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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며 생각하며] 사노라면

김 도 수 / 자유기고가·뉴저지

'사노라면 언젠가는 밝은 날도 오겠지. 흐린 날도 날이 새면 해가 뜨지 않더냐.(중략) 한숨일랑 쉬지 말고 가슴을 쫙 펴라. 내일은 해가 뜬다. 내일은 해가 뜬다.'

김문응이 작사하고 길옥윤이 작곡한 '내일은 해가 뜬다'라는 노랫말이다. 가사가 너무 현실 부정이라는 이유로 제3공화국 시절 금지곡으로 묶였으나 1980년대 이후 운동권에 의해 '사노라면'이라는 노래로 불려졌다. 그 후 가수 김장훈 등이 편곡해 부르면서 대중화되었고 '헬조선'으로 낙담하던 청년 세대들에게 참고 기다리다 보면 쥐구멍에도 볕 들 날도 있다는 희망을 주는 긍정 가요로 거듭났다.

지난 주말 또 한 분의 교우가 우리 곁을 떠나셨다. 여든 넘게 사셨으니 남들이야 쉽게 호상이라 할 테지만 유족들 입장에서는 슬프고 안타까운 영원한 이별일 것이다. 근년 들어 주위에 아픈 분들이 많고 하나둘 세상을 하직하는 분들이 있어 안타깝다. 다들 이민 1세대로 밤낮없이 일만 하다 노년을 외롭게 지내시던 분들이라 더욱 그렇다.

필자는 비교적 젊은 시절 비이민 비자로 미국에 발을 디딘 뒤 부모형제는커녕 일가친척 없이 이 땅에 살고 있다. 그러니 교회 어른들이 부모요 일가친척인 셈이라 그들의 죽음이 남의 일 같지 않을 때가 많다. 특히 5월 가정의 달이 더욱 그렇다.



이 달만 되면 30년 전, 한국에 계신 어머님이 연수 70도 못 채우시고 갑자가 소천하셨다는 비보를 받았지만 장례에 참석 못한 원죄가 나를 우울하게 한다. 당시 뉴욕의 제이콥재비츠라는 곳에서 신발 쇼가 열렸는데 부쓰 하나를 빌려 상품을 전시하던 바로 그 날짜와 장례일이 겹친 것이다. 많이 고민하다 주위 사람들의 권면도 있고 해서 쇼 참가 쪽으로 가닥을 잡고말았는데 그 결정이 평생 후회를 불렀다. 신발 쇼야 해가 바뀌면 또 오는 것이지만 한번 떠나신 어머님은 영원히 돌이킬 수 없었기 때문이다. 고향을 찾을 때마다 늘 동구밖까지 뛰어나와 맞아주시던 어머니의 존재는 더 이상 그곳에 안 계셨고 댓돌에 신발을 벗어 놓고 마루에서 올리는 아들의 큰절을 받으시던 어머님의 빈자리는 지금도 여전하다.

이런 사연이 필자만의 이야기일까. 1980년대 이전의 이민 세대들에게는 누구나 경험하다시피 한 흔한 이야기 아닌가?

이민 가방을 풀기가 무섭게 다음날부터 바로 몸으로 부딪히며 살아갈 방안을 찾아 헤맸던 상황에서 부모형제, 일가친척, 고국의 지난날들을 생각함은 이민 생활을 망칠 수 있는 사치 감정으로 치부된다. 같은 일터에서 남편은 야간, 아내는 주간 근무를 하다 보면 밤새워 일한 남편이 아침 퇴근과 함께 아내로부터 아이들을 인계 받고 아내를 일터까지 태워준 뒤 아이들을 먹이고 입히고 학교 보내고 데려오는 등 뒤치닥거리에 휘둘리다 보면 어느듯 하루해가 저무는 부부 맞교대 인생에서 잠 같은 잠을 자본 적이 없지 않은가. 그렇게 해도 아파트 렌트, 차량 할부 및 보험료, 전기세, 물세 등 각종 과금을 내고 나면 먹고 쓸 생활비가 빠듯했던 그날들을 잘 참고 견딜 수 있었던 것은 내일을 향한 꿈이 받쳐 주었기 때문이리라. 무엇보다 입시지옥 없는 미국에서 아이들을 잘 공부시켜 남부럽지 않게 키운다는 보람과 소명이 피곤과 좌절을 이기게 했기 때문이다.

근래 타주에서 살다 교우가 된 동년배 한 분은 무려 14년을 혼자 살다 1990년도 중반 시행된 사면 때 힘겹게 가족을 해후했다고 한다. 그의 미국 생활을 듣다 보면 사는 것이 뭔가 싶다. 불법체류 초창기 7년 동안 일 년 365일 중 단 하루 정월 초하루 외에는 하루 12시간씩 일만 했단다. 그때 젖먹이로 헤어졌던 딸이 이제 어른이 되어 함께 살지만 60 중반에 벌써 귀도 치아도 관절도 안 좋아 날마다 병원 신세를 지는 반병신이 되었다며 허탈해 한다. 그래도 암흑 같은 14년과 그 후 고통의 긴 세월을 이긴 힘은 '사노라면 언젠가는 밝은 날이 올 것'이라는 소망의 끈을 놓치지 않아서라는 그의 모습에 지금도 외로운 그늘의 겹이 느껴진다.

지난 주일은 어머니날이었다. 자녀들이 모처럼 선물도 준비하고 함께 식사 자리를 마련하는 등 하루살이 효도지만 부모의 마음은 감격으로 흐뭇했을 것이다. 성경은 자녀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자녀들아! 너희 부모를 주 안에서 순종하라. 그것이 약속 있는 첫 계명으로 그렇게 하면 네가 잘되고 땅에서 장수한다고 말이다. 세상의 자녀들이여! 이렇게 잘되고 장수를 이끄는 효도! 오늘부터 실행해 보심이 어떨까? 어머니날 단 하루 챙기는 형식적인 효도가 아닌 매주 한 번이라도 부모에게 안부 전화부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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