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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그레이 칼럼] 불타버린 어제




캘리포니아주의 나파 밸리에 사는 딸을 가진 지인 부부가 받은 충격이 우리에게도 충격을 준다. 그러잖아도 이혼하고 혼자 어린아이들을 키우고 사는 딸이 딱해서 이 부부는 지난 몇 년 여유가 있으면 세상의 아름다운 곳은 제쳐놓고 무조건 딸네로 갔다. 그들은 오로지 딸과 손주들에게 도움을 주는데 주력했다. 근래에 딸이 의지할 수 있는 남자친구가 생겨서 안심을 했는데 이번에 청천벽력같은 소식을 받았다.

밤중에 대피하라는 긴급한 통보를 받고 서둘러 아이들을 데리고 집을 나왔다는 딸의 집은 전소됐고 그녀가 살던 동네는 완전히 초토화가 되어버렸다. 그야말로 입은 옷과 자동차 한대가 이 세상에서 그녀가 가진 모든 살림살이다. 요즈음 북부 캘리포니아는 동시에 여러 곳에 일어난 산불로 비상사태다. 붉게 타오르는 집들과 지역의 사진은 두려움을 주고 불길이 남긴 잿더미 흔적에 감정이 마비된다. 닥치는 대로 무섭게 번지는 불길을 잡느라 애를 먹는 사람들의 노력에 힘을 실어주고 싶다.

현재 사망자 수는 40명이고 실종자도 많다. 산불로 6천이 넘는 주택과 사업체가 화마에 휩쓸려 전소된 바람에 지인의 딸과 같은 절박한 상황에 처한 이재민의 숫자도 엄청나게 많고 피해는 계속 늘고있다. 사망자의 대부분이 거동이 불편한 노인들이고 그 중에 결혼 75주년을 기념했던 노부부도 있듯이 가슴 아픈 사연들이 너무 많다. 이재민들을 위해서 지역 교회와 에어비앤비 주인들이 숙소 제공에 나섰고 주민들도 딱한 처지의 이웃을 돕는다. 사람들과 더불어 수난을 받는 크고 작은 온갖 동물들도 동물 구제 단체가 나섰고 사료를 기부한 업체도 있다. 더불어 미국 와인 생산지로 탄탄하게 명성을 쌓은 나파 밸리가 최대의 수난기를 맞았다. 한창 포도를 수확해야 하는 시절에 불타버린 와이너리들로 와인 산업도 막대한 타격을 받았다.



뉴스를 들은 날, 너무나 황망해서 어떤 말도 하지 못했다. “만약에 우리가 지인의 딸과 같은 상황이 된다면?” 남편이 말했다. 이어서 확신하듯 “그럴 리가 없지”했다. 그날 안정된 삶을 찾아 힘겹게 노력하던 지인의 딸이 눈앞에 어른거려서 잠을 설쳤다. 사람살이 새옹지마라지만 순식간에 모든 것을 잃어버린 그 허탈감을 대치해 줄 수 있는 것은 없다. 하지만 그녀는 엄마다. 받은 충격을 잘 다스리고 아이들을 위해서 강인한 생존자가 되어주길 바랬다. 불타버린 어제는 가슴에 담고 앞만 보고 용기를 내길 바랬다.

지난주 고관절 대체 수술을 받은 지인은 딸의 사정이 딱해서 가슴을 졸인다. 당장 찾아갈 수도 없지만 가도 묵을 곳이 없다. 근심걱정으로 가득한 마음을 달래며 매일 딸과 손주들을 위한 기도 열심히 한다. 딸의 상황이 잘 풀려서 방이 넷인 큰 집을 샀다고 기뻐한 것이 바로 어제일 같은데 세상에 이런 일이 일어나다니. 다음날 새벽에 운동하다가 미국 대륙을 잇따라 강타한 허리케인들에 이제 산불까지 몸서리치게 하는 사태를 걱정했다. 물에 빠지니 지푸라기라도 잡는 기분으로 “굿이라도 해야겠다” 했더니 함께 걷던 워킹 파트너가 깔깔 웃었다. 하느님을 믿으면서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하느냐고 나의 엉성한 논리를 지적했다.

그런데 나보다 한 수 더한 지인이 있다. 그녀는 현재 미국에서 일어나는 모든 자연 재해의 원인은 신이라 했다. 선량하게 사는 사람들에게 일어나는 불운은 신의 잘못이라 강조하는 그녀는 아우슈비츠 수용소의 생존자인 아버지의 영향을 받고 자라 하느님을 믿지 않는다. 피해자의 상처가 자손대대로 이어짐을 보니 가슴이 아팠다.

아무튼 캘리포니아의 상황이 안타깝다. 오랜 가뭄으로 건조한 환경에 바람까지 불길을 부추겨 무섭게 확산되는 상황에 가슴을 졸이며 자연의 자비를 구한다. 남편이 한 말이 머리속에서 떠나질 않는다. 우리가 직접 지인의 딸과 같은 상황에 처한다면? 관점이 달라진다. 집안을 한바퀴 둘러본다. 남편이나 나, 우린 이민 1세다. 옷가지 몇 가져와 시작한 이민생활에 살림살이를 꽤 많이 모았다. 더구나 한 집에 오래 살아서 구석구석에 물건들이 꽉 찾다. 이 모두가 한줌의 재로 사라진다면? 내가 가장 안타까워 할 물건은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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