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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네트워크] 정치권과 '국론 통합'

임 상 환 / OC취재팀장

"이제 시급한 과제는 국론 통합이다."

한국 헌법재판소가 헌정 사상 초유의 대통령 탄핵 인용 결정을 내린 이후 한국 정치권은 물론 미국의 한인들에게서도 자주 들을 수 있는 말이다.

지금 국론 통합을 강조하는 많은 이들의 뜻을 짐작하기에 그 의도를 의심하진 않는다. 그러나 국론 통합이란 말의 뜻과 의미를 한 번쯤 곱씹어 볼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국론의 사전적 정의는 나라 안의 공론 또는 국민 일반의 여론이다. 여기서 생각해 봐야 할 점은 과거 어느 때보다 사회가 복잡다단해진 이 시점에 도대체 국론 통합이란 것이 가능한 것이냐다.



일당독재 국가가 아닌 한 여당과 야당, 보수와 진보, 부유층과 빈곤층이 존재하게 마련이다. 누구나 오랜 세월에 걸쳐 자신이 속한 계층, 집단의 이해에 따라 형성된 가치체계와 신념이 있을 것이다.

큰 이슈에 대해 여론조사를 실시해도 찬반이 갈리게 마련이다. 응답자 전원 또는 90% 이상 절대다수가 한쪽 방향으로 쏠리는 여론조사라면 애초에 조사를 할 가치가 없는 일이다. 하지만 논쟁의 강도가 높은 이슈, 찬반이 극명하게 갈리는 이슈에 대해 국론 통합을 주장한다면 애초에 불가능한 일을 이루고자 하는 것이다.

미국만 봐도 알 수 있다. 치열했던 지난해 대선의 후유증은 지금도 가시지 않았다. 여론조사에서도 트럼프 행정부 출범 이후 분열과 갈등이 심해졌다는 응답이 더 많다.

미국의 언론매체들도 '미국의 양극화'를 우려한다. 그러나 이와 관련해 정부 관리나 고위 정치인이 "국민 여론이 분열돼 미국의 안보, 경제, 사회적 안정이 걱정된다. 국론 통합이 필요하다"란 발언을 하진 않는다. 미국의 문제는 국민 여론의 통합이 아니라 모든 국민을 감싸 안으려는 정치권의 노력으로 해결해야 한다는 기본적 인식이 깔려있기 때문이리라.

민주주의의 기본은 서로 다름을 인정하는 것이다. 나와 다른 생각을 가진 이가 법의 테두리 안에서 주장을 편다면 그 주장에 동의하든 말든 그의 권리를 인정한다는 자세가 민주주의 국가 국민이 갖춰야 할 덕목이다. 나와 다른 주장을 하는 이가 소수라고 해서 그들을 무시해선 안 된다. 반대로 어떤 사안에 대해 다수가 동의한다고 해서 다른 의견을 가진 소수를 국론 통합을 저해하는 세력으로 몰아붙일 권리를 다수가 갖게 되는 것도 아니다.

반면, 한국에선 오래전부터 나라가 어수선할 때마다 국론 분열을 우려하며 국론 통합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말이 정부, 정치권, 언론매체에서 들려오곤 했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국회의 탄핵 의결 이후 촛불시위와 태극기 시위 대결 과정에서 꾸준히 흘러나온 '국론 분열'이란 말은 헌재의 탄핵 인용 결정 이후 봇물 터지듯 쏟아져 나온 '국론 통합'이란 말로 대치됐다.

국론 통합은 신기루 같은 것이다. 과거 권위주의에 의존한 정부에서 국론 통합을 전가의 보도처럼 내세웠던 이유는 정부가 원하는 방향으로 국민 여론을 몰고 가려는 의도 때문이다.

민주화가 된 이후 정부에서도 국론 통합이란 말은 여전히 쓰였다. 국론 분열이란 말에 불안해하고 국론 통합이란 말에 안정감을 느끼는 국민이 꽤 많았던가 보다.

국론 통합은 구호와 같은 것이다. 그 구호는 정부와 정치권의 책임을 은연 중에 다른 생각을 지닌 국민의 탓으로 돌리는 부작용을 담고 있다. 미국이 한국에서 배울 점이 있다면 한국도 미국에서 배울 것이 있다.

앞으로 한국이나 한인사회에서 국론 분열, 국론 통합이란 말이 더 이상 들려오지 않길 바란다. 말과 글은 생각을 지배하는 속성을 지녔기 때문이다. 정부와 정치권은 국가와 국민을 위해 일하고 국민은 다수결에 따른 대의정치와 법치의 원칙에 승복하면 된다. 국민 여론을 통합의 대상으로 보면 국민의 생각을 뜯어고치거나 여론을 오도하고 조작하고 싶다는 충동이 들게 마련이다. 이는 역사가 증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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