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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종수 칼럼] 화물열차

언제부터인지 미국에서 한국전쟁을 ‘잊어버린 전쟁(the Forgotten War)’이라고 하거니와 6·25를 몸소 겪은 내 기억 속에는 평생 잊지 못하는 일화가 있다.

6·25가 터졌을 때 나는 초등학교 3학년이었다. 인천에 살던 우리 가족은 인천에서 50여 리 떨어진 인천과 수원 사이에 있는 작은 시골 마을로 피난을 갔었다. 부모님과 나와 그리고 내 아래로 두세 살 터울의 동생이 셋이었다. 그중 막내 여동생은 태어난 지 얼마 안 된 젖먹이었다. 비도 오고, 동생들 때문에 쉬엄쉬엄하고, 또 저물기 전에 재워 줄 집 찾다 보니 50리 피난 길이 걸어서 꼬박 사흘 걸렸다.

1·4 후퇴가 임박하자 우리 가족은 피난 계획을 미리 짰다. 아버지는 부산으로 그리고 어머니와 우리 형제들은 6·25 때 피난 갔던 시골에 가서 난을 피하기로 했다. 시골에 우리를 위한 방 하나를 마련해 놓으신 아버지는 대중교통이 끊어지기 전에 먼저 부산으로 가셨다. 곧이어 어머니도 동생 둘을 데리고 기차 편으로 시골로 내려가셨다. 나와 네 살짜리 남동생은 인천 경동에 있던 종조부(할아버지의 동생)댁에 남겨졌다. 왜 나와 동생이 뒤에 떨어졌는지는 확실히 기억 못 한다. 어머니 혼자 젖먹이를 포함 어린아이 넷을 데리고 가기에는 벅찼던 것 아니었나 하는 것이 내 추측이다.

어머니가 떠나시고 며칠 사이에 일이 갑자기 급하게 되어버렸다. 전황이 악화되어 중공군이 곧 서울에 들이닥친다는 것이다. 수인선 열차 운행을 곧 중단할지 모른다는 소문이 퍼졌다. 나는 동생을 데리고 수인역으로 나갔다. 수인역 플랫폼은 인산인해였다.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기차에 오르려는 피난민들로 붐비는 난장판이었다. 객차는 없고 기관차에 연결된 차 모두가 뚜껑도 없고 나지막한 석탄 수송 열차 같은 화물차량이었다. 무개차마다 콩나물시루처럼 빽빽하게 사람들로 넘쳤고 사람들은 차 벽을 타고 차에 오르고 있었다.



피난민을 수송하기 위한 특별열차였는지 차표도 없었고 누구나 재주껏 올라타면 되는 것이다. 나는 천신만고 끝에 동생을 차에 밀어 올릴 수 있었으나 내가 올라탈 공간은 없었다. 동생에게 “너 형 올 때까지 여기 꼭 있어”라는 당부를 하고 나는 그 바로 뒤차로 갔다. 용케 차에 올라 빈틈을 헤집고 들어갈 수 있었다. 사람들 틈에 밀리고 부딪치는 혼란 법석 속에 차에 오르고 자리를 잡자 나는 마음이 놓였다. 동생이 앞칸에 있는 것이 조금 마음에 걸렸지만, 우리 둘 다 차에 탔으니 이제 됐다고 생각했다.

잠시 후 갑자기 누군가가 차 밖에서 “종수야, 종수야!” 하며 내 이름을 불러대고 있었다. 내가 아저씨라고 부르는, 그때 중학생이었던 5촌 당숙이었다. 경동 집에 계시던 종조모께서 우리가 걱정되어 정거장에 나가 보라고 하신 것이다.

“야, 네 동생은 어디 갔어?”
“저 앞칸에 있어요.”
“야, 같이 있어야지. 빨리 내려.”
나를 데리고 앞차로 간 아저씨가 뒤에서 밀어주는 힘으로 나는 내 동생 옆으로 비집고 들어가 동생의 손을 잡았다. 기차가 언제 떠날지 몰라 아저씨는 경동 집으로 돌아간다며 나더러 절대 둘이 함께 있으라고 했다. 그리고 5번째 정거장에서 반드시 내려야 한다는 말을 신신당부했다.

아저씨가 떠나고 얼마 있지 않아서 역무원 제복을 입은 사람 둘이 역 사무실 쪽에서 우리 차 쪽으로 다가왔다. 다짜고짜 우리 차와 그 바로 뒤 차 사이로 가서 무슨 연장을 들이대더니 철커덕하는 소리가 났다. 그것이 두 화차 사이의 연결고리를 푼 소리라는 것은 몰랐다. 역무원들이 돌아가자 열차가 앞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아주 잠깐 사이에 일어난 일이었다. 뒤 차에 탄 사람들이 손짓, 몸짓해 가면서 무어라고 소리를 지르고 아우성을 쳐댔다. 차에 속력이 붙으면서 기차 레일 부딪치는 금속음과 세찬 바람 소리 이외에는 들리지 않았다. 그 날 그 화물열차를 생각하면 나는 지금도 등골이 오싹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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