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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로 읽는 삶] 며느리들의 수다

조 성 자 / 시인

나는 내 인생이 마음에 들어/한 계절에 한 번씩 두통이 오고 두 계절에 한 번씩 이를 뽑는 것/텅 빈 미소와 다정한 주름이 상관하는 내 인생!/나는 내 인생이 마음에 들어/(…)푸른 별들이 꼬리를 흔들며 내게로 달려오고/그 별이 머리 위에 빛날 때 가방을 잃어버렸지/가방아 내 가방아 낡은 침대 옆에 책상 밑에/쭈글쭈글한 신생아처럼 다시 태어날 가방들/어깨가 기울어지도록 나는 내 인생이 마음에 들어/아직 건너보지 못한 교각들 아직 던져보지 못한 돌멩이들/아직도 취해보지 못한 무수히 많은 자세로 새롭게 웃고 싶어

-이근화 시인의 '나는 내 인생이 마음에 들어' 부분

내 인생이 마음에 든다는 시인의 말은 역설일까 아님 자조일까 그것도 아님 순응일까. 여하튼 자신의 인생을 필사적으로 옹호하려는 것은 아직 도달하지 못한 어떤 고지를 향한 집요함이리라. 정기모임처럼 두통이 오고 고지서처럼 감기를 앓는 부실한 몸. 생래적으로 함량미달인 것 같은 육신을 끌고 여기까지 왔으므로 나도 내 인생을 향해 경의를 표하고 싶다.

내 인생이 마음에 든다는 선언은 인생 후반부에 거는 어떤 기대를 함의하고 있다. 기대하는 미래가 어떻든지 그 인생을 충분히 사랑하리라는 다짐도 있겠다. 시인은 시 중반에 "1부는 끝났다/나는 2부의 시작이 마음에 들어/새로 태어난 손금들을 따라가야지"라고 한다. 정해진 길을 가는 것이 인생 아니냐는 뜻으로도 읽힌다. 강한 부정이 강한 긍정이듯, 강한 긍정은 강한 부정이기도 할 것인데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뭐 대수냐는 듯, 어쩌겠냐는 듯 도도한 안간힘도 엿보인다.



너는 네 인생이 마음에 드니? 라는 물음을 나에게 던지다가 관계 안에서 공동운명체가 된 내 동서들을 생각해 보았다. 며칠 전 한 집안의 며느리 다섯이 카리브해로 여행을 다녀왔다. 동서지간이라는 이름으로 이삼십 년 넘게 살아온 여자 다섯. 맏이부터 막내까지 나이 차이도 커 세대 간의 벽도 느껴진다. 취향은 물론 건강상태나 삶을 읽어내는 독해력까지 아주 다른 피 한 방울 섞이지 않고 가족이란 이름으로 살아가는 관계들이다.

살면서 이런저런 갈등이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우린 하나의 원형 안으로 들어온 이상 대체로 묵묵하게 비교적 덤덤하게 가족 구성원으로서의 책임을 다해 왔다. 각자의 푸르고 야무진 꿈들이 있었지만 결혼이라는 굴레 안에서 개인의 성향은 가지가 쳐지고 모서리는 깎아내면서 무탈하게 관계유지에 협조해 왔다.

결혼은 상황을 예측하기 어려운 변수가 많은 미션이다. 부부지간의 문제는 물론이고 가족 구성원간의 문제가 돌발적으로 생기곤 한다. 가족이 많은 경우라면 더 그렇다. 여덟 형제라는 대 가족의 며느리라면 소소한 문제들 앞에서도 적잖은 기민함과 적응력이 필요하다.

개성을 잃어버리고 색깔을 지우며 살아온 며느리 다섯은 각자 인생에 할 말이 많다. 이탈을 시도하고 싶은 때도 있었다. 제2부의 인생을 위해서 권리장전을 선언하고 싶기도 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이만하면 우리 인생도 괜찮아"라는 말을 남국의 햇살 아래에 부려 놓았다.

며느리들의 수다는 중구난방이었지만 이제껏 각자의 인생이 마음에 들었든 들지 않았든 인생 후반부의 기대감도 갖게 해주었다. 탁월함이나 빼어남은 없을지라도 서로를 독려하며 여자로서의 가치를 이해하자는 결의 같은 것도 갖게 했다. 한 집안의 며느리라기보다 함께하는 벗으로서, 한 가문이 지탱해 가는데 조력자로서의 책임과 의무를 무겁지만은 않게 받아들이자는 것에 암묵적으로 동의했다.

제 인생이 마음에 드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그렇더라도 마음에 들기로 작정을 한다면 나름대로 다 괜찮은 인생이다. 어떤 인생에도 명암은 다르지만 사랑의 흔적들이 즐비하잖은가. 관계 앞에 최선을 다하는 일, 조금씩 무릎을 낮춰가며 화합해 가는 일, 그리고 작은 사랑들을 나누는 일로도 인생은 이미 괜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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