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별 뉴스를 확인하세요.

많이 본 뉴스

광고닫기

기사공유

  • 페이스북
  • 트위터
  • 카카오톡
  • 카카오스토리
  • 네이버
  • 공유

[동서교차로] 앙증맞은 봄의 사랑을!

이 기 희 / 윈드화랑 대표·작가

봄에는 풀꽃 같은 사랑을 하자. 겨우내 말라붙은 차가운 손 비비며 시린 무릎 마주하고 깊고 아늑한 포옹을 하자. 꽃샘추위가 시샘바람을 불러오고 발목까지 차오르는 잦은 봄비로 슬픔이 목까지 차올라도 찬연하게 펼쳐질 내일의 봄을 맞이하자. 계절을 잃은 봄눈이 하릴없이 휘날리는 날에도 가지들은 손톱만한 꽃봉오리를 몰래 내밀며 기다림의 시간을 견뎌냈지. 나무들은 겨우내 신음 소리를 내며 쉰 목소리로 살아있음을 서로 확인하며 세레나데를 불렀다. 생명은 죽은 것들 가운데서도 영생으로 반짝인다. 보이지 않는 것들을 찾기 위해 모질게 버텨낸 시간들은 계절의 마지막이 아니라 시작이었다. 포기할 수 없는 내일의 햇살이였다. 계절 따라 세상 풍경이 펼쳐졌다 사라진다 해도 생의 힘든 순간을 버티게 해 준 풀꽃 같은 끈질긴 그대 사랑에 감사한다. 생이 지치고 힘들어도 그대가 불러준 내 이름은 부활의 봄이 오기까지 풀꽃으로 모진 생명줄 잡는다.

사랑은 굴복이다. 화석으로 가슴에 둥지 틀어 나를 견디게 하고 낮아지게 한다. 나를 버리고 내 속을 관통하는 또 하나의 존재를 찾아내는 긴 여정. 그 찬연한 아름다움에 몰두해 열정의 활화산에 나를 태우는 일이 사랑이다. 보잘 것 없는 삶이라도 살아있음에 감사하고 밟히고 짓눌려도 목숨줄 놓지 않는 작지만 여문 풀꽃 같은 사랑, 그 애절한 사랑 이루기 위해 온 천지에 봄기운이 찬란하다.

풀꽃은 풀에 피는 꽃이다. 작고 초라해서 눈여겨보지 않으면 그 예쁜 얼굴을 놓치기 싑다. 풀은 초본식물으로 목질이 아니기 때문에 줄기가 연해 밟히면 부서진다. 풀꽃에는 이름을 알지 못하는 꽃들이 많다. 이름이 없거나 아무도 이름 불러주지 않아 그냥 무명초로 자란다. 물옥잠 물양귀비 흰털괭이눈 도깨비가지 물꽈리아재비 별꽃아재비 겹꽃삼잎국화 멧미나리 애기부들 자귀풀 바람하늘지기 꽃방동사니 기생초 게밀쑥방망이 땅빈대 만수국아재비 왜당귀 도루박이할미꽃 패랭이꽃 개양귀비 배발톱 새삼개구리밥 설악초 쐐기풀 붉은강낭콩 꽃받이 잇꽃 등, 세련되지 않아서 촌스럽지만 정겹다. 고향집에서 덕순 언니, 옥이 누나라고 부를 때처럼 이름만 불러줘도 당장 내 곁으로 달려올 것 같다.

'강물은 흐르다가 멈추고/새들은 날아가 돌아오지 않고/하늘과 땅 사이의 모든 꽃잎은 흩어져도/보라/사랑이 끝난 곳에서도/사랑으로 남아있는 사람이 있다./스스로 사랑이 되어/한없이 봄길을 걸어가는 사람이 있다'. -정호승 시인의 '봄길' 중에서



풀꽃은 얼굴을 가리고 산다. 눈여겨보지 않으면 그 참한 아름다움을 알 수 없다.

한번 떠난 사랑은 돌아오지 않는다고, 가장 인간적인 사랑이 신의 저주가 되는 것이라고 당신은 말했었지. 사랑은 순종이라고 포기 못할 선택이라고 가르쳐 주었습니다. 작은 것에서 세상을 발견하고 가장 낮은 곳에서 하늘을 바라보는 그런 사랑, 우주를 채우고도 남을 찬연한 빛이 풀꽃의 사랑 속에 담겨 있습니다.

풀꽃은 울지 않는다. 눈물을 닦아줄 아무도 없기 때문이다. 어릴 적 골목길에서 넘어졌을 때 엄마가 안 보이면 툴툴 털고 일어났다. 내 눈물은 나를 위한 것이 아니라 나를 사랑하는 누군가에게 보내는 구원의 손짓이었다. 어미가 세상을 떠난 지 수년, 이제 더 이상 칭얼대지 않는다. 남의 것 탐내지 않고 작아도 비루해지지 않고 그대 발 아래 납짝 엎드려 볼품없고 촌스런 봄의 사랑을 기다린다.

이 봄엔 무턱대고 사랑을 하자! 풀꽃 같이 작고 앙증맞은 봄의 사랑을!


Log in to Twitter or Facebook account to connect
with the Korea JoongAng Daily
help-image Social comment?
lock icon

To write comments, please log in to one of the accounts.

Standards Board Policy (0/250자)


많이 본 뉴스





실시간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