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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스푼 굿피플] 올라 치니또(Hola Chinit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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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싱턴 중앙일보]    기사입력 2017/11/10 14: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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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된 노동’을 의미하는 쿨리(苦力, coolie)는 19~20세기 초에 중국계, 인도계를 중심으로 한 아시아 출신 노동 이민자를 지칭하는 말이다. 반인륜적인 흑인 노예제도가 폐지된 후 구미 열강의 많은 식민지와 미국에서 노동력이 절대적으로 부족했다. 이에 영국은 노예를 대신하여 더럽고, 위험하고, 힘든 일에 종사할 단순 노동 인력이 필요했다. 식민지였던 인도 대륙에서 최하층 빈민들을 납치 혹은 회유하여 인생 막장 같은 고역의 현장으로 송출했다. 또 아편 전쟁에서 승리한 후 광둥성, 복건성을 중심으로 샤먼, 마카오 등지에서 가난한 중국인을 모집했고, 세계 각지에 산재한 대영제국의 식민지들과 미국, 쿠바 등지로 보내 노예처럼 혹독한 노역을 감당케 했다.

노예 상인이 ‘바라꼰’(Barracon, 흑인 노예 감옥)이란 모집 기관을 설치한 후 부유한 무역상이 구인 광고하는 것처럼 꾸민다. 극심한 기아에 시달리던 중국인을 ‘로스 꿀리스’(Los Culis, 계약노동자)’로 대우할 것처럼 유혹한다. 흑인 노예와 쿨리의 다른 점은 노예 주인과 고용 계약서 작성 여부의 차이가 있었을 뿐이었다. 명목상 꾸며진 노동 계약서는 흡사 노예 문서처럼 독소 조항이 가득 차 있었다. 고용 기간은 8년이고, 고용주의 지시에 철저히 따라야 하며, 농장, 탄광, 부두 건설, 대륙 횡단 철로 건설 등에 투입되어 목숨이 끊어지기 전까지 노역에 투입되어야 했다. 게으름을 피우거나, 반란, 도주할 시 체벌이 따랐고, 중도에 계약 해지를 할 수 없었던 악법이었다.

감언이설에 속은 10만명의 쿨리가 캘리포니아에 도착했고, 미 대륙을 횡단하는 철도 건설노동자로 투입됐다. 태평양과 대서양을 잇는 82km의 파나마 운하가 1914년 완공되었을 당시 운하 건설에 투입됐던 노동자 중 말라리아, 황열병, 사고로 사망한 2만7500명 대부분이 쿨리였다. 1847년~1870년까지 쿠바로 송출된 쿨리는 14만3000명이었으나, 6개월여 항해 끝에 1만7000명이 부족한 식량, 열악한 환경 탓에 배에서 죽었고 바다에 던져졌다. 그나마 목숨을 부지한 쿨리는 아바나에 도착 즉시 나체로 경매장에 전시되었다. 고용주에 팔린 후 족쇄에 묶여 노동 현장으로 직행한 저들의 75%가 계약 기간 8년을 다 채우지 못하고 죽었고, 평균 노동 수명은 5년에 불과했다. 탈출을 시도했거나 반란을 일으킨 콜리에겐 일벌백계의 참혹한 형벌로 다스렸다.

슬프고 고달펐던 쿨리의 세대가 다 지난 후 그 후예들이 중남미 곳곳에 흩어져 살고 있다. 그 땅의 언어를 모국어처럼 말하고, 현지인과 결혼하여 가정을 이뤘으며, 근면 성실한 성품으로 나름대로 성공적인 정착을 한 중국인에 대한 차별과 멸시는 남아있다. 행색이 초라하면 ‘치노’(중국인) , ‘치니또’로 낮춰 부르고, 단아하면 ‘하뽀네사’(일본인)냐고 반색한다. 미국 다음으로 세계 제2의 경제 국가로 부상한 치노를 여전히 무시하는 저들의 어리석음의 도가 지나치다. 굿스푼이 정성껏 건네는 점심 도시락을 받으며 “올라 치니또(Hola Chinito)” 무례한 인사로 답례한다.

▷문의: 703-622-2559 / jeukkim@gmail.com

김재억 목사/굿스푼선교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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