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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맥 세상] "의사들은 어떻게 죽을까"

켄 머레이(Ken Murray)는 25년 간 가정의학과 의사와 USC교수를 지낸 은퇴 의사다. 그는 사촌형의 죽음에 대해서 아래와 같은 글을 남겼다.

"몇 년 전 내 사촌형 토치에게 발작이 왔다. 폐암이 뇌로 전이된 것이다. 여러 명의 전문의를 소개했다. 그러나 우리는 그의 상태로 볼 때 공격적인 치료, 예를 들어 화학항암요법을 받기 위해 1주일에 3~5번 병원을 찾더라도, 4개월 정도밖에는 살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결국 토치는 뇌부종을 다스리는 약만 복용하고 다른 어떤 치료도 거부했다. 이후 그는 우리 집으로 이사를 왔다. 우리는 8개월 동안 많은 것들을 즐기며 살았다.

토치는 디즈니랜드도 처음 갔다. 집에서는 내가 해주는 요리를 먹으며 스포츠 중계를 즐겼다. 병원밥 대신 맛있는 것을 마음껏 즐기게 됐다. 심한 통증도 없었고 기분은 항상 최고였다. 하루는 그가 일어나지 않았다. 토치는 3일간 코마상태로 잠을 자다가 세상을 떴다. 8개월 동안 의료비용은 약값 20달러가 전부였다. 토치는 삶의 길이가 아니라 질을 원했다. 만약 최고의 말기치료가 있다면 그것은 존엄사다. 나도 임종 단계에서 어떤 요란한 조치 없이 굿나잇으로 점잖게 떠날 것이다. 나의 동료의사이자 멘토 찰리(말기 췌장암 치료를 거부하고 가족과 함께 수개월을 보내다 집에서 사망)처럼, 토치처럼."

이 글은 켄 머레이가 블로그에 '의사들은 어떻게 죽는가-우리들과는 다르다'라는 제목으로, 타임지에 '왜 의사들의 죽음은 쉬운가'란 제목으로 게재했던 글의 마지막 부분이다. 머레이는 이 글을 통해 공격적인 말기치료(End-of-life care)의 허무함과 고비용, 그리고 최악의 죽음이 환자와 가족에 주는 고통에 대해 정면으로 문제를 제기했다.



상당수 의사들은 말기치료 과정에서 환자들이 겪는 고통과 미미한 생명연장 효과를 현장에서 목격한 사람들이기에 정작 자신들은 그러한 말기치료를 거부한다는 것이다. 일반사람들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살려달라고 의사에게 매달리지만 의사들 자신들은 점잖은(gentle) 죽음을 택함으로써 일반인들과 다른 모습을 보인다고 머레이는 쓰고 있다.

그가 의사로 근무할 때 "내가 만일 저런 (말기)환자가 된다면 나를 죽여주게"라는 속삭임을 많이 들었다고 한다. 어떤 의사는 아예 목걸이나 문신으로 응급소생처치 거부를 의미하는 'NO CODE'를 몸에 부착하고 있기도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처럼 무의미하고 고통스러운 죽음으로 이끌게 되는 말기치료가 계속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머레이는 환자, 의사, 시스템 모두에게 책임이 있다고 지적한다. 환자와 가족들은 결과와 관계 없이 '무조건 살려달라'고 의사에게 매달리고, 의사들은 그들의 요구를 거부하기 어렵다는 것. 또 병원 가이드라인에 따라 치료를 하지 않으면 소송을 당할 가능성이 있다는 점, 그래서 환자와 가족에게는 말기치료의 참혹한 진상에 대해서는 잘 말하지 않고 치료로 들어가는 게 무난하고 수익도 발생하기 때문이라고 머레이는 고백하고 있다.

머레이는 말기치료 거부를 미리 밝혔던 잭이라는 사람이 뇌졸중으로 혼수상태가 되었을 때 가족과 상의해 생명연장장치를 멈춘 적이 있다. 그 환자가 의사표시를 미리 하지 않았다면 아마 몇 주 더 고통 속에 연명시키고 50만 달러의 의료비가 청구되었을 것이라고 의료계 현실을 꼬집었다.

'유사암으로 요절하는 사람, 진짜암이어도 장수하는 사람'이란 책을 쓴 곤도 마코토 의사도 같은 메시지를 전한다. "많은 의사들은 투병하는 말기환자의 괴로운 모습을 눈앞에서 지켜본다. 항암제는 의사가 자신과 가족에게는 사용하지 않지만 다른 환자에게는 권하는 치료 중에서 가장 흔한 치료일 것이다."

얼마나 오래 사느냐보다 어떻게 사느냐를 택하는 것이 진정한 웰다잉(Well-Dying)이 아닐까.


이원영 /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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