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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믿음] 19센트의 행복
김문수 / 퀸즈 정하상 천주교회 주임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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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 중앙일보]    발행 2017/11/14 미주판 18면    기사입력 2017/11/13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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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추의 낙엽이 짙어지는 어느 날 봉사를 많이 하신 어르신들을 모시고 단풍구경을 갔습니다. 아침부터 구름이 끼고 가랑비가 오락가락하는 날씨에도 일상에서의 작은 일탈에 어릴 적 소풍가는 아이들 처럼 들뜬 마음으로 각기 배정된 차에 주저없이 올라타고 떠납니다.

설레임에 들뜬 마음은 마치 삶을 달관한 시인의 노래처럼 어두운 구름도 간간히 내리는 가랑비도 방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롱펠로우의 시 '비 오는 날'이 생각나는 아침이었습니다. 거칠게 번역해 보면 "진정하고 한탄을 멈추시게 슬픔에 잠긴 가슴이여!/ 구름 뒤에는 아직도 태양은 밝게 빛나고 있다네"를 읊조려 봅니다. 일상의 바쁨에 헉헉거리며 투덜대다가도 이 시구에 위로를 받습니다. 이 시구는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 그리고 부활을 가장 시적으로 아름답고 간결하게 표현한 것 같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위로를 받습니다.

그 날도 바로 이 시구로 을씨년스런 가을 속으로 여정을 시작했습니다. 역시 여행 중의 재미는 여담을 나누는 것입니다. 특히 옛 추억을 나누며 지루할 수 있는 시간이 참 행복한 순간으로 바뀝니다. 서로의 추억담은 "맞아 맞아!"하며 동시대를 산 이들의 공감에 더 기쁘고 즐겁습니다. 그리고 휴게소가 보이자 커피 생각이 납니다.

그 날도 어김없이 휴게소의 스타벅스에 들려 커피를 사고 여느 젊은이 처럼 스타벅스 카드로 계산을 했는데 19센트가 부족했습니다. 문제는 여기서 발생됩니다.

별 생각없이 지갑을 꺼내 보니 현금이 한푼도 없었습니다. 참 난감한 상황이었습니다. 요즘 보통 크레딧 카트를 사용하니 지갑에 플라스틱 카드와 영수증만 가득하고 현금이 한푼도 없을 때가 많습니다. 이렇게 비상사태가 오기 전에는 전혀 불편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더군다나 같이 간 일행도 그 근처에 없는 상황이라서 기죽은 소리로 "현금이 없는데 크레딧 카드로 19센트를 내면 안될까요?"하고 물으니 캐셔가 난처한 표정을 짓습니다. 찰나의 순간에 이 난감한 상황을 모면하기 위한 수 많은 생각이 떠오릅니다.

그 때 바로 뒤에서 복음이 들려옵니다. "I have a quarter." 이에 뒤를 돌아보니 바로 뒤에 선 젊은이가 웃으면서 동전을 캐셔에게 건네줍니다. 이 간단한 문제 해결에 캐셔도 웃음을 되찾고 제 자신도 안도의 숨을 쉬며 고맙다는 말과 함께 되돌아서서 "God bless you!"라 인사하니 깜짝놀라며 활짝 웃습니다 (예전엔 "God bless you"라는 덕담이 참 일상적이었는데 요즘 젊은이 사이에서 이 말은 거의 잊혀진 옛말이 되어버렸습니다). 그리고 줄에 선 이들 모두 함박웃음을 짓습니다.19센트가 가져온 황당한 상황에서 19센트가 주는 기쁨과 행복은 말로 표현할 수 없었습니다.

아주 적은 19센트가 이토록 큰 행복을 줄 수 있다는 사실에 놀랐습니다. 그리고 일행을 만나 19센트의 사연을 이야기 하며 짐짓 자랑(?)을 합니다. "내가 오늘 한 젊은이의 천국을 보장해주었습니다. 그 젊은이는 나중에 분명히 오늘의 19센트의 선행으로 천국에 갈겁니다." 모두 한바탕 즐겁게 웃습니다. 별 것이 아닐 수 있는 그 젊은이의 행동은 가만히 생각해보면 '용기'입니다.

사실 우리가 불행하게 생각되는 때는 큰 도움을 받지 못할 때가 아니라 사소한 도움도 못 받을 때 같습니다. 일상의 사소하고 소소한 도움은 삶의 활력이 되고 삶의 무게를 가볍게 하는 힘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습게 생각합니다.

19센트의 행복감에 젖어 잦은 가랑비에도 불구하고 참 아름다운 단풍구경을 하고 돌아오는 길에 화잇스톤 브릿지를 건널 때 플러싱의 하늘은 비구름이 갈라져 파랗게 빛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기도합니다. 그 소소한 행복을 가슴깊이 느낄 수 있는 하루를 주셔서… 그리고 구름뒤의 햇살을 늦은 오후에 보여주셔서 주님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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