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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서교차로] 그대 가슴에 풍월을 묻고

이 기 희 / 윈드화랑 대표·작가

풍류는 아마추어가 즐긴다. 프로는 목숨을 건다. 어떤 일이건 프로에 진입하면 피곤해지고 풍류를 즐길 여유가 없어진다. 바람 '풍(風)' 자, 물 흐를 '유(流)' 자가 합쳐진 풍류는 속되지 않고 운치 있는 것을 일컫는 말이다. 풍류가 단순한 '바람'과 '물 흐름'이라면 향기를 맡을 수 없을 것이다. 풍류는 아우라다.

아우라는 어떤 사람이나 장소에 서려 있는 독특한 기운이다. 풍류는 오직 인간에게서만 풍겨나오는 독특한 아우라다. 사람과 사람, 자연과 사람, 물질과 대상, 소유와 비소유. 갈등과 고독을 초월하는 은은한 삶의 향기가 풍류다.

소싯적 미운 오리새끼처럼 줄지어 문단 풍류객들 꽁지를 따라 다닌 시절이 있었다. 한 점 팔리지도 않는 시화전 한답시고 커피 한 잔 시켜 놓고 마담 눈치 보며 온종일 황제다방에 죽치고 앉아 주머니에 먼지 뿐인 풍류 과객을 기다렸다.

맑은 바람과 밝은 달을 노래하는 '음풍농월(吟風弄月)'의 오기 하나로 시를 사모했던 천진난만했던 시절. 간경화증으로 유명을 달리한 소설가 김원일 선생의 막내 동생인 시인 김원도를 주축으로 '주변문학 동인회'를 만들어 문학의 꿈을 불태웠다. 김춘수 선생님을 지도교수로 모셨는데 동인회 이름 그대로 변방에서만 떠도는 꼬락서니가 후졌는지 별로 달갑게 생각하지 않으셨다. 그래도 여류 시인 지망생들은 중절모 쓰고 긴 바바리 펄럭이던 풍류의 거장을 먼발치에서나마 뵈려고 대구 동성로 거리를 배회했다. 풍류객 밥상에 수저 한 벌 못 올리고 찌질이로 흩어진 동인들 원혼 풀듯 훗날 혜성처럼 나타나 출세가도를 달린 사람이 있으니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중편 '전리'로 데뷔한 이창동 영화감독이다. '전리'에는 김원도의 비참한 죽음과 내 국제결혼이 악랄한 소재로 묘사돼 있다.



풍류가 없다는 건 삶의 멋도 모르고 예술에 무뢰한이며 감정이 메마르고 틀에 박힌 꽁생원이라는 말이다. 풍류는 살아 있음의 축복을 담은 생의 꽃바구니다.

밥 빌어먹는 사람에게 풍류는 사치고 허영이다. 예술적 생명력과 가치관, 생의 관조와 자연과의 합의를 통해 풍류는 시대를 초월하는 유토피아를 꿈꾸게 한다.

풍류의 세계는 비어 있다. 무작정 채우면 비어 있음의 미학이 소멸된다. 풍류는 생존적 가치에 불과했던 풍요와 평안이 인격적 가치의 세계로 승화되게 한다. 신과 교통하던 주술적인 행위가 인생과 예술, 자연과의 융합을 통해 풍류로 발전된다. 풍류에는 '한' '멋' '삶'의 세 가지 측면이 존재하는데 '한'은 하나.크다.높다 등의 뜻이 있고, '멋'은 흥과 율동, 조화와 자연스러움, 자유와 내실을 의미하고 '삶'에는 생명이라는 생물학적인 구체적인 개념이 포함돼 있다.

'홀로 앉아 금(琴)을 타고/홀로 잔 들어 자주 마시니/거문고 소리는 이미 내 귀를 거스르지 않고/술 또한 내 입을 거스르지 않네/어찌 꼭 지음(知音)을 기다릴 건가/또한 함께 술 마실 벗 기다릴 것도 없구료'. 이규보는 '적의(適意)'에서 혼자 즐기는 풍류세계를 노래한다.

참다운 풍류는 내가 온전히 없어진 상태다. 풍류는 자기중심의 세계에서 벗어나 다른 사람 혹은 자연과의 긍정적 세계로 옮겨가게 한다. 풍류도의 본질은 자연과 자연, 인간과 자연이 혼연일체 돼 많은 사람들과 사랑의 관계를 맺게 하는 데 있다.

그대 떠나보낸 빈 배에 홀로 앉아 빈 화선지에 혼자 치는 사군자는 그대 곁으로 바람에 묻어 보내는 칠현금 거문고 가락이 아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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