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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아침에] 현충원 가는 길

권소희/소설가

하늘을 올려다 보았다. 비가 올 거라고 추측하던 일기예보가 맞을 모양이다. 엄마는 우산을, 나는 양산을 챙겨들었다. 우산을 갖고 갔다가 비가 오지 않으면 어쩔까 싶어서다. 비보다 햇빛이 더 싫다. 그늘이 없어서 현충원의 강렬한 태양열은 피할 곳이 없다.

인생을 일기예보처럼 미리 예측할 수 있다면. 그래서 신은 인간을 위해 예감이라는 감각기관을 따로 두었는지 모른다. 인간의 감각기관이 아닌 신이 준 예감은 때론 소름끼칠 정도로 정확하다.

"만약 전사라도 하게 되면 자기 약혼자는 미칠 거라고 말하던 안 소위는 폭탄으로 인해 그만 팔은 이쪽에 다리는 저쪽으로 흩어졌대."

대전 현충원으로 가는 길은 아버지가 남긴 이야기를 더듬는 시간이었다. 여든이 넘은 나이에도 총기가 여전히 남아 있는 엄마는 아버지에게 전해들은 이야기를 더듬더듬 내게 들려주었다.



구사일생으로 살아났던 아버지는 바로 눈앞에서 동료의 팔과 다리가 산산조각으로 공중에서 분해되는 광경을 목격해야 했다. 상상만 해도 안타까운 장면이다. 처음으로 인민군을 총으로 쏘아 죽였던 그 날은 잠을 잘 수가 없었다고 엄마에게 털어놓았던 아버지의 전쟁담은 언제 들어도 가슴을 조여들게 만든다. 적군이라지만 죽이지 않으면 자신이 죽임을 당할 수밖에 없는 병사에게 살인에 대한 죄책감이 왜 없겠는가.

사지가 동강나는 동료의 죽음을 보고도 어찌할 수 없었던 아버지의 가슴은 무슨 색이었을까. 삶과 죽음이 엇갈리는 순간을 경험한 군인에게 남겨진 것은 일곱 가지 색을 모두 섞어놓은 회색이겠지.

유가족으로 가득 찬 현충원은 슬픔과 어울리지 않게 화려하다. 만년 시들지 않을 것처럼 선명한 꽃들이 비석마다 꽂혀있다. 가족끼리 둘러앉은 모습도 참배가 아니라 소풍 온 것처럼 즐거워 보인다.

현충일은 예의를 갖춰야 할 기념일이지만 슬픔에 젖을 일은 아니다. 국가를 위해 목숨으로 충심을 보여준 영령들에게 산 자가 보여줘야 할 예는 감사의 마음일 것이다.

집으로 돌아갈 버스를 타야 하는 시각에 맞춰 비가 흩뿌리기 시작했다. 거짓말처럼 일기예보가 적중했다. 방수가 된 양산을 챙겨들었으니 비 맞을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된다.

약혼자를 염려하던 안 소위의 죽음을 사는 동안 내내 떨쳐버리지 못했을 아버지의 안식을 빌었다. 아버지의 죄책감을 전부 이해할 수는 없지만 꽃으로 가득 찬 이 화려한 묘지에 안장된 아버지는 분명 먼저 전사한 동료들을 찾아가 위로해주었을 것이다.

나는 혼령이 있다고 믿고 싶다. 혼령이 된 아버지가 일 년에 한 번 뿐일망정 찾아오는 나를 기다렸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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