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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뜨락에서] 그 후 40 년

최 복 림 / 시인

사이공의 가장 번화한 간선도로는 이름이 세 개다. 프랑스가 베트남을 지배할 때 ‘Rue Catina’였다. 전쟁이 한창이던 1965년 미국은 ‘Freedom Street’로 바꾸었고 베트남 전쟁이 끝나자 호찌민 정부는 ‘민중 항거의 거리’로 불렀다.
나는 1960~70년대 월남전 이야기를 수없이 들었다. 미국이 한국에 참전을 요청했고, 6·25전쟁을 겪은 한국은 월남의 공산화를 저지하기 위해 미국 편을 들었다. 채명신 장군이 이끄는 한국군은 많은 전공을 세웠고 참전 장병은 귀국할 때 상당한 돈을 벌어 왔다. 미국 내의 반전 여론이 거세지고 월맹군은 정글에서 끝까지 싸웠다.
미국은 마침내 전쟁을 포기했다. 1975년 사이공 미 대사관 옥상에서 마지막 헬기가 월남인 여러 사람을 태우고 남중국해로 날아갔다. 월맹군은 붉은 깃발을 들고 진군하고 패전한 월남인들은 작은 배를 타고 험한 파도 속으로 뛰어들었다. 당시 미 대사관 건물은 영사관이 되고 수교 이후 대사관은 수도 하노이로 이전했다. 베트남 정부는 미 CIA 건물을 허물지 않고 바로 뒤에 정부 청사를 지었다. 지금 CIA 건물은 가까이서 보지 않으면 눈에 띄지 않는다.
그 후 40년. 1995년 수교 후 기업 투자가 본격화되었다. 지금 베트남 어디를 가든지 미국 물결이 넘치고 현지인들은 키 큰 미국인을 환영하고 있다. 증오의 흔적이나 상처는 보이지 않는다. 사이공(호치민시티), 유명한 관광지인 호이안, 호에이, 하노이는 단체 관광객과 배낭족으로 붐비고 있다. 참전한 한국인들도 건설, 자동차, 전자 분야를 포함한 기업 투자가 활발하고 여행자들이 몰려오고 있다. 사이공에는 10만 이상의 한인이 있으며 플러싱 같은 한인타운이 있다고 한다. 호텔에서 우연히 튼 TV에는 한국 드라마가 자막 없이 바로 베트남 말로 방송되고 있었다. 세상이 변해도 많이 변했다.
베트남인들은 미국인을 환영하고 있으나 정부는 미국에 대한 적대 감정을 버리지 않고 있는 것 같다. 베트남 어디를 가든지 붉은 별이 그려진 국기와 낫 공산당 깃발이 나뿌끼고 주요 건물마다 국부 호찌민 사진이 걸려 있다. 호찌민은 1969년 전승을 보지 못하고 사망했다.
사이공에서 40마일 거리에 쿠찌 땅굴이 있다. 투어버스는 도착 전 기록영화를 보여 주면서 “미국인들이 보면 거부감이 생길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 비디오는 “평화로운 마을을 미국인이 침범했고… 용감한 16세 소녀가 여러 명의 미군을 죽였으며… 베트남 북부군은 기어이 미군을 물리치고 승리했고… 쿠찌는 영원히 죽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호찌민 군대는 이 땅굴을 이용해 사이공의 심장부를 강타, 연합군의 전의를 꺾었다. 전쟁 후 베트콩 정부는 1백만 명의 남쪽 사람들을 재교육훈련소로 보내 공산주의 사상 교육을 시켰다. 이 과정에서 16만5천 명이 고문과 중노동으로 사망했으며 1975~1986년 사이 3백만 난민이 미국 등 자유국가로 흘려 들어갔다.
그 후 40 년. 베트남은 전쟁의 잿더미에서 일어섰다. 모터바이커가 거리를 질주하고, 건설 붐이 일고 있으며, 젊은이들은 밸렌타인데이 새벽까지 춤을 추고 있었다. 전후 젊은 세대가 늘어나 9천만 인구의 다수가 산업전선에 뛰어들고 있다.


호에이 관광지에서 붉은 공산당 국기가 있는 셔츠를 입고 지나가는 10여 명의 미국 젊은이들을 보았다. 그들에게 옷은 그냥 옷이다. 베트남 국기는 상관하지 않았다. 미국에서 최소한 10달러 이상 하는 옷을 3달러 정도에 사 행복한 표정들이었다.
전쟁에서 사망한 미군 가족이 봤으면 무척 불편할 것이다. 이들을 나무랄 것인가. 베트남 젊은이들은 얼마나 미국인을 좋아하는가. 지나간 전쟁, 죽은 자는 말이 없고, 산 사람은 행복해야 한다. 참혹한 내전, 그들이 말하는 미국전쟁(US War)이 끝난 지 40년, 몬순 장대비가 수백만 전사자의 피를 씻어내고 전쟁의 기억은 사라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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