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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종수 칼럼] 골프친구

30년도 더 된 이야기다. 내가 아칸소대학에서 가르칠 때 한동안 골프에 푹 빠져 있을 때였다. 오전 강의를 마치고 골프장에 나가 골프백을 차 트렁크에서 내리고 있었다. 난데없이 웬 골프카트가 멈춰 서더니 운전자가 나를 보고 혼자냐고 해서 그렇다고 했더니 자기와 파트너로 치지 않겠느냐고 물었다. 그와 내가 골프친구가 된 사연이다.

그는 2차 대전 때 미 해군 함정에서 취사병으로 근무했다고 하니 나보다는 15년 가량 연상이다. 얼굴에 흰 수염이 더부룩하고 뚱뚱하지는 않으나 눈에 띄게 아랫배가 불룩 튀어나온 친구였다. 모자를 벗었을 때 보니 대머리였다. 후에 차차 알게 된 일이지만 우리집에서 멀지 않은 같은 서브디비전에 사는 이웃이었고 은퇴하기 전에 보험회사에서 일했다고 했다.

크지 않은 체구에 백스윙도 짧아 드라이버 샷 비거리는 얼마 되지 않았으나 그는 치핑과 퍼팅의 달인이었고 그를 이기기는 어려웠다. 퍼팅 그린 근처에서의 그의 플레이는 프로 수준이었다. 자기의 티오프 비거리가 짧은 것에 대해서는 늘 “You drive for show, but putt for dough”라는 말을 내세웠다. 드라이브 샷은 과시용이고 퍼팅 잘해야 내기 골프에 이겨 돈을 딴다는 미국 사람들이 골프장에서 흔히 하는 말이다. 드라이버로 장타 날려 봤자 아이언 샷이나 숏게임 그리고 퍼팅을 못하면 별 볼일 없다는 것이다. show와 dough의 발음이 ‘오’로 끝나는 데 묘미가 있다.

그는 25전(cents) 짜리 내기 골프를 자주하고 좀처럼 지기를 싫어해서 사람들이 허슬러(hustler)라고 불렀다. 폴 뉴먼의 영화 ‘허슬러’의 그 허슬러다. 그의 골프샷은 빗나가는 일이 드물고 그럴 때마다 “Straight as an arrow!” (화살처럼 똑바르다)하고 으쓱댔다. 거의 하루도 골프 라운딩을 거르는 일이 없었고 다리에 신경통이 있다는 그는 전동 골프카트를 오래 전에 구입해서 그의 트럭 트레일러에 싣고 다녔다. 그곳은 시립 골프장이었는데 개인 소유 골프카트를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었다.



어느 날 어두컴컴한 저녁 무렵 우연히 우리 집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는 그의 집 앞을 차 타고 지나간 일이 있었다. 그가 집 앞마당에 골프공을 한쪽에 잔뜩 쌓아놓고 탁탁 치핑 연습을 하고 있었다. 나중에 그의 집 근처에 사는 사람들에게 들으니 뜰 앞에서 그가 치핑 연습하는 것은 아주 오래 된 일이고 거의 하루도 거르는 날이 없다고 했다. 한 이웃은 조금 불만스러운 어투였다. 그의 골프공 치는 소리에 질렸다는 표정이었다. 그가 숏게임에 왜 그렇게 강했는지를 알게 됐다. 예전에 읽은 홍명희의 소설 ‘임꺽정’에 나오는 박유복이가 앉은뱅이 시절 하루 종일 앉아서 표창 던지는 연습을 해서 백발백중의 달인이 된 이야기가 떠올랐다.

내가 아칸소주 주도 리틀락(Little Rock)으로 이사한 후에는 그와 골프 치는 일도 끝났다. 그 골프장 쪽으로 발길을 한 일이 없이 몇년이 훌쩍 지났다. 어느날 우연히 옛 골프장 근처를 지나가게 되었다. 갑자기 옛날 생각이 나서 골프장 입구로 차를 돌렸다. 골프 연습 시설도 새로 생기고 전과는 많이 달라진 모습이었다. 골프장 매니저는 전에 있던 같은 사람이었다. 내 옛 친구의 근황을 물었더니 얼마 전에 심장마비로(“massive heart attack”) 급사했다는 놀라운 소식을 들려주었다. 리틀락으로 돌아오는 하이웨이에서 골프장 매니저의 유별나게 높은 억양의 ‘massive’라는 말이 귓전을 맴돌며 떠날 줄 몰랐다.

그와 함께 같은 차를 타고 골프치러 갈 때 어쩌다 우리를 추월하는 차가 있으면 그가 어김없이 하던 말이 있다. “He is in a hurry!” (바쁘구나!) 자기 자신은 왜 그리 바삐 갔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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