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네트워크] 정치 과잉 시대의 '작은 사치'
최 민 우 / 한국 중앙일보 문화부 차장
호황을 누린 곳은 또 있다. 대형 뮤지컬이다. 전통적으로 1~2월은 비수기다. 하지만 올해는 달랐다.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공연한 '그날들'은 유료 점유율 90%를 훌쩍 넘겼고, 약체 출연진이란 평가를 받았던 '아이다'는 역대 최고 흥행기록을 세웠다. 한국 초연 무대를 선보인 '보디가드' 역시 78%의 점유율로 선방했다. 김영란법에, 엄중한 시국이라 공연계에선 고전을 예상했는데 결과는 예상 밖이었다. CJ 관계자의 분석은 이렇다. "아무리 대통령 탄핵 여부가 궁금해도 TV에서 온종일 틀어대면 지겹지 않겠나. 눈을 돌려 영화관에 가 봤자 또 폭로투성이다. 사회적 의미나 시의성에서 잠시라도 벗어나고 싶은 발길이 공연장으로 향한 듯싶다."
현실도피 정서가 엉뚱하게 뮤지컬 흥행으로 귀결된 셈이다. 그래도 단지 정치 피로감만으로 10만원 남짓한, 적지 않은 돈을 척척 낼 수 있을까. 여기엔 "최근 트렌드인 '작은 사치'가 한몫했다"(안호상 국립중앙극장장)는 진단이 나온다. 지난해만 해도 가성비가 대세였다. 넉넉하지 못한 지갑인 터라 비용 대비 최고 효과를 내는, 실속 소비가 미덕이었다. 하지만 '인생 뭐 별건가, 가성비만 따지다 귀한 것 놓칠라'라는 불안감에, 가끔 나를 위해선 과감히 투자하자는 심리가 '작은 사치'를 작동시켰다.
물론 사람들은 눈치채고 있다. 어차피 아파트를 살 수 없어, 자동차를 굴릴 형편이 안 돼 '작은 사치'로 값싼 자기 위로를 한다는 것을. 그러면 또 어떤가. 정치 과잉 시대가 우리에게 선사한 의외의 교훈이 있다면 이것 아닐까. 그토록 잘난 부자도, 권력자도 감방 갈 수 있다는 것 말이다. 그러니 지금 무엇을 하든 주눅 들 필요 없다. 세상의 정답은 없다. 고급 디저트 먹으려고 사방팔방 다녀도, 예쁜 식기에 꽂혀 인터넷 서핑에 정신이 팔려도 괜찮다. 소소하고 유치한 게 어쩌면 더 진짜일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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