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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그레이 칼럼] 그러려니 하고 살자


사람이 “만족하게 살았다” 하고 이 세상을 떠나고 싶을 때는 언제일까? 가늘고 긴 세월일까 아니면 굵고 짧은 세월일까? 무난하고 평범하게 살며 나이 들거나 아니면 불꽃처럼 화끈하게 살다 단명하는 삶, 그 중 어떤 방식의 삶이 의미가 있고 행복한지 나는 아직 해답을 모른다.

스미소니언 미술관에 미국 여류시인 실비아 플래스의 특별전이 있다. 그녀를 생각하면 암울한 기운에 갇힌듯이 우울했는데 이번 전시회는 조금 달랐다. 한발짝 물러서 보니 ‘ONE LIFE’ 라는 전시 타이틀이 잘 어울린다 싶도록 한 여자의 사랑과 고뇌가 예술로 승화된 과정이 보였다. 친필 편지와 습작시에 자화상 초상화와 손때묻은 타이프라이트에 진하게 남은 그녀의 체취를 느끼며 그녀의 굴곡진 삶을 따르니 그녀는 오래전 사춘기의 나를 잿빛 세상으로 안내한 모국의 여류작가 전혜린과 하나가 된다. 내 의식 깊숙이 스며들어 존재의 의미를 묻게 한 두 여자의 삶은 무섭도록 닮았다. 동양과 서양에서 같은 시기에 비슷하게 톡톡 튀며 살았던 그들의 삶은 철로의 나란한 레일로 이어지다 같은 시기에 숙명처럼 뚝 끊어졌다.

실비아 플래스(1932-1963)와 전혜린(1934-1965). 미국과 한국에서 명문대학을 다녔고, 1955년 실비아는 영국으로 전혜린은 독일로 유학 가서 각각 영문학과 독문학을 공부했다. 그리고 1956년 실비아는 영국시인 테드 휴즈와, 전혜린은 한국 법학도 유학생 김철수와 결혼했다. 두 여성은 비슷한 시기에 딸을 출산했고 귀국해서 젊은 나이에 모교의 강단에 섰으며 남편과 헤어졌고 아이들을 남기고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당시 여성에게 가정을 돌보는 소임을 요구하고 야심을 갖거나 성취를 추구하던 여성을 은근히 차별하던 불공정한 사회 풍토에 항거해서 몸부림쳤던 실비아와 인간의 완벽한 삶을 추구했던 전혜린씨는 페미니스트였다. 두 사람 다 평범한 일상을 힘겨워 하며 정신적 자유를 갈망했고 문학에 대한 열정에 휩싸여서 철저히 고독했다. 그들은 빛과 어둠, 기쁨과 절망의 감정을 오락가락하며 자신에 솔직했다. 그들이 쏟아낸 섬세한 감성은 삶과 씨름한 정열의 여성상을 보여줬다. 그런 과정에서 거의 광기에 가까운 우울증으로 고통받으며 수면제로 자살 미수의 체험을 가진 점도 같다.



두 여자의 사후에 세상에 알려진 그들의 일기는 그들의 고뇌와 정신세계를 이해하는데 도움을 줬다. 자신보다 더 천재적 재능을 가졌던 아내를 견디지 못해 헤어졌지만 그녀의 사후 작품들을 정리해서 시집으로 출간한 테드 휴즈 덕분에 실비아는 세상을 떠난 지 20년후 퓰리처 상을 수상했다. 전혜린의 지인들도 그녀의 유고를 모아 수필집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를 출간해서 불꽃처럼 살다 자신을 소진시킨 그녀의 삶을 알렸다. 불운의 천재 여성들의 삶은 그들이 세상을 떠난 지 반세기가 지났지만 여전히 사람들의 가슴에 잔잔한 감동이 아니라 파격적인 충동을 준다.

특히 전혜린이 번역해서 소개한 독일의 전후 작가 하인리히 벨의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와 루이제 린저의 ‘생의 한 가운데’는 나의 성장기에 막대한 영향을 끼쳤다. 삶의 의미를 찾도록 도전을 준 소설에서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를 만난 것은 신선한 충격이었다. 주어진 삶을 받아들이고 의지대로 적극 살아가는 자세가 좋아서 훗날 내가 낳은 딸의 이름을 소설의 주인공 이름으로 짓고 그녀처럼 당당하게 살기를 바랬다. 그리고 전혜린이 사랑한 뮌헨대학로인 슈바빙 거리를 헤집고 다니며 그녀의 기운을 찾았었는데 이제는 재밌게도 실비아가 그린 자화상에서 두 여자를 한꺼번에 만난다.

죽어서도 살아있는 여인들의 영향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하고 아직도 그녀들처럼 자유로운 영혼이길 갈망하는 나는 요즈음 상상력을 잃을까봐서 두려워했던 실비아의 불안과 맞서있다. 나이탓이다. 이런 나에게 며칠 전 옛 친구가 유엔에서 사람의 평생 연령을 5단계로 나누어 발표한 것을 상기시켰다. ‘0-7세 까지는 미성년자, 18-65세는 청년, 66-79세는 중년, 80-99세는 노년, 100세 이후는 장수 노인’이라며 그녀는 우리가 아직 젊었음을 강조했다. 삶을 출생부터 사망까지 이어주는 순환 서클은 부드럽고 원만한 원이다. 시작과 끝이 만난다. 이제 겨울을 이해하는 나이가 되니 체념보다 담담하게 그러려니 하고 살자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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