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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뜨락에서] 어느 봄날 오후

김 동 주 / 수필가

어느 사이 돌아보니 온 천지가 노랑과 연두로 물들어 가고 있다. 잔디 사이에서 보이지도 않더니 여기저기에서 혹독한 계절을 잘 견디어 냈다고 자랑스럽게 한 무리의 노랑이 솟아오르고 있다. 그 옆에는 밥알보다 작은 흰 풀꽃들이 떼 지어 피어나고 있는 것은 볼수록 대견스럽다. 무심한 발들이 마구 밟고 지나가는 것을 보니 내 수족이 짓뭉개지는 느낌이다. 볼품없는 꽃이지만 저들은 이 순간을 위해서 일년을 수많은 발길에 밟히며 참아왔다. 그리고 정성껏 피워 낸 최고의 순간마저도 하루 해를 넘기지 못하고 땅을 꽃잎으로 물들여야 했다. 꽃들의 수액으로 물들인 푸른 풀밭을 여러 달 보지 못한 반가운 모습들이 땅을 쪼아대며 영역과 먹이의 위치를 신호하며 적들을 살피고 있는 모습이 안쓰럽다.

추위를 피해서 남으로 갔던 새들이 길을 잃지도 않고 인간 삶에서 버려진 환경오염을 용케도 피하여 자유롭게 돌아와 다시 볼 수 있다는 것은 행복한 만남이다. 그런데 지금은 한국에서도 제비를 보기가 어렵단다. 거의 콘크리트 건물이라 그들이 집을 지을 수가 없어서 돌아오는 제비가 드물다고 한다. 길고 긴 겨울밤 동네 청년들이 모여 놀다가 초가지붕 처마에 추위를 피해 단잠을 자고 있는 참새들을 잡아서 구워 먹던 시절도 있었지만 옛이야기다.

가끔 나는 뒷산 솔바람에 실려 들려오는 뻐꾸기 울음소리를 불러내어 본다. 어린 시절 소리가 너무 좋아 얼마나 예쁜 새인지 만나보고 싶어서 뒷산을 혼자서 헤매기도 여러 번이었다. 그러다가 내가 어른이 되고 난 후부터는 너무도 이기적인 뻐꾸기의 생태에 나의 사랑은 실망으로 변했다. 결국은 지금까지 한번도 만나지 못했지만 지금도 우리 집 뒷산에서는 그때 그 힐링의 소리, 자연의 소리를 들을 수 있을지 궁금하다.

몇 년 전 봄비가 촉촉히 내리는 날 센트럴파크에서 새 관찰 클래스에 참가할 기회가 있었다. 선생님이 가리키는 나무 위를 겨우 찾았을 때는 내가 만나야 할 그 특별한 새는 매번 날아가고 난 후여서 쉬운 일이 아니었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조류 책에 나와 있는 사진으로 만족해야 했다.



우리 집 주변에도 많은 종류의 새가 계절에 따라 날아오고 떠나간다. 그들은 우리 가족들이 하루에도 수십 번 오가는 길목에도 둥지를 만들고 알을 낳고 새끼를 기른다. 아직도 어두운 첫새벽부터 새들의 지저귐은 우는 소리인가 노래하는 소리인가? 아니면 짝짓기 상대를 찾고 있는가, 그것도 아니면 자신들의 영역을 방어함인가. 이들의 지저귐은 멀리 퍼져서 새벽잠을 방해한다.

인디언들이 그냥 서 있는 나무들도 하나의 종족이라고 분류했다면 이 새들 또한 프란치스코 성인의 친구인 한 종족임에는 틀림없다. 서로 다른 소리, 다른 크기, 다른 색깔로 같은 유전자끼리 짝을 지어서 함께 모이를 찾고 함께 노래한다. 그리고 그들은 지구상의 어떤 동물이나 곤충보다도 시력이 뛰어나다고 한다. 새들은 사람보다도 4.8배나 멀리 볼 수 있고 특히 타조는 인간의 10배 이상 시력이 좋아서 20km까지도 볼 수 있는 능력이 있다고 기록되어 있다. 인간이 만물의 영장이라고 해도 시력에서는 새를 당할 수가 없나 보다.

몇 년 전부터 우리 집에 크지도 작지도 않은 새 한 쌍이 찾아온다. 이들도 철새라 가을에 갔다가 봄이면 어김없이 돌아온다. 야채 밭을 파헤치지도 않고 먹을 것을 찾아서 잔디밭을 부리로 쪼아대지도 않고 조용하다. 이름도 모르지만 색도 요란하지 않은 회색과 브라운의 중간쯤 된다고 말할 수 있겠다. 어린 새끼를 데리고 다니는 것도 본 적이 없고 둥지가 어디인지도 찾을 수 없다. 한 쌍이 베란다 난간에 앉으면 몇 시간이고 사람이 가까이 가도 그냥 졸고 있는 모습이다. 탐욕이라고는 없고 세상사를 달관하고 살아가는 늙은 노부부를 보는 것 같아서 마음이 짠하다. 나른한 오후 돌아온 많은 친구들의 지저귐 속에서 소리 없는 나의 탄성도 바람결에 긴 그림자 되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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