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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그레이칼럼] 아름다운 거리의 음악가

서울의 대학로에 있는 한성아트홀에 갔다. 계단을 몇 내려가 지하에 있는 공연장에 들어서니 많은 사람들이 벌써 자리잡고 앉았다. 조금 어둑한 실내가 소극장의 친밀감으로 포근하고 좋았다. 중간쯤인 지정석을 마다하고 남편과 앞줄의 비어있는 의자에 가서 앉았더니 안내자가 제일 앞자리는 음악감상에 별로 좋지 않다며 다른 자리로 옮기라 권했다. 가까운 빈자리를 찾아 객석을 휙 둘러보니 모두가 젊은 사람들이라 조금 흠칫했다.

가수 김광석을 닮았다는 남자가 기타를 들고 나와서 중앙에 마련된 의자에 앉았다. ‘마흔즈음에 ? 김광석을 노래하다’ 콘서트는 가수 채환의 모노 뮤지컬이다. 모처럼만에 한국에 다니러 온 이모와 이모부에게 좋은 체험을 주겠다는 조카의 배려다. 주위 좌석에 앉은 대부분 3-40대인 남녀 관객들은 채환이 김광석의 노래를 부르기 시작하자 조금 술렁였다. 솔직히 김광석을 모르는 나는 엘비스 프레슬리의 흉내를 내던 가수의 노래를 듣던 심정으로 그를 바라봤다. 김광석으로 인해서 노래를 부른다는 채환이 중간중간에 스토리를 삽입하며 노래를 이어가는 콘서트는 벌써 3년째 2000회가 넘는 최장기 공연이며 그의 ‘희망세상’ 만들기다.

정신을 집중하고 채환이 들려주는 김광석과 엮인 그의 스토리를 따랐다. 하지만 몇 곡이 지난 후 나는 꼬박꼬박 졸았다. 언어를 알아듣지 못하는 남편은 열심히 경청하는데 나는 귀에 익숙하지 않은 노래들을 자장가로 들었다. 요란한 박수소리에 화들짝 놀라 깨어나니 김광석의 노래는 끝났고 이번에는 채환의 희망을 부추기는 노래들이 시작됐다. 솔직히 음악은 바로 가슴에 말하는 스토리가 아닌가.

그는 1997년 ‘사회적 약자의 자원봉사와 자살예방에 앞장서는’ 취지를 가진 비영리 민간단체 ‘희망을 파는 사람들’을 형성해서 전국을 다니며 희망의 씨를 뿌린다. 그의 선행을 알게 되니 활짝 웃는 그의 모습이 신선하게 다가왔다. 기타에 실린 흥겨운 노래를 들으면서 나는 70년대초의 통기타 가수들을 떠올렸다. 김민기, 송창식, 김세환, 윤형주, 양희은, 박인희, 이장희… 그들의 노래도 청명한 하늘을 닮았었다. 당시의 우울한 시대상을 경쾌한 노래로 삭여냈고 20대 나의 삶을 파도로 출렁이게 했던 그들이 부른 노래를 아무리 생각해도 하나도 온전하게 다 기억하지 못했다. 어수선했던 정치판 만큼이나 복잡했던 문화와 사회상도 흐릿했다. 내가 죽도록 사랑했던 사람이나 미치도록 좋아했던 노래도 더 이상 나의 가슴에 흥분을 주지 않음이 놀라웠다.



누군가를 끔찍히 사랑하는 것이나 어떤 노래를 지독히 좋아하는 감정은 같다. 가슴이 펄펄 뛸 적에 살아 있음을 더욱 강하게 느끼지 않는가. 김광석의 노래 가사가 소탈하고 쓰린 것은 그의 스토리지만 어쩌면 모두의 젊은 시절을 반영한다. 그가 자살한 지 20년이 지났고 그의 죽음에 커다란 의문표가 붙어서 안스러움을 주는 것은 노래 가사처럼 살았던 가수의 짧았던 생에 대한 아쉬움이다. 김광석의 슬픈 사연을 들으면서 나는 아직도 그의 영향을 느끼는 사람들을 생각했다. 조카도 그 중의 한사람인데 흥분으로 들썩이는 조카의 기분을 함께 나누질 못해 미안했다.

김광석의 노래 세계를 소개하고 나를 흥겹게 희망의 세계로 안내한 거리의 음악가 채환 또한 대단한 재능가다. 김광석의 열정적인 노래에 반해서 자신도 노래를 열심히 부른다는 그의 삶 스토리가 착착 감겨왔고 마흔즈음에 목적을 가지고 사는 그의 삶이 흥겨웠다. 전국의 거리에서 음악으로 사람들을 만나는 채환의 순수함이 좋았고 많은 약자에게 희망과 미소를 선사하는 그의 활약이 멋졌다. 두 가수를 한꺼번에 처음 만난 나에게는 그가 김광석이고 김광석이 또한 그였다.

콘서트를 마치자 모두 요란한 박수로 감사했다. 남편에게 좋았냐? 물었더니 씩 웃었다. 앞으로 우루루 몰려 나가서 채환과 사진을 찍으려는 사람들을 흘깃 보다가 공연장을 나섰다. 열성팬들과 나와는 거리가 있었다. 뒤따라 나선 조카가 채환의 CD를 사서 손에 들려줬다. 순간 떠오른 생각이 있었다. 정작 조카가 나에게 전해준 것은 그의 추억의 일부가 아니라 바로 지나간 나의 청춘이다. 잠시라도 나에게 젊음을 느끼게 해주었으니 최고의 선물을 줬다. 그날 밤, 모국의 하늘에 떠 있는 둥근달의 후광을 입은 나의 여린 마음은 오만가지 감상으로 뒤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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