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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짜관객'-대체 어떤 심리인가?

[발행인칼럼] 김 영 종

프랑스 파리-, 물랭루즈 쇼 관람객들은 극장에 들어서는 순간 모두들 의아해 한다. 미국달러 218불짜리 '세계최고 쇼'의 극장안 천장이 마치 그 옛날 3류서커스 천막극장처럼 치렁치렁 늘어뜨린 울긋불긋한 헝겊으로 유치하게 장식돼 있기 때문이다.

샹젤리제 거리에 1946년 현대식 호화무대로 출발한 리도 쇼와, 1889년 '캉캉춤'으로 막을 올린 물랭루즈 쇼는 최대 라이벌이다. 라스베이거스 쇼를 능가하는 '화려함의 극치'로 1년365일 하루도 빠짐없이 각각 1150석을 꽉꽉 채운다.

그러나 물랭루즈는 당초 서커스로 출발했으며, 리도보다 훨씬 전통이 깊다는 것을 '촌스러움'을 강조함으로써 되레 더 강하게 표현하고 있다. 세계각국에서 온 관광객의 '옛 향수'를 건들여 끌어들이자는 심산이다.

천막 서커스단에 대한 향수중 하나는 '공짜 구경'이다. 천막을 들춰올려 몰래 기어들어가고 싶은 충동, 어딘지 어수룩하고 정감이 끌리는 심리를 이용한 마케팅인 셈이다.



'공짜 구경'의 유래는 꽤 깊다.

1950년대 서울-. 동네 쌀 가게엔 늘 영화 포스터가 붙어 있었다. 왼손엔 풀통, 옆구리엔 포스터 두루말이, 오른손엔 빗자루를 든 극장 인부가 쌀가게 문짝에 '쓱쓱-' 풀질을 한후 포스터를 '처덕!' 붙이고는 극장표 2장을 의기양양 하게 건네고 간다.

소위 '초대권'의 등장이다. 초대권은 별도의 홍보비를 들이지 않고 빈 좌석도 채우는 1석2조의 수단이었다.

그런데, 아뿔싸! 이때부터 '구경'은 '공짜'로 해도된다는 심리가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극장표를 받은 쌀집 주인은 우선 동네 아이들이 포스터에 낙서하는 것을 막는 게 중차대한 임무였다. 아이들은 포스터속 신성일의 눈을 젓가락으로 찌르고, 엄앵란 얼굴엔 콧수염을 그린후 냅다 달아나곤 했다. 포스터가 찢어지거나 훼손되면 쌀집주인은 극장측으로부터 호된 질책을 받아야 했다.

동네 청년, 아줌마들은 쌀집 아저씨한테 온갖 아양을 떨며 이 공짜 표를 얻기위해 애걸복걸 했다. 영화관을 돈주고 들어가면 소위 '주변머리 없는 사람'이란 인식이 퍼진 것도 이 때부터다.

궁핍했던 시절이니 여기까진 애교로 봐줄 수 있다. 그러나 '공짜 구경'에 대한 심리는 날이 갈수록 커져만 가는 것같다.

유형도 점점 얄미워져 간다. 주최측이 아는 사람한테 전화를 걸면 열명중 다섯은 대뜸 한다는 말이 "표를 줘야 가지!" 다. 또, 공짜 표를 받고는 표값보다 몇배 비싼 화환을 사오는 사람은 어떤가. 더 얄밉다. 공연에 도움이 안되는 '자기 과시형'이다. 화환 리본엔 으레 자기 이름과 직책이 줄줄 적혀있다.

또 있다. 주최측이 표를 팔다가 남는 것은 막판에 공짜로 돌리기도 한다는 사실을 깨달은(?) 사람들이 눈치작전을 펴며 공연 직전 날까지 기다린다. 또, 누군가 표를 여러장 사서 돌리면 그걸 거저 얻겠다고 기다리는 사람들도 있다. 언론사가 개입된 공연때마다 초대권 안주면 광고 끊겠다며 힘겨루기(?)를 하는 비즈니스 업주들도 간혹 있다.

공짜심리는 소도시로 갈수록 큰 것같다. 뉴욕이나 워싱턴, 또는 샌프란시스코의 경우 초대권 발매율이 전체 티켓의 2~3%에 불과하다. 그것도 주지사, 시장, 시의원등 미 주류사회에서도 극히 제한된 고위인사에 한한다.

한편 LA는 대도시임에도 불구하고 공짜심리가 크다. 관객들의 문화수준과도 연관성이 클 듯싶다.

2002년 중앙일보가 주최한 조수미 미주 5개도시 순회공연 때, 뉴욕관람객들 중엔 정장은 물론 턱시도 차림의 관객들도 간간히 눈에 띈 반면, LA의 경우 반바지에 슬리퍼를 신고 왔다갔다 하는 관객들이 눈쌀을 찌푸리게 했다.

1970년대 말, 한국에서 1인극(모노 드라마)이 크게 흥행성과를 올린 적이 있다. 작고한 연극배우 추송웅의 '빨간 피터의 고백'이 성공하면서 부터다.

당시 추송웅에게 물었다. "1인극, 또는 2인극은 어떤 장르며 일반연극과의 차이는 무엇이냐?"고.

추송웅의 대답은 의외이면서도 단순했다. "공짜 관객들 때문에 극단에 돈이 없어 출연배우를 줄일 수 밖에 없는 현실에서 파생된 현상이지 연극의 본령은 아니다."란 것이었다.

영화는 똑같은 필름으로 수백, 수천번 돌릴 수 있지만, 배우가 직접 출연하는 연극이나 무용은 공연자체가 100% 비용을 발생시킨다.

또, 영화는 재미만 있으면 되기 때문에 연예.오락(Entertainment)로 분류되지만, 연극이나 무용은 재미에 더해 '영혼을 일깨우는 소중한 메시지가 담겨있어 예술(Art)로 분류된다. 어느 민족에게나 소중한 문화자산이다.

미국 고등학교의 경우 학생들이 자체적으로 벌이는 공연도 5불, 8불, 심지어 20불까지 관람료를 받는다. 창작물엔 공짜 관념이 아예 없다.

음식점에 들어가선 공짜로 식사할 생각을 상상조차 못하면서, 그보다 훨씬 큰 비용을 들인 문화행사를 꼭 공짜로 관람하겠다는 건 무슨 발상인가.

문화와 경제는 상생관계에 있다. 미주 한인사회에서 경제가 빠른 속도로 성장하는 지역일 수록 문화예술공연이 자주 열린다. 그리고 거기에는 늘 유료관객이 든든한 뒷받침이 돼준다.

한국전통예술단 23명의 인간문화재급 쟁쟁한 연기자들이 오는 9월6일 덴버 퍼포밍아트 컴플렉스에서 '귀한' 공연을 펼친다. 문화 불모지 콜라라도 한인 커뮤니티엔 '메마른 사막의 단비'와도 같다.

콜로라도 주지사, 덴버 시장, 시의원들을 비롯 한인 입양아 가족에 이르기까지 2000여석 가운데 약 절반정도는 주류사회에서 객석을 채울 예정이다.

우리가 아직도 막판 공짜표가 나돌 때까지 기다려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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