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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과학자의 세상 보기] 3면이 바다라며

며칠 사이 많은 학교들이 개학을 했다. 우리집 늦둥이도 마침내 초등학교에 입학했다. 내 자신이 초등학교에 입학하던 날을 생생히 기억하는데 시간이 빨리 간 듯도 하고 그간 많은 일들이 있었구나 싶기도 하다. 이 아이도 앞으로 많은 고민과 결단의 순간 그리고 자기에게 던져질 인생의 변화구들을 받아들이며 살아갈 것이다. 넘어져봐야 다시 일어서는 것도 배울 수 있다. 조마조마해도 곁에서 약간의 코칭만 하는게 부모의 역할이다.

내 자신을 돌이켜보면 인생의 큰 밑그림을 그려놓고 그에 따라 여지껏 살아온 것은 아니었다. 그냥 그때그때 최선을 다한다며 정신없이 날아드는 커브볼과 변화구를 어찌어찌 쳐내다보니 여기까지 와있더라라는게 솔직한 심정이다. 어찌되었던 전공인 생명과학을 생업으로 삼아 가족부양하며 산다고 친구들은 내가 운좋은 녀석이라고들 한다.

그런데 어려서부터 내꿈이 과학자이었냐면 대답은 절대 아니올시다이다. 책 좋아하고 뚝딱거리며 뭔가 만드는 것을 좋아했던 편이라 ‘기술자나 발명가 같은 것’을 생각하긴 했었다. 나중에 군대도 ‘공병’이라는 것이 되겠다고 생각했었으니까. 사실 과학과 나는 악연(?)으로 시작했다. 국민학교 시절에는 과학 대신 ‘자연’이라고 했는데 그 자연과목 선생 J라는 이는 내가 겪어본 단연 최악의 선생이었다.

내가 자란 읍소재지급 시골에서는 아버지가 읍사무소이나 군청에 다니는 읍내아이들이나 선생님댁 아이들이 귀공자들이었다. J선생은 뿔테안경을 많이 쓴 그 아이들 몇몇을 유독 눈에 띄게 싸고돌았고 그가 운영하던 과학반도 그런 아이들만 가입시켰다. 과학반에서 실험했었다는, 그래서 그 아이들만 알수있는 문제를 시험에 낸 적도 있다. J선생 덕분에 불행히도 나는 과학이라는 과목은 속물적이고 엘리트주의적이라는 첫인상을 갖게되었다.



중학교때는 정부주도하에 이공계바람이 불었다. 우리나라는 3면이 바다라면서 해양과학 쪽도 언론에서 많이 띄워주었다. 제7광구나 해저망간단괴 등이 언론에 오르내리는 가운데 여름방학숙제로 ‘배 만들기’라는게 나왔다. 손재주엔 나름 자신이 있던 편이라 나무토막을 깎고 장난감에서 떼어낸 모터까지 달아 글자 그대로 모터보트를 만들었다. 사포로 매끈하게 다듬은 모터보트를 내심 자랑스럽게 개학날 들고갔는데 읍내아이들은 목공소에서 맞춰온 울긋불긋한 배들을 대거 가져왔다. 나의 배는 입상조차 못해 서운했지만 내년엔 더 멋진 배를 출품하겠노라고 다짐했다.

그리하여…중2 여름방학때는 설계도까지 그려가면서 공을 들여 군함을 만들었다. 읍내아이들의 목공소 배처럼 베니어판을 구부려 선체를 만드는 따위는 상상도 못할 일이었지만 포스터컬러칠까지 해놓으니 근사했다. 친구들이 봐도 내가 봐도 개학날 나의 군함은 단연 돋보였다. 그런데 이번에도 꽝!이 아닌가? 최고상은 작년보다 더 큰 목공소제 배를 가져온, 나중에 과학자가 되겠다던 그 아이가 또 받았다. 이번엔 너무한다 싶어서 교무실로 과학선생님을 찾아가 따졌더니 하시는 말씀이 ‘네가 직접 만든거였냐? 목공소에서 맞춰온 건줄 알았는데?’ 어이가 없어서 배나 돌려달라고 했더니 응접실에 두신다고 교장선생님께서 가져가셨단다…

고3때 학력고사를 마치고 똑똑한 친구들 여럿이 해양학과, 조선공학과 그리고 원자핵공학과 등에 진학하였다. 지금과는 달리 인터넷도 없고 정보가 너무나 태부족하던 시절이다. 그중 해양학과를 가게된 친구가 ‘전망이 괜찮겠지?’라고 내 의견을 묻길래 ‘물론이지, 정부가 지원한다잖아!’라고 대답했던 적이 있다. 하지만 생명공학으로 진로를 정한 나도 아무것도 모르기는 매한가지였다. 앞서 말한 초등학교, 중학교때 경험으로 볼때 내가 이렇게 과학자가 된 것은 참으로 아이러니이다. 심각한 침체를 겪고 있다는 거제도지역 조선산업이나 원자력발전소의 향방에 대한 뉴스들을 볼때면 친구들과 우리의 어린시절이 생각나 마음이 무거워진다.




최영출 (생명공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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