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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종수 칼럼] 대통령 전용기

지난해 말 한국에서 개봉된 ‘걷기왕’이라는 영화를 최근에 볼 기회가 있었다. 심지어 경운기를 타도 지독하게 멀미를 하는 17세 소녀 만복은 집에서 왕복 4시간 거리에 있는 학교를 매일 걸어 다닌다. 우연한 기회에 만복이가 육상경기 종목인 ‘경보’에 재능이 있음을 발견하고, 육상부의 선배 수지와 함께 전국체전 출전을 위해 피나는 노력을 하며 진정한 자아를 찾아간다는 10대 소녀의 성장 드라마.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멀미는 누구나 한다. 또 멀미엔 장사 없다는 말도 있다. 트라팔가르 해전에서 스페인-프랑스 연합함대를 무찌른 영국의 넬슨 제독도 뱃멀미를 했고, 아라비아 로렌스도 낙타를 탈 때마다 멀미를 했다고 한다.

멀미하면 나에게도 할 이야기가 있다. 멀미가 심한 집사람 때문에 우리 부부가 항공권을 구입할 때마다 반드시 신경을 써야하는 것이 좌석의 위치다. 우리에게는 좌석이 비행기 날개 앞쪽이어야 한다는 불문율이 있다. 그런데 앞좌석에는 일반적으로 프리미엄이 붙기때문에 추가비용이 드는 것이 보통이다. 지금은 멀미를 하는 일이 드물지만 그 고통을 진작부터 경험을 통해 잘 아는 나는 프리미엄 따위는 상관할 바가 아니다. 자동차를 드라이브할 때도 집사람은 앞 조수석에 앉아야 되고 크루즈 여행은 일찍이 포기한지 오래다.

내가 초등학교도 들어가기 전이니 지금 생각하면 까마득한 옛이야기다. “얘가 나 닮아 멀미 체질인가 봐.” 오촌 당숙 아저씨 결혼이라고 서울 나들이 길에 기차 안에서 어지럽고 메스껍다는 나를 보고 하신 어머니 말씀이다. 그때는 멀미 체질이 무슨 뜻인지 몰랐지만 그 후로는 기차나 자동차를 타는 일이 버겁게 여겨지고 늘 걱정이 앞서곤 했다. 나이 들며 그런대로 기차에는 익숙해졌지만 자동차나 버스는 아니었다. 인천에서 서울 가는 장거리 대절 택시 안을 더럽혀 운전수의 눈살을 찌프리게 한 일도 있고 대학 입시 날은 아예 서울역에서 신촌까지 걸어 간 일도 있다. 그때까지 배나 비행기를 타본 일이 없었으니 뱃멀미나 비행기 멀미는 당해보지 않았다.



지금 여의도는 상전벽해 되어 흐려저 가는 기억을 더듬고 빛바랜 흑백사진을 들춰야 그 옛 모습을 가름해 볼 수 있지만 그곳에 공군 비행장이 있었던 때가 있었다. 1963년 대학 졸업 후 공군 장교로 임관된 나의 첫 근무지이기도 하다. 여의도 공군기지를 이착륙하는 모든 비행기의 ‘젖줄’울 담당하는 기지 유지보급소(POL) 소장이 내 공식 직함이었다. 선임 하사에 부하 사병도 여럿 있었다.

어느 날 전부터 안면이 있던 파일럿 K소령이 당시 근처 대방동에 있던 공군본부에서 모 대령과 같이 비행장에 나타났다. 새로 미국에서 들여온 대통령 전용기를 시험비행한다는 것이다. 대통령의 국내 순시를 위한 6인승 경비행기였다. 전에도 내게 무척 친절하던 K소령의 권고와 배려로 새까만 소위인 내가 그 비행기를 시승할 수 있는 영광을 얻었다. 조종간은 대령 분이 잡았다. 그 분이 대통령 전용기 담당 조종사였던 것 같다.

우리는 서울시와 그 외곽을 돌았다. 거기까지는 좋았다. 약 한 시간쯤 비행 후 착륙할 즈음에 일은 벌어졌다. 내게 구토증상이 나타난 것이다. 시험비행이라 비행기의 성능을 테스트하기 위해 급작스런 변속과 방향전환 등을 자주 시도했던 탓이 아닌가 한다. 부여잡을 봉투도 없는 상황에서 죽자 사자 침을 삼키며 이를 악물고 버텼다. 비행기가 착륙하고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나는 활주로에 오바이트를 쏟고 말았다. 천만다행으로 대통령이 그 전용기를 시승하기도 전에 그 비행기를 더럽히는 일은 피할 수 있었다. 두 선임 조종사 분들이 그때 내게 무슨 말을 했는지는 전혀 기억에 없다. 상당히 동정적이고 위로의 말이었던 것 같다. 반 세기도 훨씬 전의 그 일을 생각하면 지금도 등골이 오싹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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