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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 광장] '핑크리본'의 불편한 진실

조한경 척추신경전문의

10월이 되면 미국 전역이 핑크색으로 물든다. 핑크리본을 앞세운 이른바 '유방암 인식의 달'이다.

유방암에 대한 관심을 환기하고 질병퇴치를 위한 각종 모금행사가 전국적으로 펼쳐진다. 300파운드가 넘는 거구의 풋볼 선수들도 핑크리본 장식과 핑크색 양말을 신고 행사에 동참한다. 인류의 질병 유방암을 퇴치하자는 공통의 선한 목적에 운동선수들은 물론 유명 연예인과 정치인도 기꺼이 참여한다. 1991년 시작된 이래 이제 하나의 문화행사로 자리 잡았다.

하지만 행사 방식은 유방암 퇴치라는 본래 목적과는 차이가 있다. 암 증가의 원인으로 지목받는 가공식품업체들과 연계해 홍보활동을 한다. 시리얼, 통조림, 탄산음료는 물론 샴푸, 화장품 등에 핑크리본이 찍혀 나온다. 그중 백미는 KFC의 핑크리본 치킨이었다.

두려운 질병이자 개인의 비극이었던 유방암이 기업주도의 마케팅 도구로 전락했다는 것이 퀸스대학 사만다 킹 교수의 지적이다.



비단 핑크리본만이 문제는 아니다. 각종 난치병을 내세운 자선단체는 수두룩하다. 작년 이맘때 쯤 연예인들을 필두로 소셜미디어에서 아이스버킷 챌린지가 성행했다. 루게릭병 퇴치를 위해 시작된 이 캠페인 역시 소셜미디어를 통해 급격히 퍼져나가 하나의 대유행이 됐다.

하지만 거기까지다. 아이스버킷 챌린지가 루게릭병 퇴치에 일조했다는 착각은 금물이다. 아이스버킷 챌린지로 모금된 돈의 액수는 약 1억 달러. 그 중 단 27% 만이 원래 목적대로 쓰였다. 기부금의 상당수는 재단 중역의 월급으로 쓰였다. 비영리재단 재정 투명성을 감시하는 국제기관인 ECFA에 의하면 원래 의도한 기부 프로젝트에 최소 80%가 기부돼야 신뢰할만한 비영리 기부활동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이러한 재정 사용처 논란은 자선단체를 넘어서 암학회로까지 이어진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미국암학회가 암 환자들을 위해 암 퇴치에 전념하는 단체라고 믿고 있다. 과연 그럴까? 대부분의 비영리단체가 그렇지만, 재정적 지원이 어디서 오는가를 살펴보면 정답이 있다.

미국암학회는 전 세계적으로 가장 부유한 비영리단체 중 하나다. 토지와 건물, 차량을 비롯한 총자산은 무려 23억 달러에 달한다. 이러한 방대한 규모의 조직을 운영하기 위해 미국암학회는 예전부터 대기업들과 밀접한 유착관계에 있었다. 당연히 가공식품의 유해성에 대한 경고는 엄두도 낼 수가 없다. 한때는 담배가 몸에 좋다고 홍보하기도 했던 역사를 가지고 있다. 목표는 고결하지만, 현실은 다르다.

미국암학회 회장 존 세프린의 2008년 연봉은 104만 달러가 넘었다. 여기에 활동지원비가 추가된다. 2008년 미국암학회의 예산은 약 10억4천만 달러였다. 이중 연구 지원비는 1억3천만 달러. 고작 10%를 연구에 사용했다. 반면 직원 급여로 약 4억9백만 달러가 지출됐다. 암을 퇴치하겠다는 사람들이 급여를 100만 달러씩 받아가지는 않는다. 그냥 사업이다. 기부금 받는 것이 전부인 마케팅 사업에 불과하다.

이런 단체에 기부하는 무분별한 기부행위가 지금과 같은 암치료의 실패를 영속화하는데 한 몫하고 있다.

이제 겨우 자리잡으려고 하는 기부문화에 찬물을 끼얹고 싶은 마음은 없다. 정치권을 시민의 눈이 감시해야 한다고 믿는다면, 의료계나 기부단체라고 예외가 될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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