습니까. 항상 배우나 진리의 지식에 이를 수 없습니다.



이제 하나님 나라 백성으로서 말씀을 따라 우리의 거룩이시요, 지혜가 되시는 하나님께 한없이 돌아가야 합니다. 100번을 실패하고 흙바닥을 움켜쥐더라도 101번을 일어나야 합니다. 100번 실패했다면 우리는 100번 애쓴 사람들입니다. 100번 애쓰셨다면 100번 사랑한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외로울 수 없습니다. 이렇게 뜨거운 우리가 함께 있으니까요.

sunghan08@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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