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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종수 칼럼] ‘군밤에서 싹 나기’

“중이 미우면 가사(袈裟)도 밉다”는 속담이 있다. 사람이 미우면 그 사람에 관련된 모든 것이 밉게 보인다는 말이다. 아무것도 아닌 일도, 아니 심지어 긍정적인 상대방의 행위도 나쁘게 받아들이고 부정적인 해석을 하게 된다. 이는 개인이나 국가나 마찬가지다. 최근에 우연히 ‘고도쿠노 구루메(고독한 미식가)’라는 일본 드라마를 볼 기회가 있었다. 공깃밥을 한 손에 들고 식사하는 주인공을 보고 문득 예전에 들은 이런 이야기가 생각났다.

손으로 밥공기나 국그릇을 들고 먹는 일본 식습관을 비하해서 “그릇 들고 밥 먹는 건 거지밖에 없다”고 한 한국인에게 “밥그릇 놓고 먹는 것은 개다”라고 응대했다는 일본인 이야기다. 거지나 개는 남을 헐뜯고 비하할 때 흔히 쓰는 표현이다. 요새야 때에 따라서는 개가 사람보다 더 우대를 받는 시대가 되었지만 개는 원래 천한 동물이다. 개나발, 개뿔, 개판, 개수작, 개망신 등 ‘개’가 앞에 접두어로 붙는 말치고 좋은 말 없다. 더구나 우리가 하는 욕에 ‘개’가 붙으면 그 욕이 최상급이 된다, 개 같은 놈, 개만도 못한 새끼, 개잡년 등. 물론 인생살이의 바닥을 친 거지도 마찬가지다.

식습관은 나라마다 다르다. 예컨대 우리 문화에서는 식탁 한가운데 찌개를 놓고 각자의 숟가락으로 떠먹는 것이 보통이다. 찌개뿐 아니라 김치나 나물 같은 반찬도 그런 식으로 먹는다. 다정스럽게 보이나 비위생적인 습관이다. 나는 인도 사람들이 맨손으로 밥을 먹는 것을 보면 거부감이 앞선다. 특히 밥을 다 먹고 나서 손가락을 빨고 핥는 것은 좋게 보이지 않는다. 나라 간의 문화를 놓고 우열을 가릴 수는 없고 어떤 관습도 그 나름대로 옳다는 소위 문화상대주의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탓일까?

문화를 비교할 때 절대적인 것은 불가능한 것도 사실이다. 문화는 항상 변한다. 세상이 달라지고 우리의 관념체계도 변하기 때문이다. 얼굴이나 몸에 요상한 문신을 하는 것을, 미개하고 원시적인 야만인들의 관습으로 폄훼한 것도 얼마 오래되지 않은 일이다. 그런데 요새는 이런 ‘미개한 관습’이 마구 번져 나가고 특히 해외 유명 연예인이나 스포츠맨들이 그 앞장에 서 있다. 외모지상주의에 편승한 성형이 대세인 오늘날 누가 감히 구시대의 신체발부 수지부모(身體髮膚 受之父母)를 거론할 것인가?



‘밥그릇을 든 거지’나, ‘바닥에 놓인 밥그릇을 핥는 개’가 자기중심적인 고정관념과 편견에서 나온 표현임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이런 경우에 전문가들의 처방은 문화 간의 의사소통이요, 이런 의사소통은 열린 마음과 관용의 정신으로만 가능하다고 한다. 최근 애틀랜타 교외 브룩헤이븐 시 시립공원에 미국 남부 최초로 미국에서 세 번째 ‘평화의 소녀상’이 설치되었다. 그동안 끈질긴 일본의 로비와 방해 공작이 있었다고 한다. 애틀랜타 일본 총영사 시노즈카 다카시라는 자는 ‘위안부는 매춘부’라느니 ‘소녀상은 예술 조형물이 아니라 일본에 대한 분노와 증오의 상징물’이라느니 하는 역사를 외면하는 후안무치(厚顔無恥)한 발언을 해 이곳 교민들의 공분을 샀다.

미국 하버드대학 교수를 거쳐 일본 주재 미국 대사(1961-1966)를 지낸 에드윈 라이샤워(Edwin Reischauer)는 일찍이 일본을 무리를 지어 헤엄치는 물고기 떼(a school of fish)에 비유한 일이 있다. 리더 물고기를 따라 전체 물고기가 전후좌우로 일사불란하게 움직인다는 것이다. 또 그들은 사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지리적 환경 때문에 편협하고 폐쇄적이며 배타적인 가치관과 세계관을 갖고 있다. ‘시마구니 곤조(섬나라 근성)’는 이를 일컫는 말이다. 객관적인 사실을 제 나름대로 자기에게 유리하게 해석할 뿐 아니라 역사적 사실을 은폐하고 왜곡함도 거리끼지 않는다.

일본이 패망한 지 70년도 더 지났건만 아직도 ‘시마구니 곤조’의 포로인 일본, 그들의 역사 인식이 바뀌기를 기대하는 것은 ‘군밤에서 싹 나기’를 바라는 것과 무엇이 다르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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