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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 헬조선에 대하여

전 후 석 / 뉴욕 KOTRA 변호사.IP 컨설턴트

#1. 얼마 전 한국에서 잠시 방문 중인 지인과 저녁을 먹었다. 그는 누가 봐도 일류 인생을 살고 있었다. 국내 최고 명문대를 졸업하고 최고 대기업을 다녔으며 남부럽지 않은 환경과 우리가 말하는 '스펙'을 지닌 친구다. 하지만 그가 한 고백은 조금 충격적이었다. "한국은 더 이상 희망이 없다. 우리 세대는 취업대란을 겪고 있고 취업을 하여도 업무환경은 최악이며 전혀 행복하지 않고 도대체 희망이 보이지 않는다." 그는 놀랍게도 미국 이민을 준비 중이었다.

#2. 나는 미국에서 태어났지만 한국에서 초.중학교를 나오고 고3 때 미국에 다시 왔다. 미국 공립 고등학교에 입학하여 곧바로 멋진 한인 동포 친구들을 여럿 사귀었는데 대부분 한국말을 거의 구사하지 못하는 완벽하게 '미국화'된 얼굴만 한국인인 친구들이었다. 그런데 나중에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되었다. 학교에서 유일하게 시험 시간에 '컨닝'을 하는 친구들은 저 동포 친구들이었다.

한국 중고등학교에서야 컨닝은 비일비재한 일이었고 나 역시도 그 유혹에 자주 노출되었었지만 이곳은 미국이 아닌가. 완벽히 미국화되어 미국이라는 건강한 사회에서 자란 친구들이 왜 컨닝을 해야 할까.

우리는 환경의 중요성에 대해 늘 이야기한다. 물론 환경은 참 중요하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이 있다. '가치관'이다. 우리 사회의 환경과 제도가 아무리 잘 조성되어 있다고 해도 한 개인의 가정의 사회의 가치관이 그 개인의 가정의 사회의 건강과 질 방향성을 정의한다.



동포 친구들이 컨닝을 한 이유는 그들의 부모님과 당시 한인 커뮤니티에 만연했던 "좋은 학교에 입학해야 된다" 는 강박관념 때문이었다. 이들은 양심과 정직이 가장 우선시되는 미국식 가치관과 편법으로 인한 훌륭한 결과보다 조금 돌아가더라도 과정 자체를 중시하는 미국식 교육에 평생 노출되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과 가장 가까운 가정과 한인 커뮤니티에서부터 오는 좋은 학벌에 대한 부담감을 견디지 못하였다. 그들에게 가장 중요한 가치관은 바로 대학과 점수와 결과였다. 아무리 멋진 교육제도와 건강한 환경도 그들의 제1 가치관 앞에서는 무용지물이었다.

한국의 제도와 환경에 대해 말들이 많다. 물론 나는 미국에서 사는 재외동포로 이런 말을 할 자격이 없는지도 모른다. 사회의 일원이 아니면서 사회와 풍조의 부조리에 대해 왈가왈부하는 것이 어떤 이들에게는 눈꼴사나울 수도 있겠다. 하지만 나는 한국이든 미국이든 민주주의 사회에 살고 있고 나에겐 표현의 자유가 있고 애정 어린 성찰을 할 수 있다.

우리 세대의 비관주의는 멈추어야 한다. 아무리 힘들더라도 늘 '희망'에 기반을 두어야 하고 자신이 변화의 주체가 되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한국의 환경이나 제도가 바뀌어야 하는 것이 아니다. 개인적 가정적 사회적 '가치관'이 바뀌어야 한다. 반드시 그래야 한다. 모든 이들이 한번에 명문대에 입학을 하고 모든 이들이 한번에 대기업에 취업이 되는 교육 제도와 취업 환경이라도 가치관이 그대로라면 불행과 비관주의는 지속될 것이다.

바뀌어야 할 가치관은 성과주의 결과주의 학벌주의 스펙주의 남 눈치 보기 남의 행복 부러워하기 남의 행보 따라가기 획일화된 성공의 길 이런 것들부터 시작해야겠다.

국내에 '올재'라는 출판사가 있다. 저작권 문제가 없는 동양과 서양의 고전을 최대한 읽기 쉬운 한글 번역본과 누구나 갖고 싶은 멋스러운 디자인으로 출판하여 대기업에게서 후원을 받아 한 권당 2000~3000원대의 가격으로 대중에게 판매하고 전체 발간 도서의 20%를 저소득층과 사회 소수층에게 무료로 나누어 주는 일종의 소셜 비즈니스 회사다. 올재의 대표님께서 예전에 하신 말씀이 떠오른다.

"우리나라의 교육제도는 해마다 바뀌고 여러 정책이 늘 제시되지만 정작 바뀌지 않는 것이 있다. 바로 우리 사회의 '가치관'이다. 우리 자라나는 청소년들이 진정으로 건강하고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이들이 고전을 읽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여러 동서양의 고전을 통해 지식을 살찌우고 지혜롭고 창의적인 사고를 하며 건강한 가치관을 정립하기를 원했다. 그래서 '올재'를 설립했다."

문제의 표면을 바꾸는 것이 아니고 본질을 건드렸다. 교육이든 취업이든 제도와 환경의 개선이 아니고 청년들이 불행한 이유를 성찰하는 본질적 접근이 필요하다. 답은 일자리가 아니다. 훌륭한 조건과 복지도 아니다. 개인과 사회의 가치관의 변화가 그것이다.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될지는 막막하지만 그래도 바뀔 수 있다. 제일 먼저 할 일은 비관주의에서 벗어나는 '희망'에 기반을 둔 사고관이 아닐까 싶다. 거기서부터 시작하자. 헬조선이란 단어는 그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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