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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 그레이 칼럼] 워싱턴 DC의 임시 거주자

정치가의 1번지로 반듯한 미국의 수도 워싱턴 DC 중심가에서 잠시 살면서 남부생활과는 다른 새로운 맛을 즐긴다. 도시 중심에 자리잡고 웅장한 연방정부 건물들을 들러리로 세우고 온갖 미술관과 박물관, 기념관을 총 집결시켜 놓은 국립공원인 내셔널 몰은 포토맥강변처럼 나의 좋은 산책로다. 미국 전역과 세계에서 찾아온 관광객들로 늘 붐비지만 군중속의 고요도 즐길 수 있게 넓다. 예전에는 다양한 미술관이나 박물관을 신나게 찾았지만 이제는 맑은 하늘과 신선한 푸름의 오픈 필드가 평화와 여유가 있어 좋다. 더욱 곧게 솟아오른 워싱턴 모뉴먼트의 위용은 수도의 심장을 느끼게 해준다. 곳곳에 있는 기념동상이나 기념비 또한 짧지만 굵은 미국의 역사를 보여준다.

90도가 넘는 후끈한 날씨에 헉헉거리며 남편과 내셔널 몰을 한바퀴 돌았다. 2차대전 기념비를 지나 링컨 기념관으로 가는 길에 남편이 물었다. “오리들이 다 어디 갔어?” 나의 대답은 간단했다. “죽었어요” 며칠 전 링컨기념관과 워싱턴 모뉴먼트 사이의 연못에서 오리새끼들이 떼죽음을 했다는 뉴스를 들었다. 이끼로 인한 곰팡이가 원인이었다더니 연못의 물을 빼내고 해독 작업이 한창 벌어지고 있었다. 바닥을 들어낸 연못이 마치 더위로 숨찬 우리처럼 지쳤다.

이어서 월남전 기념비, 링컨 기념관, 한국전 참전용사 기념비를 죽 돌며 전쟁의 희생자들에게 추모와 경의를 표했다. 링컨 기념관에서 워싱턴 모뉴먼트를 향하면 가슴이 확 터이면서 든든하다. 직사각형 넓은 연못에 반사된 기념탑은 강직한 미국의 기개다. 특히 ‘잊혀진 전쟁’으로 알려진 모국에 참전한 용사들의 동상앞에서는 고개가 숙여진다. 먼 동양의 작은 나라 내전에 투입된 미군과 유엔군의 사상자가 엄청난 숫자다.

이곳에 머무는 날들이 계속되면서 관광객이기 보다는 지역인을 닮아간다. 손바닥만한 앞뜰의 아름다운 꽃과 정원수에 열심히 물을 주는 이웃과 인사하고 153년 전에 지은 성당은 본당처럼 안온하다. 맛있는 프랑스 제과점을 알고 이웃에 있는 멋진 커피숍들을 다 꿰뚫고 있다. 어느 골목 안에 있는 그림같은 커피숍의 맛있는 빵과 커피를 찾아 조금 멀어도 주저없이 찾아간다. 가끔 요란하게 사이렌을 울리고 지나가는 응급차들의 소음도 익숙해졌다.



매일 식품점에 가서 신선한 재료를 사는 재미도 쏠쏠하다. 남부에서 물건을 사면 공짜로 주는 비닐봉투를 이곳에서는 하나에 5센트씩 지불한다. 환경보호와 재활용 활발히 하는 지역에 적응해서 쇼핑백 하나를 접어서 숄더백에 넣어 다니는 버릇이 됐다. 어제는 재활용 옷과 책들을 기부하러 들린 사회봉사 단체에서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Marta’s Table’은 가난한 아이들에게 음식과 휴식처를 제공하려고 사회학교수인 Veronica Mas와 예수회 신부 Horace McKenna가 합심해서 1980년에 시작한 사회봉사 단체다. 해마다 도움이 필요한 DC시민 2 만명에게 건강한 식품과 의복, 교육을 돕는 막강한 단체로 성장했다.

특히 지난 주말은 성적 소수자 LGBT 축제가 있었다. 토요일 퍼레이드는 못봤지만 일요일 축제는 봤다. 7번가의 펜실베니아 에브뉴에서 국회의사당까지 교통을 차단한 대로에 민간단체와 정부부처의 각종 텐트가 죽 늘어서서 성적 소수자들의 동등권을 축하하고 후원했다. 전국에서 찾아온 거대한 규모의 파티였다. 거리를 메운 수 많은 남녀노소 거의 대부분이 무지개색상의 옷과 장식, 깃발을 들었고 대형 무대에서 공연하는 음악에 맞춰 흥겹게 춤췄다. 더러 보기 민망하게 옷을 벗은 사람들이 있었지만 다정하게 손을 꼭 잡고 양산을 쓰고 가는 두 남자의 아름다운 분위기에 혹했다. 오래 함께 사는 사람들은 닮는다고 하더니 그들도 같았다. 손을 잡고 걷는 많은 쌍들이 비슷비슷하게 닮았다. 사랑은 아름답다. 활발하고 에너지 넘치는 군중들 속에 우리 부부는 물에 뜬 기름이 아니라 기름에 빠진 물이었다.

재미있게도 거리를 메운 보행자들 사이에 노인들은 별로 없다. 남편은 딸네 가까이 있는 피트니스 센터에 조인했는데 갈 적마다 모두 젊은이들이고 노인은 고사하고 장년층도 보이지 않는다. 그러니 자연히 젊은 기운을 얻는다. 대도시라도 자연과 가까이 살수 있는 환경과 어디든 가고 싶은 곳을 발로 걸어서 가는 DC생활이 좋다. 넓은 초원의 야생화를 좋아하지만 작은 앞뜰에 옹기종기 모여있는 꽃 몇 송이의 향기에 취하고 뒷길에서 만난 버드나무가 정겹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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