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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우리말] 희로애락(喜怒哀樂)의 비밀

조현용 / 경희대학교 교수

희로애락(喜怒哀樂)은 기쁘고, 노엽고, 슬프고, 즐겁다는 말입니다. 보통 인생사(人生事)를 이야기할 때 쓰는 말이죠. 우리네 인생은 희로애락 속에서 피어납니다. 기쁜 일이 있으면 슬픈 일도 있고, 슬픈 일이 있으면 즐거운 일이 있습니다. 물론 살다보면 노여운 일도 있겠죠. 세상이란 게 그런 겁니다. 그래서인지 희로애락을 관조(觀照)하는 우리의 태도는 왠지 통달한 것 같기도 하고, 처량하기도 합니다.

저는 희로애락이라는 말과 생로병사(生老病死)가 동시에 떠오릅니다. 희로애락하고 생로병사를 겪는 것이 인생이라는 생각 때문일 겁니다. 그런데 생로병사의 순서와 희로애락의 순서를 살펴보면 흥미로운 점을 발견하게 됩니다. 생로병사는 일생의 순서대로 나열되어 있는 반면에 희로애락은 무슨 순서인지 짐작이 잘 가지 않습니다. 무슨 순서일까요?

단어에서 순서는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나열하는 경우에는 보통 앞에 있는 어휘가 중요하거나 가깝다는 의미입니다. 예를 들어 '남녀 차별'이라는 어휘에는 이미 남녀 차별이 담겨있습니다. '남녀'가 남자와 여자의 순서로 나열되어 있기 때문이죠. 앞에 무엇이 나오는가가 중요하기 때문에 자신을 앞에 넣으려고 애를 쓰기도 합니다.

물론 생로병사처럼 단순히 순서를 나타내는 경우도 있습니다. 봄.여름.가을.겨울이라는 말은 계절의 순서를 보여주죠. 한편 순서를 나타내는 것 같은 말에도 중요도가 담기는 경우가 있습니다. 대표적인 예로 낮밤과 밤낮을 들 수 있습니다. 우리말에서는 주로 낮밤이라고 하지 않고 밤낮이라고 합니다. 다른 언어는 대부분 낮을 앞에 씁니다. 주야(晝夜)의 경우를 보면 알 수 있죠. 생각해 보면 낮과 밤은 어떤 게 먼저인지 알기 어렵습니다. 순서를 따지기가 어렵다는 말입니다.



희로애락은 무슨 순서일까요? 저는 중요도의 순서이기도 하고 시간의 순서이기도 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생로병사와도 일정한 연관성이 있겠다는 생각도 합니다. 우리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기쁨이겠죠. 태어난 것이 기쁘고, 살아가는 게 기쁘고, 사람을 만나는 게 기쁩니다. 어떤 일을 성취해 내는 것이 기쁘고, 다른 사람에게 인정받는 것이 기쁩니다. 하지만 우리 인생이 늘 순탄할 수만은 없겠죠. 뜻대로 안 되는 현실이 화가 나고, 나만 안 되는 것 같아 화나고, 차별 받는 일에 분노합니다. 나에게만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것 같다는 생각에 하늘을 향해 원망을 쏟아놓기도 합니다.

분노가 깊어지면 슬픔이 되기도 합니다. 해도 해도 안 될 때, 내 능력을 벗어날 때 슬픔을 느끼게 됩니다. 부모님과 형제와 자식은 기쁨의 근원이면서 동시에 슬픔의 이유이기도 합니다. 무한히 기쁜 삶을 살면서도 순간순간 닥쳐오는 슬픔에 몸을 못 가누기도 합니다. 참 힘이 들기도 합니다. 어떤 사람은 슬픈 일이 올까 봐 두려워합니다. 그러다가 문득 이 생이 즐거운 거라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이때의 즐거움은 진짜 즐거운 겁니다. 기쁨과 노여움과 슬픔을 거쳐 온 즐거움은 두 말할 나위 없이 행복한 겁니다. 그래서 즐거움은 행복과 통합니다.

희로애락의 순서는 인생을 이야기하고 있는 듯합니다. '희(喜)'에서 시작하여 '낙(樂)'으로 끝나는 것은 어찌 보면 이상한 순서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노(怒)'와 '애(哀)'가 연달아 나타나는 것도 쉽게 설명하기 어렵습니다. 인생은 '희'에서 시작해서 '낙'으로 끝나는 겁니다. 살다보면 화나는 일도 있고 슬픈 일도 있을 겁니다. 그렇다고 인생이 기쁘지 않은 것은 아닙니다. 우리의 인생은 낙(樂)으로 끝납니다. 정확히 말하자면 기쁨과 즐거움의 세상입니다. 때때로 노와 애가 우리를 괴롭힐 겁니다. 이겨내야 합니다. 아프지만 지나가게 해야 합니다. 희로애락은 우리에게 삶의 지혜를 들려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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