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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우리말] 아, 윤동주

조현용 / 경희대학교 교수

일본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시인 윤동주는 숨을 거둔다. 영화 '동주'에서는 죽은 자식의 시신을 인수하러 온 아버지의 모습이 먹먹하게 그려진다. 후쿠오카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가장 많이 찾는 관광지이지만 쓰라린 역사의 현장이기도 하다. 후쿠오카 형무소는 이제 후쿠오카 교도소로 변해 있고, 옛 흔적은 이미 사라진 지 오래다. 후쿠오카 교도소에 가면 윤동주 시인의 자취를 만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으로 찾았지만 그저 평온한 여느 소도시의 풍경에서 시간의 무상함만을 느낄 수 있었다.

매년 2월 16일에는 후쿠오카 교도소 뒤편에서 윤동주 시인에 대한 추모식이 열린다. 윤동주 시인이 다녔던 동지사 대학에는 윤동주 시비가 세워져 있지만 후쿠오카에 추모비가 있지는 않다. 작은 기억이라도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후쿠오카 교도소 담벼락을 배경으로 사진을 한 장 찍었다. 도저히 미소를 지을 수 없었다. 내 표정에는 기억이라는 이름을 붙이고 싶었다.

윤동주 시인의 시를 만난 건 학창 시절이었다. 중학교 때부터 시집을 찾아 읽었던 나에게 윤동주 시인의 시는 그저 비장한 느낌의 시였다. 독립운동.탄압.죽음 등의 연상어휘 속에서 시가 놓여 있었다.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로 시작하는 '서시'는 강렬한 슬픔이었다. 내 어린 시절의 '시'이기도 했다. 고등학교에 다닐 때는 '별 헤는 밤'이 좋았다. "별 하나에 추억과 별 하나에 사랑과 별 하나에 쓸쓸함과 별 하나에 동경과 별 하나에 시와 별 하나에 어머니, 어머니" 반복이 주는 아련함과 간절함은 내 고뇌의 시간에 별이 되었다. 지금도 내 글에 반복 묘사가 자주 쓰이는 것은 아마도 '별 헤는 밤'의 영향일지도 모르겠다.

대학에 다닐 때는 '또 다른 고향'이라는 시를 좋아했다. "故鄕에 돌아온 날 밤에/ 내 白骨이 따라와 한 방에 누웠다"로 시작하는 이 시는 조금은 어렵게 세상을 묘사한다. 어쩌면 어려운 느낌이 이 시를 더 좋아하게 만들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해 본다. 그 때는 어려운 게 좋았고, 나 역시 어렵게 보이고 싶었다. 종종은 나도 무슨 말인지 모르는 글을 쓰기도 했다. 윤동주 시인의 생각을 따라 가 보며 여러 생각이 들었다.



"패(佩).경(鏡).옥(玉) 이런 이국 소녀들의 이름과"로 이어지는 별 헤는 밤의 구절은 간도에서의 윤동주의 삶을 엿보게 한다. 태어날 때부터 조국은 이미 남의 땅이었고, 본인이 자란 곳은 이국땅이었다. 늘 조국을 잃고, 조국을 떠난 이방인이었다. 일본에서의 유학과 삶은 간도 시절과는 비교되지 않는 외로움과 답답함이 있었을 것이다.

윤동주 시인의 마음을 가장 잘 드러낸 시는 '쉽게 쓰여 진 詩'다. "창 밖에 밤비가 속살거려 육첩방(六疊房)은 남의 나라"로 시작하는 이 시는 "인생은 살기 어렵다는데/ 시가 이렇게 쉽게 쓰여 지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라고 말하고 있다. 내 나라를 빼앗은 나라에 가서 외로움을 참아가며 공부하고 시를 쓰는 시인의 모습은 등장하는 시어처럼 '눈물'과 '위안(慰安)'이 필요한 삶이다. 아마도 이런 모습이 일본인에게도 감동으로 다가왔을 것이다. 일본인 중에도 윤동주의 시를 좋아하는 사람이 많으며, 윤동주 시의 느낌을 오롯이 알기 위해서 한국어를 배우는 사람도 있다고 한다.

구마모토 학원 대학에 특강을 갔을 때 다시 윤동주를 만날 수 있었다. 학교 건물 한 편에 '쉽게 쓰여 진 시'를 새긴 판화가 걸려 있다. 일본에서 윤동주를 기억할 수 있는 또 한 곳이 생긴 셈이다. 나도 판화를 한 점 받아왔다. 집에 있는 윤동주 시인의 오래된 시집과 함께 판화 작품은 오랫동안 내 미래의 추억이 될 것이다. 12월 30일은 윤동주 시인 탄생 100주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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