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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며 생각하며] 소쩍새는 그렇게 울었는데

김 도 수 / 자유기고가·뉴저지

군주민수(君舟民水)! 2016년 12월 25일 한국의 '교수신문'이 발표한 올해 사자성어(四字成語)다. '강물이 화 나면 배를 뒤집는다'는 말로 순자의 왕제편에서 따온 말이라고 한다. 사실 물은 자신의 부력을 통해 배를 띄워 사람들이 이용케 하는 것이 순기능이다. 그런데 물이 격동하면 배를 침몰케 하는 역기능도 있다는 것이다. 이 말을 정치에 대입하면 군주(君主)가 민의를 거스르면 민심의 물결이 정권을 뒤집을 수도 있으니 조심해야 한다는 고언이다.

한국이 처한 지금의 정치 상태를 잘 대변하는 말로 공감을 얻으면서 각종 신문.방송들이 인용 보도한 바 있다. 설마 그렇게까지야! 하며 우려했던 국민들의 마지막 우려가 2016년 말 '최순실 국정농단'이라는 실체적 진실 앞에 민수(民水)는 들끓고 군주(君舟)는 좌초 직전이다. 여당을 포함한 절대다수 국회의원의 동의로 대통령은 탄핵소추와 함께 직무정지 상태이고 헌법재판소가 소추 결의의 정당성을 심리하는 가운데 매주말 수십만의 촛불 행렬이 청와대를 향해 만성고(萬姓膏)를 외쳐대고 있어 안타깝다.

1992년 4월 15일 전국 교수들의 이익과 뜻을 대변할 공론지로 창간한 교수신문은 비록 6만5000부의 주간신문이지만 한국의 대표적인 지성 그룹인 대학교수와 관계 지식인들을 독자로 한다는 점에서 나름의 영향력과 권위를 인정 받고 있다. 특히 2001년 오리무중(五里霧中)을 시작으로 매년 교수들의 투표로 선정 발표되는 그해의 사자성어는 당해 연도 정치 현실을 쾌도난마(快刀亂麻)하는 말로 자리하고 있다.

화려한 수사와 다짐 속에, 국민행복시대를 열겠다고 공언하며 2013년 2월 25일 임기를 시작한 박근혜 대통령은 시작과 함께 국정원 댓글 사건에 발목을 잡혀 수개월 동안 정통성 시비에 시달려야 했다. 와중에 검찰총장이 찍혀 나갔고 의혹이 사실로 밝혀지면서 관련 국정원 직원들이 기소되고 수사 검사들이 좌천되었지만 대통령은 전혀 자신과 무관하다며 모르쇠로 일관한다.



이런 상황에서 교수신문은 2013년의 사자성어를 도행역시(倒行逆施)라고 발표하였다. 순리를 거슬러 행동한다는 뜻이다. 지난 1년 불통 속에 비민주적이고 시대정신에 어긋나는 정책이나 인사를 통해 역사의 수레바퀴를 퇴행적으로 운영하면서 민주주의를 후퇴케 했다는 지적이다. 도행역시는 춘추시대 오자서(伍子胥)가 그의 친구에게 '도리에 어긋난 줄 알지만 부득이하게 순리에 거스리는 행동을 하였다'는 약간은 상황논리를 감안해 달라는 자책성어(自責成語)다. 따라서 신문은 2014년 초 제구포신(除舊布新)할 것을 주문한다. 다른 말로 온고지신(溫故知新), 즉 묵은 것을 제하고 새로운 정치를 펼쳐 낡은 관행과 정치 행태를 청산하고 약속한 개혁을 심도 있게 실행하라는 주문이다.

그러나 취임 2년차인 2014년은 박근혜정부에게 가혹한 한 해가 된다. 4월16일 세월호의 침몰로 304명의 꽃다운 생명이 죽어갔으나 청와대와 정부는 무력하였다. 사후약방문식으로 해경이 전격 해체되는 가운데 대통령의 7시간 반의 행적은 여전히 안갯속이지만 그 대답을 명쾌하게 내놓지 못하고 있다. 그런 가운데 최순실 국정농단의 전초전 격인 정윤회 사건이라는 자중지란이 일어났지만 청와대는 '찌라시' 운운으로 본질을 흐렸고 오히려 국기를 흔들었다며 이를 폭로한 관련 참모를 배신자로 정죄하고 사실을 보도한 언론과 기자들을 탄압하였다. 이러니 2014년 말 교수신문은 지록위마(指鹿爲馬)라는 세평을 내놓게 된다. 사슴을 가리켜 말이라고 일컫는다는 말로 정부의 관료와 환관들이 권력을 독점한 가운데 당신의 귀와 눈을 막고 사슴을 말이라고 우기고 있다고 비꼰 것이다.

2015년 한국의 여름은 무더웠고 지루했다. 메르스 사태로 민심이반이 극에 달한 해다. 메르스라는 희귀 질병에 대처하는 청와대와 보건복지부 관료들은 탁상공론에 뒷북행정으로 국민 불신만 가중시켰다. 첨단장비에 최고 의료진을 갖췄다는 삼성병원이 예방치료는커녕 발병 진원지로 오명을 날렸다. 2015년 말, 교수신문은 이런 나라를 에둘러 혼용무도(昏庸無道)라고 평가하였다. 나라 상황이 마치 암흑에 뒤덮인 것처럼 온통 어지럽고 혼탁하다는 말이다.

'한 송이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봄부터 소쩍새는 그렇게 울었나 보다. 한 송이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천둥은 먹구름 속에서 또 그렇게 울었나 보다'. 서정주 시인의 '국화 옆에서'란 시다. 지난 4년 동안 교수신문이 그렇게 직언을 하고 언론이라는 소쩍새와 천둥이 그렇게 울어댔어도 박 대통령은 지금도 그들이 옳고 국민이 틀렸다고 하니 '귀는 귀로되 귀 없는가 하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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