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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망경] 먹자골목의 수다쟁이들

서 량 / 시인·정신과 의사

뉴욕 플러싱 노던 불러바드 한인타운에 먹자골목이 생긴 지가 꽤 오래다. 맛깔스러운 한국음식 사진 위에 'Mukjagolmok'이라 써 놓은 광고판을 그 근처 도로변에서 봤다. 외국인 티가 물씬 나는 영어라도 좋으니 'Let's Eat Alley'라 하면 어떨까 싶었다.

영어에는 먹자골목이라는 말이 없다. 미국은 한국처럼 음식점이 다닥다닥 붙어있지 않다. 맛집을 소개하는 프로그램에 사람들이 입안에 음식을 쑥쑥 집어넣는 장면을 미국 TV에서는 보기 힘 든다. 요리에 대한 소문이 파다하고 블로그나 페북에 음식 사진이 연신 뜨는 한국이다. 우리의 구강성(口腔性)은 참 대단하다.

프로이트의 학설을 들먹이지 않아도 사람의 성격이 구강성과 항문성으로 나뉜다는 것은 일반상식이다. 구강성은 한두 살 때의 발육과정에서 생체 에너지가 입으로만 쏠렸던 체험이 평생 동안 마음을 지배하는 경향을 묘사한다. 항문성은 서너 살 때 똥 오줌을 가리는 훈련을 통하여 잘 닦여진 괄약근의 제어기능과 더러움이나 무질서에 대한 경계심이 사람 심리를 좌우하는 추세를 뜻한다.

'oral'은 흔히 쓰이는 일상용어는 아니지만 'oral exam (구술시험)' 또는 'oral sex (구강성교)' 같은 말로 우리에게 약간 친숙하게 다가온다. 그러나 'orality(구강성)'라는 말은 거의 정신과 전문용어다.



구강성은 맛집에 대한 과장된 관심 식도락의 추구 같은 순수한 구강 취향 외에도 낙천적인 기질 포용력 변호사의 언변이 보여주는 따스하거나 공격적인 언어의 효능 지식을 향한 탐구심 그리고 때로는 불안정한 심리적 공허감 같은 인간의 진면목을 포괄적으로 암시한다.

입은 우리 몸에 에너지를 공급하는 입구(入口 entrance)다. 들 입 입 구! 그러니까 '입'은 한자어의 '入'과 같은 말이다. 모든 음식과 심지어는 음식이 아닌 것들도 입에 들어가는 것을 어쩌나.

쉬운 영어로 입을 'mouth'라 한다. 누구를 험담하거나 욕한다는 뜻으로 1941년부터 흑인들이 쓰기 시작한 'bad-mouth'는 이젠 사실 표준영어가 됐다. 입이 거친 사람을 'loud-mouth' 입이 가벼운 수다쟁이를 'big-mouth'라 하는 걸 보면 'mouth'가 들어가는 단어는 썩 유쾌한 느낌을 주지 않는다.

정신분석에서는 '히스테리(hysteria 신경질)'를 곧잘 부리는 사람을 구강형 성격(oral character)으로 치부한다. 'hysteria'는 19세기 초에 정신신경증상을 지칭했고 원래 라틴어와 희랍어의 자궁이라는 단어에서 유래했다. (자궁절제 수술을 'hysterectomy'라 한다.) 우리는 온갖 신경증세가 자궁에 이상이 있어서 발생한다는 남존여비적 편견 속에 살고 있는 것이다.

'It sucks!'라는 슬랭은 '별로야 형편없어 밥맛이야' 따위 옵션 중에서 '밥맛이야'라고 구강성이 뛰어나게 번역해야 제 맛이다. 'suck'는 빤다는 뜻이니까 언어감각이 예민한 당신이라면 1971년부터 스스럼 없이 쓰이기 시작한 이 점잖지 못한 슬랭에 성적인 뉘앙스가 담겨 있다는 사실을 염두에 둬야 한다.

'Don't try to teach your grandmother to suck eggs'라는 매우 희귀한 속담이 있다. 할머니한테 달걀을 빠는 법을 가르치려 하지 말라고? 이건 공자 앞에서 문자 쓰지 말라는 경고! 문자를 쓰는 습성도 구강성이다. 글쟁이거나 언론인들이나 말장난을 업으로 삼는 정치가들도 입김이며 입질깨나 센 사람들이다. They are the hysterical big-mouths. -- 그들은 신경질적이고 입이 가벼워서 물에 빠져도 입만 동동 뜨는 수다쟁이들이다. http://blog.daum.net/stickpo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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