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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뜨락에서] 킬링필드 현장에서

최 복 림 / 시인

이틀 전에 만난 두 명의 캄보디아 소녀를 생각한다. 초등학교 5~6학년은 되어 보였다.
이들을 만난 곳은 시아미프 킬링필드(Killing field) 기념관. 죽은 사람의 두개골, 다리, 엉덩이뼈를 쌓아 올린 큰 항아리가 있었다. 지금까지 이렇게 많은 유골을 본 적이 없다. 슬픔을 넘어 전율이 왔다. 캄보디아 말 밑에 영어로 된 설명문이 있었다. “여기 살육의 벌판에서 8천 명이 죽었다. 아내는 남편을, 아이들은 아버지를 잃었다.”
크메르 루즈 군인들은 1975~79년 지식인들을 포함한 동포를 성분이 다르다는 이유로 감옥에 가둔 후 구덩이를 파고 총을 쏴 죽였다. 대부분 두개골은 흰색인데 그중 핑크가 있다. 해부학 의사는 결혼한 여자들의 머리일 것으로 보고 있다.
죄수 중에 기적적으로 살아 도망한 사람이 있었다. 프롬 메이라는 남자는 다른 죄수 37명과 함께 형장에 끌려갔다. 총성이 울렸다. 옆 사람이 쓰러졌다. 죽은 줄 알았다. 비명이 그치고 핏덩어리 속에서 손발을 만져 보았다. 신기하게도 움직였다. 기적이었다.
도망 나와 마을 사람들에게 살육의 순간을 증언했다. “폴 포트가 이끄는 크메르 루즈군은 당시 캄보디아 인구의 4분의 1이나 되는 1백만 명 이상을 살해했다. 수도 프놈펜에 희생자가 제일 많았고 전국 곳곳에 기념관이 있다. 왜 그랬을까? 동족을 학살해야 할 이유가 있었던가? 히틀러처럼 미치광이였을까? 대답을 찾을 수 없었다.
어린 소녀들이 영어 설명문을 읽고 있었다. 재잘대는 음성에는 경악이나 슬픔이 없었다. 세기적 재앙의 의미를 기억하기에는 그들은 너무 어렸다. 나는 두 소녀와 함께 영어 설명을 읽었다. 그들은 나를 잊을 것이지만 나는 두 소녀를 영원히 기억할 것이다.
태국에서 지겹도록 죽은 라마 왕의 영정을 보았다. 그들이 들으면 분노하겠지만 나에게는 죽은 왕보다 떼죽음을 당한 캄보디아인이 더 중요하다. 태국이나 캄보디아에는 미소를 머금은 수많은 불상이 있다. 부처님의 얼굴보다 깔깔 웃는 소녀의 웃음이 더 아름다웠다. 종교는 아득하고 멀다. 살아있는 사람이 중요하다.
이날 오후 재래시장에서 모자와 모조품 선글래스, 가볍게 입을 수 있는 운동 바지를 샀다. 가이드는 가격을 반으로 치라고 했으나 나는 5달러짜리 선글래스를 4달러, 모자를 3달러에 샀다. 어려 보이는 여자 판매원은 기분이 좋아 보였다. “다음에 또 오세요.” 뭐라고 대답할 것인가. 우리는 스치고 지나가는 인연 아닌가.


유네스코 지정 문화유적지에 왔으면 걸어 다니면서 기웃거리지. 현지인을 고용, 인력거를 타고 좁은 골목을 지나가는 한국인이 있었다. 소달구지를 타고 논두렁을 가는 캄보디아인이 나에게는 더 인상적이었다. 대부분의 캄보디아 사람들은 키가 작고, 아마존 인디언처럼 피부 색깔이 검었다. 디너 쇼에서 들은 전통음악은 리듬이 느리고 슬픈 느낌을 주었다. 이 나라는 중국·태국·베트남의 침략으로 영토의 많은 부분을 빼앗겼고 베트남전쟁 때는 월맹 편을 들었다가 B-29 폭탄 세레를 받았다.
캄보디아에는 수많은 한국 기업이 투자를 하고 한국 식당, 관광객들이 넘치고 있다. 호텔 식당에서 만난 한국인 가족에게 물어봤다. 3박4일 여행에 항공요금을 포함, 50만 원밖에 안 된다고 한다. 한인들은 앙코르와트 유적지를 찾는 연간 수백만 외국인들을 상대로 장사를 하고 있는 것 같다.
캄보디아 학살이 끝난 지 40년, 내전이 완전히 종식된 지 20년, 이 나라는 지난 10년 사이에 엄청나게 발전하고 있다. 킬링필드를 보면서 생각했다. 죽은 사람만 불쌍하다. 간 사람의 기억을 끌어안고 언제까지 살 것인가. 산 사람은 행복해야 한다. 시대를 잘 만나야 한다. 학살당한 사람들은 억울하게도 잘못된 시대와 권력자를 만난 사람들이었다. 그들을 잊을 것인가. 우리의 자유와 안전은 공짜로 얻어진 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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