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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애틀 동네 빵집의 반란, 준 베이커리 JUN BAKER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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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애틀 중앙일보]    기사입력 2016/08/18 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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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거리에서 문화가 된 빵

빵이라는 단어를 떠올리면 많은 사람들에게 아련한 추억이 떠오르는게 있다. 단팥빵을 보면 돌아가신 부모님이 생각나고, 여러가지 야채들을 넣고 만들었던 영양빵을 먹으며 즐거워했던 여고시절 요리실습 시간과 강원도 여행길에 먹어본 술빵, 이제는 내 자녀가 좋아하는 슈크림빵 까지. 이렇게 배고픔과 정을 나누었던 빵은 이제 한국인에게는 없어서는 안될 귀한 음식의 추억과 역사로 자리잡고 있다.

빵의 기원

빵은 빵(포르투갈어: pão 팡[*])이 일본에서 변형되어 우리나라에 소개된 말이다. 일반적으로 밀과 호밀같은 곡분에 물과 이스트 같은 효소를 넣어 발효시켜 구은 음식을 일컫는다. 빵의 어원은 라틴어인 Paris에서 유래되었으며 빵은 각각 영국은 브레드, 프랑스는 Pain(빵), 독일 Brot(브로트), 네덜란드 Brood(브로트), 중국 면포 등으로 다양하게 불리우고 있다.
우리나라 빵 역사는 100년이 조금 넘으며 구한말 1885년 선교사 언더우드와 아멘젤러 등이 빵을 구은 것이 우리나라 최초의 빵으로 본다고 전해지고 있다. 오늘날의 한국어 ‘빵’은 일본에서 전해진 것으로, 18세기 일본인들은 포르투갈어 ‘팡데로(Pão-de-ló)’를 ‘팡’이라 불렀고, 이것이 일제강점기 이후 한국에서 빵이 되었다고 한다. 그렇다고 일제강점기 이후에야 한반도 사람들이 빵을 처음 알았다고 생각하면 안되고. 19세기에 선교를 위해 한반도를 찾았던 유럽 출신 가톨릭 신부의 가방에도 빵이 들어 있었다고 한다.

건빵

러일전쟁 중이던 1905년 밀가루와 쌀가루에 계란 등을 배합해 맥주 이스트로 발효시킨 ‘갑면포(甲麵麭)’라는 빵이 개발되었다고 한다. 이 갑면포는 ‘간팡(カンパン, 乾パン)’이라고도 불렸다. 간팡은 보존과 휴대가 편리하도록 비스킷 모양으로 만든 빵이다. 구울 때 일반 빵처럼 공기구멍 없이 성형해서 가마에 넣으면 터져버리기 쉬어, 간팡에는 구멍이 두 개 나 있다. 굽는 방식은 비스킷과 같지만, 그 발상은 빵에서 나온 것이라 마른 빵이란 의미에서 ‘건(乾)’ 자를 붙여 간팡이라고 불렀다. 지금도 한국 군대에서 지급되는 건빵이 바로 이 간팡에서 유래한 것이라니 신기하다.

단팥빵

맥주 이스트를 많이 쓰지 않은 일본식 빵이 여러 가지 개발되었으며. 그중에서 한반도에 큰 영향을 끼친 빵이 ‘안팡(あんパン, 餡パン)’이다. 한국어로는 단팥빵이라고 부른다. 소를 넣은 만두를 연상시키는 이 빵은 다른 서양빵보다 훨씬 급속하게 일본인들 사이에 퍼져나갔다. 안팡의 인기는 식민지 조선에서도 마찬가지였다. 특히 팥의 단맛이 익숙지 않은 빵맛을 친숙하게 만들었다. 단팥빵은 지금도 지속적으로 사랑받고 있다.

계란빵

운동회에서 빵 먹기 경기에 주로 사용된 작은 다마고(卵)빵이란 것도 있었다. 밀가루에 설탕․계란․탄산수소나트륨을 넣고 가볍게 섞어서 계란 모양 틀에 넣어 구운 건조빵인데, 단맛이 강했다고 한다. 이스트를 구하기 어려워 이스트 대신 탄산수소나트륨을 넣어 부풀린 이 다마고빵이 조선인들에게 인기를 끌었는데 이 다마고빵은 계란빵이라고도 불렸다. 1921년 4월 21일자 《동아일보》에는 당시 연희전문학교 운동회의 빵 먹기 대회 장면이 실렸는데, 거기 나오는 빵이 바로 다마고빵이다(현재의 계란빵). 이런 장면은 운동회가 열리는 곳이면 어디서든 볼 수 있을 정도로 다마고빵의 인기는 대단했다고 한다. 아직도 달콤한.. 계란의 풍미를 가지고 있는 빵은 현대에도 많은 인기를 얻고 있다.

현미빵을 파는 어린이들

마지막으로 현미로 만든 빵도 인기를 모았었다. 일본어로 ‘겐마이팡(げんまいパン)’은 밀가루 대신 현미가루를 넣고 청주 만들 때 쓰는 누룩으로 부풀린 빵이다. 이 빵을 큰 나무 상자에 넣고 다니면서 판매하는 아이들의 사진이 1923년 2월 4일자 신문에 실리기도 했다고 하니, 오래된 빵의 행보를 알 수 있다.

공장제 빵의 시대가 열린 한반도

해방과 함께 미군의 남한 주둔은 빵을 다시 부각시킨 계기가 되었다. 1930년대 식민지 조선의 상류층 중에는 빵에 익숙한 사람들이 제법 많았다. 그들은 해방 후 미군이 제공해주는 밀가루와 설탕으로 만든 빵을 무척 반겼다. 이 점에 주목해 제과업에 뛰어든 사람 중에 허창성(許昌成, 1914~2003)이라는 인물이 있다. 그는 1945년 10월 말 소규모 제분업을 했던 형의 도움과 미군에서 쏟아져 나오는 설탕·버터·캔디 등을 이용해 빵과 과자를 만드는 상미당(賞美堂)이란 상호의 제과점을 고향 옹진에 열었다. 그 후 1959년 용산에 빵과 함께 비스킷을 대량으로 생산할 수 있는 공장을 세웠다. 이것이 바로 ‘삼립산업제과주식회사’다. 이와 같이 1960년대 이후 한국의 빵은 이른바 ‘양산업체’라고 부르는 공장에서 대량생산 되었다. 이들 양산업체가 지속될 수 있었던 배경에는 군대라는 대량 소비처가 있었다. 아울러 1953년 미국의 원조식량에 의지하여 실시된 초등학교 급식빵 제도도 양산업체가 성장하는 데 힘을 보탰다. 상미당은 삼립산업제과 주식회사로, 다시 삼립식품과 샤니로 변화를 거치면서 사업을 확장했다. 특히 허창성의 차남이 맡은 샤니는 1980년대 이후 찐빵 판매와 함께 파리바게뜨와 파리크라상 같은 프랜차이즈 빵집을 열어 사업적인 성공을 거두었다. 이외에도 제빵업은 크라운제과, 해태제과등 국내 굴지의 기업으로 성장했다.
재벌 빵집’에 밀려난 추억 속 동네 빵집
하지만 1950년대 중반 이후 생긴 빵집은 독일빵집, 뉴욕빵집, 뉴시카고 같은 서양식 이름을 붙였다. 한국전쟁 이후 미국의 영향력이 빵에 개입된 결과였다. ‘독일’ 혹은 ‘뉴욕’과 같은 빵집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서양에서도 번성한 지역의 이름일 수 록 효과가 컸다. 아마도 1960~70년대에 청소년 시기를 보낸 독자라면 아버지가 퇴근길에 빵집에서 사온 달콤한 빵맛을 추억으로 가진 사람이 많을 것이다. 그 당시는 고급 호텔에서 운영하는 제과점, 아니 베이커리에서 만든 빵을 맛보는 경험은 특별한 계층이 아니면 어려웠던 시절이었다.

새로운 빵맛의 세계로

1980년대 이후의 큰 변화는 소규모의 지역 빵집 가운데 몇몇 빵집이 기업형 대형화의 길을 걸었다는 점이다. 그중 고려당․뉴욕제과․신라명과 등의 제과점이 빵을 공장에서 생산하는 프랜차이즈 사업에 본격적으로 뛰어들면서 빵 양산업체의 판도가 달라지기 시작했다. 유명 지역 빵집의 약진으로 인해서 1960~70년대에 성업했던 양산업체들이 문을 닫았다. 그런데 2000년대 이후 파리바게뜨와 뚜레쥬르라는 프랜차이즈 업체의 등장으로 양산업체는 물론이고 동네 빵집까지 시장에서 내몰리게 되었다. 2014년 11월 현재 파리바게뜨의 국내 매장은 무려 3,200여 개에 이른다. 파리바게뜨와 경쟁하는 CJ(씨제이)의 뚜레쥬르는 1,200여 개 매장을 개설하고 있다. 이 프랜차이즈 업체를 단순히 빵집이라고 부르기에는 온당치 않다. 그들은 대형 공장에서 각종 빵을 양산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들 업체를 비롯하여 재벌가에서 운영하는 빵집을 두고 ‘재벌 빵집’이라고 부른다. 21세기 초입 한국 사회에서 빵은 여전히 부식의 자리에 머물면서 공장에서 찍어낸 틀에 박힌 맛으로 사람들의 입맛을 장악하고 있다. 하지만 최근에는 새로운 변신을 하는 데 주저하지 않는 모습이 펼쳐지고 있다. 1990년대 해외여행 자유화가 이루어지면서 일본식과 미국식 빵맛에 길들여져 있던 많은 한국인이 유럽의 오래된 빵을 맛볼 수 있게 되었다. 최근에는 빵 만드는 일이 자연친화적인 직업임을 깨닫고 제빵 관련 일을 하려는 사람도 많아졌다. 2000년대 이후 한국에도 자연 친화적 수제 빵집이 등장해 공장제 빵맛에 길들여진 한국인에게 새로운 세상을 열어주고 있다.

시애틀 동네 빵집의 반란, 준 베이커리 JUN BAKERRY

시애틀 지역에도 한인이 직접 운영하는 빵집들이 여러군데가 있다. 그 중에도 홍준희 오너 파티쉐가 운영하는 준 베이커리가 있다. 홍 파티쉐는 서울 신라호텔과 하이야트 호텔에서 근무했던 경력을 살려 워싱턴주 한인마켙내에서 7년간 빵집을 운영하다 페더럴웨이 뉴월드 마켙내에 준 베이커리를 개업했다. 빵도 유행이 있다고 말하는 홍 파티쉐는 예전에는 단맛에 치중했다면 지금은 건강한 맛을 많이 선호한다고 한다. 따라서 준 베이커리에서는 단팥빵을 만들때 단맛을 낮추기 위해 직접 팥을 삶고 다양한 곡물빵을 판매한다. 이 곳에서 판매하는 깨찰빵과 찹쌀떡이 들어간 팥빵, 블루베리 빵, 크림치즈 데니쉬등은 큰 인기가 있어 조금 늦으면 다 팔려버려 맛보기가 힘들때도 있다한다. 또한 당일 판매를 원칙으로 하고 있어 남는 빵은 ” 나누리 “ 라는 노숙자 돕는 단체에 도네이션을 하고 있다. 준 베이커리는 냉동생지가 아닌 직접 반죽하고 발효시켜 만드는 100% 수제 빵집이다. 엄선된 신선한 재료로 다양한 제품을 개발하여 현지인들의 입맛에 성공했다. 개업한지 일년만에 철저한 품질과 유통 관리를 통해 동네 빵집에서 준 베이커리라는 이름을 브랜드화 시켜 시애틀 다운타운에 있는 우와지마야 일본마켙에 납품을 시작할 수 있었다. 이어 벨뷰, 렌톤, 오레곤 매장까지 확장해서 납품할 계획이다. 일본 마켙에 납품이 들어갔다는 것은 우리나라 빵 맛이 일본인들 입맛도 사로잡았다는 것으로, 처음 대부분의 빵 기술을 일본에게 전수 받았던 것을 비춰 봤을때 고무적인 일이라 할 수 있겠다. 마켙 뿐만 아니라 디저트 케익의 폭발적인 공급요청으로 커피샵, 버블티 카페등 디저트 메뉴를 추가하고 싶은 사업주들에게는 납품접수와 베이커리에 관심있는 창업 준비자들에게는 창업지원을 할 계획이다. 그리고 단체 주문시 할인 혜택과 웨딩케익 등 이벤트 케익을 원하는 대로 주문 제작도 하고 있다. 준 베이커리는 오전 8시 부터 오후 9시 까지 7일 오픈한다.

오늘 그리운 사람들을 떠올리며 따뜻하고 부드럽고 달콤한 빵을 함께 나누면서 더 많은 사랑을 할 수 있으면 좋겠다.

사진 홍준희 . 신범수 파티쉐
문의처 T.206-592-2345. 253-267-9338

글. 사진 kim@koreadailyseattl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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