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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서교차로] 아들의 여자

이 기 희 / 윈드화랑 대표·작가

요즘 내 전화는 시도때도 없이 그룹이멜이 폭주해 문자가 날라온다. 밤 10시 지나서 오는 문자는 딸 아니면 아들이다. 산달을 두 달 남짓 남겨둔 딸은 별의별 애기용품과 먹고 싶은 음식 사진 보내느라 안달이고 첫 집 장만해 흥분한 아들은 집 리모델링하는 사진으로 문자판에 도배질을 한다. 오늘이 내일이고 사는 게 거기서 거기인 나는 별다른 특보가 없어 짤막하게 원더풀! 그레이트! 뷰티풀! 등등 형용사만 반복하기 일쑤다. 어떤 때는 쾌속으로 날아오는 문자 허걱거리며 답신하기도 성가셔 자는 체하고 아침에 문자를 열어 보면 "울 엄마 맞어? 자식들 문자 씹던 나쁜 엄마!"라고 쌍나팔을 분다. 그래도 좋다! 아직은 엄마 둥지 찾는 종달새들이 지지배배 소란 피우며 닥달하는 이 소중한 시간들이.

세기의 결혼식을 감행해 백마 탄 왕자 대신 든든한 기사 만나 알콩달콩 살림 차린 딸이 임신해 우 서방(할배)은 첫 손녀 볼 생각에 너무 감격해 표정 관리 중이다. 여자에게 통 관심이 없던 철부지 막내아들에게 좋아하는 여자가 생겼다는 소식을 들은 지는 몇 년이 됐다. 그동안 아들은 일심단편 치밀하게 공략, 여친 마음 사는데 드디어 성공했다. 정식으로 프로포즈 하기 전 엄마가 먼저 만나야 한다나! "네 맘에 드는 여자 골라 니네들 좋으면 그만인데 새삼스레 무슨 절차?"라고 했지만 내심 쾌재를 부르며 아들의 여친 만나러 샌디에이고로 향했다.

비행기가 푸른 창공을 가르며 뭉게구름을 스칠 때마다 가슴이 벅차오르고 아리다. 꼭 쥐면 부서질 것 같은 손가락, 참새처럼 숨을 파닥이며 가슴을 파고 들던 작디 작은 몸뚱아리, 눈 마추칠 때마다 옹알이하며 꼼지락거리던 작은 입술. 그 아름답고 빛나던 시절이 정말 존재했던가? 세월은 그 여린 생명을 내 품 속에서 앗아가 해맑은 소년으로 자라게 하고 우람한 청년으로 만들어 제 짝 찾아 둥지를 떠나게 한다. 사랑하는 여자 만나 한 남자로 새로운 인생을 꿈꾸는 내 아들.

이 기쁘고 즐거워할 순간에 몰려드는 허전한 가슴이란. '딸은 영원한 자식이고 아들은 장가 가면 남이 된다'는 말을 주변에서 너무 많이 들은 탓일까.



철없는 남자가 어른이 되기 위해선 여자가 필수다. 입히고 먹이고 혼신을 다해 키워준 여자는 아들에게 사랑하는 여자가 생기면 단연코 등수에서 밀린다.

'한 여자가 한 남자를 자신의 아들로 키우는 데 20년이 걸린다. 그리고 어떤 다른 여자가 그를 바보로 만드는 데는 20분이면 족하다'라는 헬렌 로런드의 말이 생각난다. 내 자식 바보 만들지 않는 여자라면 누구든 괜찮다고 마음을 다진다. 자식은 처음부터 소유물이 아니였다. 내 인생의 찬란한 선물이었을 뿐.

아들이 달라졌다! 어린애 티를 벗고 성숙해지고 책임감이 있어 보인다. 잡고 있던 여친 손을 슬그머니 놓고 내 손 잡는 여유를 보인다. 아들이 드디어 남자가 됐다. 사랑은 모든 것을 정복한다. 사랑은 기적을 낳는다. 모든 것을 이긴다. 스탕달은 '연애란 인생에서 맛볼 수 있는 최대의 기쁨이고 인간에게 주어진 광기어린 일이다'고 했다. 자식을 키우는 건 어머니지만 남자로 변신시키는 것은 사랑하는 여자다. 내가 아닌 아들의 여자가 누릴 생의 월계관이 영원히 아름답고 빛나기를 바란다. 그래서 아들이 행복할 수만 있다면 나의 아픈 빈자리여 안녕.

잘 살아라 내 아들. 옹기종기 머리 맞대고 아들 딸 주렁주렁 낳고 큰 나무로 무성한 잎새 키우며 잘 살아라. 죽기 아니면 사랑하기로 잘 살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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