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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음악인가] 연설하는 머리가 부럽다

김 호 정 / 한국 중앙일보 문화스포츠부 기자

나는 이 연설문을 한 번 뜯어서 분석해볼 작정이었다. 1962년 4월 6일 뉴욕의 카네기홀. 공연만 하면 객석이 꽉 차던 지휘자 레너드 번스타인은 44세였다. 그가 청중 앞에서 입을 열었다. 첫 문장은 재미있고 마지막 문장은 놀랍다.

내용은 이렇다. "피아니스트 글렌 굴드가 곧 브람스 피아노 협주곡 1번을 나와 함께 연주할 것이다. 나는 굴드의 해석에 동의할 수가 없다. 속도는 너무 느리고 브람스가 써놓은 악상 기호를 무시한다. 협연자를 바꾸거나 부지휘자에게 무대를 맡길 수도 있었지만 그러지 않았다. 굴드의 시도는 흥미롭기 때문이다. 수없이 연주된 이 곡을 새롭게 보는 기회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크게 복잡할 것 없는 내용을 번스타인은 유려하게 포장해낸다. 첫 마디는 "겁먹지 마십시오. 굴드씨가 여기 왔습니다"다. 청중의 긴장을 푼다. 3분여의 연설에서 "내가 왜 오늘 지휘를 하는가?"라는 핵심질문을 반복하면서 집중을 유도한다. "오래된 질문이 있습니다. 협주곡에서 누가 보스인가. 협연자인가, 지휘자인가"라고 한 대목은 이후 단골 인용문이 됐다. 또 "예전에 딱 한 번 협연자에게 양보한 적이 있는데 그때도 굴드였습니다"라고 한 뒤에는 청중의 폭소 때문에 잠시 말을 쉬어야했을 정도였다.

폭소와 집중을 오가던 청중은 결국 번스타인의 편이 된다. 오죽하면 공연 다음날 신문에는 "지휘자가 협연자를 말로 공격했다"는 내용의 기사도 실렸다.



연설문을 끝까지 보면 번스타인의 말이 매혹적인 이유가 단지 기술 덕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다. 번스타인은 자신과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의 시도가 재미있다고 여기는 여유가 있다. 고민 끝에 나온 신선함을 위해서라면 한없이 느리고 답답하게 흘러가는 연주를 함께하는 고생도 할 만한 가치가 있다 여기는 신념이 있다. 말하는 방식보다 생각 자체가 사람을 잡아끌었던 거다.

요즘 SNS를 들여다보면 희한하게도 연설이 인기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고별 연설, 배우 메릴 스트립의 골든글로브 시상식 연설이 화제였다. 미국 대학의 졸업 시즌엔 수많은 명연설이 배달된다. 번스타인의 요지인 '관용'만큼이나 단순한 주제, 즉 '권력은 국민에게서 나왔다' 혹은 '소수자를 차별해서는 안 된다'는 것들을 확인해 주는 연설이다. 갈 길 바쁜 네티즌들이 좋은 연설만큼은 시간을 들여 듣고 보는 모습에서 번스타인의 스피치를 다시 떠올린다. 명쾌하고 바른 생각의 힘은 세다.

※이 칼럼에 나오는 음악은 온라인에서 들을 수 있습니다. 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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