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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서교차로] 여자의 일생-후편

이 기 희 / 윈드화랑 대표·작가

요즘 나는 여자로 태어난 것이 정말 다행이란 생각이 든다. 할 일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초장 끗발은 별로였는데 파장 끗발이 세다고나 할까. 밥 먹으러 오라는 사람도 많고 맛난 별미 만들어 나눠 먹을 친구도 부지기수다. 내 나이에 날 필요로 하는 사람이 넘쳐나니 오호 쾌재라! 요리 잘하고 갖다바치기 열심이면 어디가서든지 왕따당할 염려 없다. 나이 들어 살판 날려면 배푸는 게 최고다.

오, 근데 나이 들수록 해바라기로 아내만 보고 있는 서방님들은 어찌 할꼬? 애들에게 김치도 못 담가주고 세일 누비며 잡동사니 수집할 재주도 없고 역량 및 경험 미달로 손주 봐 줄 형편도 못돼 마냥 죄없는 인터넷만 두드려댄다.

젊어서 크게 내세울 것 없고 밥 퍼는 걸로 인생을 마칠 뻔했던 아내들이여! 여자의 일생은 후편을 찬찬히 들여다봐야 드라마의 본래 의미가 드러난다. '여자가 똑똑하면 팔자가 사납다'는 말은 우리 어머니가 제일 듣기 싫어하는 소리다. 무학으로 청춘에 홀로 되셔 두 남매 키우느라 갖은 고초 겪으셨지만 여자도 배움에 정진하면 남자 백 명보다 더 낫다고 가르치셨다.

근래 종영된 '사임당-빛의 일기'는 현모양처와 천재적인 화가의 길을 동시에 걷고자 했던 사임당의 일생을 인간적인 고뇌와 불멸의 사랑으로 재조명했다. 사임당의 연인이자 예술의 동반자로 설정된 드라마 속 이겸은 허구적인 인물이다. 사임당은 그림, 서예, 시 재주가 탁월하고 도학, 문장, 고전, 역사 지식 등에 해박했다. 사임당의 '초충도(草蟲圖)'를 보면 실제로 나비와 벌레들이 살아서 움직이는 듯하다.



화가로 유명했던 사임당이 부덕의 상징으로서 존경받게 된 것은 사후 1백년 17세기 중엽 조선 유학을 이끈 송시열이 사임당의 그림을 극찬하며 천지의 기운이 응축된 힘으로 율곡 이이를 낳았을 것이라는 평가에서 비롯된다. 율곡이 유학자들의 존경을 받게 되자 사임당은 천재화가보다는 그를 낳은 어머니로 칭송받기 시작해 부덕과 모성의 상징으로 추앙 받게 된다.

하지만 사임당이 48세로 작고할 때까지 아내로서 행복한 삶을 살았는지는 의문이 간다. 19세에 내세울 관직도 없고 홀어머니 슬하에서 자란 이원수와 혼인해 4남3녀를 낳았지만 '동계만록'에 적힌 두 사람의 대화를 보면 부부 사이의 금슬이 썩 좋지 않았던 것처럼 보인다. 사임당은 자신이 죽은 후 남편이 재혼하지 말 것을 간청 했지만 남편 이원수는 주막집 권씨와 사임당 생전에 이미 딴살림을 차렸고 사후에는 술주정꾼이고 행패가 심한 권씨를 아내로 맞아들였다. 잘나고 유식하다고 남편 사랑을 받는 것은 아니다. 현모보다 양처 되기가 더 힘들다.

2007년 여성계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선덕여왕.유관순 열사를 제치고 5만원권 지폐의 주인공으로 신사임당이 채택됐다. 여성계는 '신사임당이 현대를 살아가는 오늘날의 여성들에게 의미있는 인물인가'라는 질문을 제기한다. 아이들 성적표가 엄마 성적표가 되고 애들을 명문 대학에 보내는 게 가치평가의 기준이 되는 사회에서 참된 어머니가 되는 길은 쉽지 않다. 그래도 평범하지만 훌륭한 어머니의 삶을 산 사람은 하늘의 별처럼 많다. 손이 닳도록 먹이고 입히며 가족을 보살핀 내 어머니도 당신의 어머니도 그리고 당신도 지금 여자이자 어머니인 그 길을 가고 있다. 여자의 일생이 눈물과 고초의 가시밭길이라 해도 고생 끝에 낙이 오는 인생의 후편 드라마는 마음 먹기에 따라 지금부터 펼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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