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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건강 에세이] 중국의 식인기록

중국의 고전을 보아도 식인 습관이 여러 군데 기록되어 있다.

어린 시절 손에 땀을 쥐고 밤을 새워 읽었던 삼국지에서 유비가 어떤 싸움에서 대패해 홀로 며칠씩 굶으면서 퇴각을 하다가 민간인 집에 하루 밤을 머물기를 청한다. 주인은 상대방이 모든 주민들이 성군이라고 우러러보는 유비임을 알고는 아무 말도 없이 저녁거리고 고기 한 접시를 대접한다.

유비는 허기를 잘 때운 다음 날 주인에게 작별을 고한다. 그러나 뜰을 나서자 유비는 주인의 부인이 죽어 있음을 본다. 주인은 마땅한 먹을거리가 없어서 부인의 허벅지를 잘라 음식으로 대접한 것이다.

비슷한 이야기는 조조에게서도 본 것 같다. 그러나 꾀가 많고 의심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조조는 결국 음식을 제공한 남자를 뒤쫓아 돌아가 죽이고 말지 않았던가? 이 책을 읽은 것이 너무 오래 되었으니 두 장면이 내 머릿속에 겹쳐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여간 삼국지를 인용하는 이유는 식인행위 때문이다.



하긴 유비, 관우, 장비가 도원결의를 할 때에도 그들은 술에 각자의 피를 섞어 마셨다. 이것도 넓은 의미에서는 식인행위에 속한다.

또 수호지를 읽다 보면 양산박 백 팔 두령 중에는 그들의 본부인 양산박 입구에서 술집을 경영하는 부부가 있다. 채원자(菜園子) 장청(張靑)과 모야차(母夜叉) 손이랑(孫二嫏)이 그들이다. 이들은 마땅한 손님이 있으면 술에 정신을 잃게 하는 몽혼 약을 타서 잠들게 한 다음 그들에게서 고기를 도려내어 술안주인가 만두 속으로 사용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호랑이를 맨손으로 때려죽였다는 힘이 무척 센 다른 두령 행자(行者) 무송(武松)도 그들에게 당할 뻔했다.

아직도 이 장면이 생생하게 기억나는 것은 어린 시절 무척 배가 고팠을 때 중국집에서 나오는 만두를 맛있게 먹을 때마다 혹시 내가 사람 고기를 먹지 않는가 하는 어리석은 기우가 머리에서 떠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중국 역사상 유일한 여자 황제였던 당나라의 측천무후가 통치하던 시절 사람 고기가 얼마나 흔했던지 개고기가 한 근에 500전에 거래된 데 비해 사람 고기는 한 근에 100전에 불과했다고 한다.

정말 실제였는지는 몰라도 당시의 풍습을 묘사한 이인화의 소설 [초원의 향기]에는 이런 글이 실려 있다.

“예리한 칼날이 죄인의 얼굴에 엷게 칼집을 내었다. 정수리부터 이마, 콧날, 입술, 턱까지. 그리곤 좌우로 면도하듯 껍질은 벗겨 내었다.

그렇게 온몸의 살갗을 벗긴 뒤 형리는 어깨에서부터 하나하나 살점을 떼어내기 시작했다.

살점들은 소금과 양념에 절여 먹기 좋은 육장이 되어 항아리에 담겼다. 사람 고기로 만든 육장은 장안성 안의 감옥으로 가져가 죄수들에게 먹였다.”

당시에는 죄인들만이 아니라 일반인들도 식인을 일삼아 했다. 그래서 친구나 첩을 잡아 고기를 먹었다든가 노비를 죽여 그 고기를 별미로 먹었다는 기록이 자주 나온다. 또 조그만 흉년이 들어도 사람들은 다른 사람을 잡아먹는 것을 당연히 여겼으며 이 시절 약방에서는 사람의 간 같은 내장을 비싼 값에 팔았다고 한다.


정유석 (정신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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