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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뜨락에서] 느낌의 위력

정명숙 / 시인

너무 진지하고 행복한 꿈에서 깨어나고 싶지 않은 때가 있다. 할 수 없이 일어나 꿈 이야기를 전하려 하면 너무 시시하고 실없는 사람처럼 보일 때가 많다. 왜 그럴까. 바로 그 민감한 느낌을 고스란히 전달 할 수 없기 때문이 아닐까. 느낌이란 100% 주관적이다. 의사소통에 쓰이는 언어, 몸짓 그리고 눈빛을 다 동원해도 지극히 개인적이고 섬세한 느낌을 감히 다 전달할 수는 없는 법이다.

"이곳에서 발이 녹는다/ 무릎이 없어지고, 나는 이곳에서 영원히 일어나고 싶지 않다// 괜찮아요, 작은 목소리는 더 작은 목소리가 되어/ 우리는 함께 희미해진다// 고마워요, 그 둥근 입술과 함께/ 작별인사를 위해 무늬를 만들었던 몇 가지 손짓과/ 안녕, 하고 말하는 순간부터 투명해지는 한 쪽 귀와// 수평선처럼 누워있는 세계에서/ 검은 돌고래가 솟구쳐 오를 때// 무릎이 반짝일 때/ 우리는 양팔을 벌리고 한없이 다가간다"

김행숙 시인의 '다정함의 세계' 전문이다. "제목 그대로 이 시는 '다정함'이라는 느낌의 세계로 우리를 초대한다… 신기해라 느낌의 세계는, 놀라워라 느낌의 위력은… 나는 네가 커피 향을 맡을 때 너를 천천히 물들이는 그 느낌이 무엇인지를 모르고, 네가 일곱 시간을 자고 눈을 떴을 때 몸을 감싸는 그 느낌이 어떤 것인지를 모르고, 네가 좋아하는 가수의 목소리가 너를 어떤 느낌으로 적시는지를 모른다. 너를 관통하는 그 모든 느낌들을 나는 장악하지 못한다… 느낌이라는 층위에서 나와 너는 타자다… 그렇다면 사랑이란 무엇인가. 아마도 그것은 느낌의 세계 안에서 드물게 발생하는 사건, 분명히 존재하지만 명확히 표명될 수 없는 느낌들의 기적적인 교류, 어떤 느낌 안에서 두 존재가 만나는 짧은 순간일 것이다. 나는 너를 사랑하기 때문에 지금 너를 사로잡고 있는 느낌을 알 수 있고 그 느낌의 세계로 들어갈 수 있다. 너를 사랑하기 때문에 지금 너에게 필요한 느낌이 무엇인지를 이해할 수 있고 그 느낌을 너에게 제공할 수 있다. 그렇게 느낌의 세계 안에서 우리는 만난다. 서로 사랑하는 이들만이 느낌의 공동체를 구성할 수 있다." 신형철 평론가의 '몰락의 에티카'에서 인용했다.

몇 년 전에 구겐하임에서 이우환 화백의 전시가 있었다. '한국이 낳은 세계적인 화가' 하며 매스컴은 요란하게 치장했었지만 나는 크게 실망했던 기억이 있다. 100호의 화선지에 선 한 줄을 그렸는데 당대 최고의 한 미술평론가는 그 선속에 온 우주를 표현했다고 평했다. 신형철은 나를 실망시키지 않았고 오히려 평론가라는 직업을 존경하고 흠모하게 만들었다. 실력 있는 한 평론가가 되기 위해 바쳐야하는 세금은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시간과 열정임을 온몸으로 배웠다. 지금까지 삶을 살아오면서, 또 문학을 공부해 오면서 귀결되는 하나의 주제는 사랑이었다. 톨스토이의 '부활', 도스트엡스키의 '죄와 벌', 그리고 플라톤의 '향연' 에서도 사랑은 항상 주제이고 문제의 해결책이다. 사랑이 없는 세계를 상상해보자.



내가 처음 프라하를 여행했을 때 받은 첫인상은 사람들이 모두 무표정한 플라스틱 인형들 같았다는 것이다. 우리의 삶, 역사, 그리고 미래를 긍정적이고 생산적인 세상으로 이끌어가는 모멘툼은 역시 사랑이다. 물론 사랑 없이도 눈부시게 발전해가는 세상은 편리하게 돌아가겠지만 세상은 너무 기계처럼 딱딱하고 건조하게 될 것이다. 사랑의 본질에 관심을 갖고 몇 년 전부터 심각하게 고민해오고 있다. 우선 알고 있는 사랑의 개념을 하나하나 내려놓고 근본부터 다시 정의를 내리며 쌓아 올라간다. Erich Fromm의 'The Art of Loving'은 사랑에 관한 많은 지식을 얻을 수 있었던, 사랑의 개념을 관념으로 전개하고 기술로 풀어낸 사회심리학자의 저서다. 이제는 본질, 관념을 따지지 않기로 했다. 내가 느끼고 좋은 감정이 솟아나면 그것이 사랑이다. 사랑을 느끼면 그 느낌을 표현하고 교류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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