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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뜨락에서] 이 작은 뜰에서

이 재 숙 / 수필가

잠에서 깨어나듯 암흑 같은 세상에서 또 다른 세상이 열릴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지. "행복은 사라진 후에야 빛을 낸다"는 영국 속담이 생각났다. 눈이 온 천지를 하얗게 덮은 순백의 뜰에서 드라이브웨이를 눈삽으로 치우면서 새해를 맞는 감회가 남달랐다. 남편이 건강할 때는 스노우블로어로 이웃 네 가구가 공동으로 사용하는 긴 드라이브웨이까지 눈을 치웠다. 그때마다 조수가 되어 눈삽을 밀어 바퀴 사이에서 넘치는 눈을 깨끗하게 치웠다. C병원에서 수술을 받고 입원해 있던 남편은 크리스마스 전날 퇴원을 했다. 남편의 회복을 위해 정신없이 시간은 흘러갔다. 누구나 선물로 받은 새해 정유년도 눈 깜짝할 사이 2주일이 지났다. 바람에 날려 모퉁이마다 쌓인 마른 낙엽 위에도 티 하나 없이 하얗게 단장을 하고 나무에 소복이 쌓인 하얀 눈꽃송이들을 대하니 너무 아름다웠다. 아침에 다시 듣는 새소리도, 바람소리도 가슴을 뛰게 한다.

오랫동안 가꿔온 꽃나무들과 은밀한 이야기를 하다 예쁜 것들은 영혼이 새털처럼 가벼워야만 볼 수 있다는 것도 알았다. 눈꽃이 만발한 정원에서 문득 '내 마음의 정원을 어떻게 가꾸고 있는지?' 의문이 들었다. 집 정원은 필요하면 전문 업체에 의뢰해 가꿀 수도 있지만 내 마음의 정원은 언제나 메마르지 않게 자신이 직접 정성 들여 가꾸지 않으면 쉽게 황폐해질 것이다. 과연 '나는 누구인가', 내 안의 자원은 무엇일까. "Who ae you?" 하고 묻고 싶었다.

참 자기가 누구인지도 모르며 세상을 살아가는 것은 가장 슬픈 일이 아닐는지. 참 진리를 깨닫는 것은 얼마나 중요한 일인가. 참 나는 누구인지 근본적인 문제를 생각해 보며, 영원한 행복을 위해 신중하게 생각하고 또 노력해야 할 것이다. 내면의 안정과 힘인 분별력, 지혜, 믿음, 신뢰, 겸손, 희망 이런 것들이 충분한가. 자신이 주인이 되어 자존감을 상실하지 않으면서 어떤 삶을 설계할 수 있는지. 눈을 감으면 마음에 무엇을 담아야 할지. 그러나 인생은 자아를 발견하기 위한 영원한 여행이라는 생각에 위안을 얻게 된다. 내 미미한 능력과 지혜를 어떻게 삶에 실천해야 할지도 고민이 된다.

돌이킬 수 없는 지난 5년의 시간들이 주마등처럼 스쳐갔다. 하늘에 빛나는 그리움인 아들, 샌디 폭풍으로 큰 나무가 지붕을 덮쳤을 때도 살아있음에 감사했다. 거듭 2년 동안의 수술도 잘 견디며 회복 중인 남편이 함께할 수 있어 행복하다. 모든 것이 허망하다 하더라도 그것을 이기려는 노력만은 허망하지 않다. 그것을 인정함으로써 그것으로부터 벗어나기 때문이다. 사랑을 위한 고난은 얼마나 값진 일인지. 불행에서 벗어나려고 그것을 솔직히 인정하고 또한 극복하기 위해 노력함은 어떤 의미를 부여하려는 생활이 되기 때문이다. 고난이 닥칠 때 우리의 인격도 무너진다는데.



내 삶의 뒤뜰을 돌아보니 아름다운 시간도 있었다. 마음에서 피어나는 은은한 삶의 향기는 작은 정원이 주는 영혼이 충만하게 익어가는 그윽한 내면의 결실이 아닐는지. 뿌리가 깊은 나무는 바람에도 넘어지지 않는다. 내 인생의 뿌리가 되는 목표가 무엇이었던지 하루를 인내하며 사는 것은 안개가 걷히고 새날이 밝아 햇빛이 환하게 비추는 화창한 봄이 멀지 않았다는 믿음 때문이다.

브롱스식물원에서의 13년간 자원봉사는 내게 많은 의미를 주었다. "꽃을 많이 사랑하는 사람은 사람도 많이 사랑하는 거야"라며 어릴 적 시골 어른들이 아이들에게 들려주신 생각이 나서, 나도 고사리손이 꽃삽으로 흙을 파고 꽃을 심는 아이들에게 "꽃을 사랑하라고, 꽃다운 마음은 일생 지지 않는다"고, 서로를 존중하며 다름을 인정하고, 함께 오랜 시간 지내면서 나뿐 기억은 털어버리고 좋은 기억만 남겨 성숙함과 지혜로 같이 손잡고 살아야겠다고 다시 다짐해 본다. 이 작은 뜰에 꽃씨를 심어 평화와 소망이 거목으로 자라, 꽃향기뿐 아니라 마음의 향기도 널리 퍼지게 하는 붉은 닭의 울음처럼 힘차게 희망의 새해가 되기를 기도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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