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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뜨락에서] 은퇴라는 퍼즐

양 주 희 / 수필가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은 화려한 이력을 남겼다. 그는 26세에 외무고시에 합격해서 37년간 외무부와 청와대에서 공직 생활을 마친 후 세계의 대통령이라는 유엔 사무총장을 10년간 재임했다. 47년간 현역이었고 그것도 국가와 세계 평화를 위해 일했으니 정상 중 최정상이다. 하지만 피고용인은 언젠가 떠나야 할 운명을 피할 수 없다. 급여 생활자는 세 번 물러난다. 첫 번째 정년은 타인이 정년을 결정하는 고용 정년, 두 번째 정년은 자기 스스로 정하는 일의 정년, 세 번째 정년은 신의 뜻에 따라 세상을 떠나는 인생 정년이다.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은 첫 번째 정년을 마치고 두 번째 길을 향하려다 뜻하지 않게 좌초했다. 물론 큰 뜻을 품고 경륜을 펼치려는 그의 도전을 함부로 폄훼할 일은 아니다. 하지만 불과 1개월 만에 접은 그의 꿈은 은퇴에 대한 많은 시사점을 던져 준다.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에 대한 아쉬움은 제2의 인생을 지나치게 낙관했다는 거다. 이제까지의 화려한 추억을 버리고 낮은 곳으로부터 새 출발해야 하는데 그는 꽃가마를 기다렸다. 격투기 경기장에 피겨 스케이팅을 하러 온 것 같았다. 최근 국정농단으로 빚어진 탄핵 심판과 경제난에 지친 국민들은 그의 경력이 필요한 게 아니라 그의 메시지를 기다렸다. 인생 이모작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이제까지와 다른 전혀 새로운 인생이 펼쳐질 것을 예상했어야 한다. 대통령의 꿈은 좋았으나 그 자리에 가려면 반드시 거쳐야 할 가시밭길은 낙관한 것은 아닌가. 아이러니하게도 사회적으로 높은 위치에 오른 사람들일수록 제2의 인생을 열기가 쉽지 않은 것은 과거 영광을 좀처럼 잊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제까지의 경력을 살려 좀 더 낮은 곳으로 내려가 봉사하는 제2의 인생을 열었으면 하는 것이다.

우리 옆집 가방가게는 나이지리아에서 이민 온 사람들이다. 셋째 막내가 초등학교에 다니는데 말이 더디고 자기 의견을 표현하는데 어려움이 있다. 학교에서 은퇴하신 선생님을 추천해 주었다. 그분은 나이가 지긋하신 백인 할머니다. 하루에 2시간씩 초등학생을 가르친다. 가방 2개에 여러 가지 물품을 준비하고 오는 것 같다. 하나는 책.장난감.놀이기구이고 다른 가방에는 아이와 함께 먹을 간식거리다. 상가라서 파킹이 수월치 않다. 몇 번씩 이쪽에서 저쪽으로 돌고 돌아 겨우 파킹을 하고 걸어온다. 아이가 선생님 덕분에 얼굴 표정이 밝아지고 나에게도 스스럼없이 장난치며 말을 걸어온다. 자기가 숙지하고 있는 모든 경험과 기술을 아이를 위해서 헌신해 주고 있다. 아이 부모에게 돈을 받는 것도 아니고 단지 자기가 가지고 있는 것을 나누어 주는 것이다. 선생님이 우리 가게 앞을 지날 때마다 손을 들어 인사한다. 아이를 가르치는 곳에 책상과 의자가 있는 것도 아니고 공기가 맑은 곳도 아닌 어둠침침한 가게 구석 공간이다. 하지만 그 아이를 위해 매일 찾아온다. 알게 모르게 우리 주위에는 이런 훌륭한 분들이 많이 있다.

히브리어에는 우연과 은퇴라는 단어가 없다. 세상의 모든 일에는 원인과 결과가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우연이라는 단어가 존재하지 않는다. 또한 살아 있는 모든 것은 숨 쉬고 일하고 먹고 자는 것이 당연하기 때문에 은퇴라는 개념도 없다. 100세 시대를 맞는 우리들은 퇴직은 하되 은퇴는 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제2의 인생은 체면을 벗어 던지고 이제까지 쌓은 경륜을 활용해 좀 더 낮은 자세로 어려운 사람들과 울고 웃으며 손길이 필요한 곳에서 흐트러진 퍼즐을 하나하나 맞추어 가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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