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별 뉴스를 확인하세요.

많이 본 뉴스

광고닫기

기사공유

  • 페이스북
  • 트위터
  • 카카오톡
  • 카카오스토리
  • 네이버
  • 공유

[윌셔 플레이스] '턴! 턴! 턴!'의 인생

피트 시거(1919~2014)는 한국의 진보 좌익 사이에서도 '레전드'로 통한다. 1970~80년대 민주화 시위현장에서 '우리 승리하리라(We Shall Overcome)'는 '애국가'처럼 불리지 않았던가.

반전 운동가이자 저항적 포크의 거장으로 기성체제에 대한 저항심을 일깨워줬다는 시거. 한국전 즈음 '매카시 광풍'이 불 때는 공산주의자로 찍혀 방송출연금지를 당하는 수모를 겪기도 했다.

특히 투기금융자본을 비판하는 뉴욕의 '월스트리트 점령' 집회에 지팡이를 짚고 참석해 눈길을 끌었다. 죽음의 병상에서도 불의와 타협 않는 꼿꼿함을 보여줘 후대에 깊은 인상을 남겼다.

우리에겐 또 하나 잊지 못할 추억이 있다. 외국가수로는 처음으로 아리랑을 소개한 인연이 있어서다. 그것도 1950년, 세상이 코리아의 존재를 모르고 있을 때.



노랫말의 후렴은 우리가 알고 있는 것과 조금 다르다. "내 고향 삼천리 금수강산에/ 언젠가는 평화와 풍요가 꽃피우리." 400여 년 전 누구인지는 모르지만 어느 대역죄인이 처형장으로 끌려가며 불렀던 노래라는 설명을 달았다. 죄를 지었을망정 자신이 조국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또 조선이 얼마나 아름다운 나라인지를. 그래서 이승을 떠나기가 너무 힘들다는 내용도 덧붙였다. 시거는 아리랑이 일제 강점과 분단의 아픔이 서린 포크송이라며 직접 영어로 번역해 불렀다.

미국가수가 불렀는데도 애잔하게 들리는 건 왜일까. 아마 '한'을 가슴 한 켠에 담아내 그렇지 않나 싶다.

시거가 남긴 많은 작품 가운데 '불후의 명곡'으로 꼽히는 노래가 있다. '턴 턴 턴(Turn! Turn! Turn!)'이다. "모든 것은 변하고, 변하고, 또 변합니다/ 계절이 바뀌듯이 변하고, 변하고, 또 변합니다/ 하늘 아래 모든 것은 변하지요/ 태어날 때가 있으면 죽을 때가 있고/ 심을 때가 있으면 거둬들일 때가 있다지요."

신앙심이 깊은 사람이라면 금세 성경구절을 떠올릴 것 같다. 구약의 전도서 아닌가. '헛되고 헛되다'로 시작하는 전도서는 지혜문학의 백미로 꼽힌다. 셰익스피어는 물론 링컨과 같은 위인들도 종종 인용해 비교적 친숙하게 느껴진다.

저자는 다윗의 아들인 솔로몬. 온갖 부귀영화를 다 누렸다는 그가 살아보니 세상만사 헛되다는 걸 깨달았다는 게 줄거리다.

이어지는 가사는 이렇다. "사랑할 때가 있으면 미워할 때가 있고/ 전쟁이 일어날 때가 있으면 평화를 누릴 때도 있지요." 여기까지는 전도서 구절을 그대로 베꼈다. 시거는 그런다음 이런 말을 덧붙였다. "평화는 언제라도 늦지 않지요."

그는 작곡은 본인이 했지만 가사는 바이블이 출처라고 솔직히 털어놨다. 자기가 손을 댄 건 '턴 턴 턴'과 마지막 평화와 관련된 구절 뿐이라는 것. 노래가 '평화'에 방점이 찍혀있다는 걸 알 수 있겠다. 아리랑을 노래한 가수답게 오늘의 한반도 사태의 해결책을 이미 반세기 전에 제시했다고 해야할지.

전도서엔 솔로몬이 또 다시 하늘 아래서 벌어지는 일을 살펴 봤다는 내용이 나온다. "발이 빠르다고 달음박질에서 이기는 것도 아니고/ 힘에 세다고 싸움에서 이기는 것도 아니며/ 지혜가 있다고 먹을 게 생기는 것도 아니고/ 슬기롭다고 돈을 모으는 것도 아니며."

솔로몬이 내린 결론은 누구든 때가 되어 불행이 덮쳐오면 당하고 만다는 것. 달리기 선수라고, 힘이 장사라고, 돈이 많다고, 또 명문대학을 나왔다고 오만을 떨지말고 하찮은 작은 것일지라도 감사하며 살라는 뜻이 아닐까. 존재한다는 것 자체가 축복일진대 고맙고, 고맙고, 또 고맙고. 생스기빙데이를 맞아 느끼는 소회다.


박용필 / 논설고문



Log in to Twitter or Facebook account to connect
with the Korea JoongAng Daily
help-image Social comment?
lock icon

To write comments, please log in to one of the accounts.

Standards Board Policy (0/250자)


많이 본 뉴스





실시간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