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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인 & 스토리] 수퍼 터스칸과 안티노리 가문

배문경
법무법인 김앤배 공동대표변호사·Wine Scholar Guild 정회원

이탈리아는 프랑스와 함께 항상 1, 2위를 다투는 와인 생산국이다. 그 중에서도 끝없는 산들과 세계적인 파스타, 르네상스 시대부터 존재했던 건축물이 즐비한 터스카니는 프랑스 보르도에 비유될 정도로 명품 와인산지로 유명하다. 프랑스 보르도에 5대 샤토가 있다면 터스카니에는 수퍼 터스칸이 있고, 수퍼 터스칸의 뒤에는 바로 말케시 안티노리 가문이 있다. 이탈리아 와인하면 닭 모양이 그려진 키안티를 떠올리는데, 바로 이 키안티의 고향이 터스카니다. 그러나 터스카니에는 키안티 외에도 이탈리아에서 생산되는 포도인 산지오베세 포도로 만든 부르넬로 디 몬탈치노 와인, 그리고 수퍼 터스칸이 같이 존재한다.

며칠 전 1988년산 카스텔로 칼미그리아니라는 브루넬로 디 몬탈치노를 지인 덕분에 마실 기회가 있었다. 체리사탕과 초콜릿, 말린 장미향이 가득한 잔에 하늘하늘한 빛깔과 부드럽고 끝이 없는 그 맛을 잊지 못한다. 이 브루넬로 디 몬탈치노에 '꽂혀서' 그 다음날 와인숍에 전화해 남은 10병을 몽땅 사재기했다. 거의 30년이나 됐음에도 훌륭한 자태를 간직한 와인, 그 와인의 세계적 명성을 몸소 체험하는 소중한 순간이였다. 이 와인을 접하며 다시 한번 터스카니를 떠올리게 됐고, 세계적 명품 와인으로 떠오른 수퍼 터스칸의 역사와 유래가 또 다시 궁금해졌다.

앞서 언급했던 프랑스 보르도에 5대 샤토가 있다면 수퍼 터스칸이 탄생한 터스카니에는 안티노리 가문이 있다. 말케시 안티노리 패밀리라는 와인회사는 세계에서 가장 역사가 오래된 기업 중 하나로 꼽힌다. 1385년 설립됐으니 지금부터 약 650년 전이다. 조선이 1392년 개국됐으니, 조선 개국보다 더 일찍 이 와인회사가 생긴 셈이며 현재는 26대손이 이 와인회사를 운영하고 있다.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이 가문에서 수퍼 터스칸을 탄생시킨 3명의 거장이 있다. 피에로 안티노리와 그의 동생 로도비코, 이들의 이모부인 마리오 인치사 델라 라케타 등이다. 이모부는 그의 부인으로 인해 안티노리 가문과 연결되지만 사실상 수퍼 터스칸의 원조이다.

수퍼 터스칸하면 떠오르는 와인은 사시카이아이다, 사시카이아는 '자갈같은'이라는 뜻의 아기자기한 단어다. 마리오 인치사 델라 라케타는 피에몬트의 귀족 출신으로 터스카니 지방의 해안지역인 볼게리 지역에 대규모 포도밭을 일궜다. 라케타는 프랑스 보르도 와인에 심취한 나머지 1944년부터 카베르네 소비뇽을 재배하기 시작했고, 1968년 100% 이탈리아에서 재배된 카베르네 소비뇽으로 와인을 만들어 출시했으니 이 와인이 바로 사시카이아이다. 볼게리 지역은 키안티처럼 산악지역이 아니라 지중해 해안지역으로 이 지방의 토종 품종인 산지오베제보다 카베르네 소비뇽 등 외래산 품종이 더 잘 자라고 훌륭한 맛을 냈다고 한다. 1978년 영국의 와인 전문지 디캔터가 주최한 카베르네 소비뇽 콘테스트에 사시카이아 1972년 빈티지를 출시, 프랑스산 최고급 와인을 누르고 1등으로 뽑힘으로써 세계적 명성을 얻게 된다.



사시카이아가 세계적 명품와인으로 등장하는 데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 마케시 안티노리 가문의 25대손 피에로 안티노리다. 라케타는 조카인 피에로 안티노리의 권유로 집에서 친구, 친지들과 마시던 사시카이아의 상품화를 시도했고, 피에로에게 마케팅을 맡겼던 것이 대박으로 이어졌다. 1938년생인 피에로는 1966년 28살 때 이탈리아 공군에 입대하려다 때마침 포도 흉작으로 위기에 처한 와인사업을 구하는 '소방수'로 투입됐다. 어머니의 여자 형제의 남편, 즉 이모부인 라케타의 사시카이아 마케팅에 성공한 뒤 그 자신도 자신의 아버지 니콜로 안티노리의 키안티 클라시코의 포도밭에서 와인생산에 뛰어든다. 그렇게 해서 탄생한 것이 바로 티나넬로 와인이다. 사시카이아보다 3년 늦은 1971년 첫 출시된 이 와인은 터스카니의 산악 지역인 키안티에 최적화된 토종품종인 산지오베세의 특성을 최대한 살린 것이 특징이다. 산지오베세 85%에 카베르네 등 다른 품종을 블렌딩한 것이다. 이 와인의 탄생으로 수퍼 터스칸이라는 말이 탄생했다.

피에로가 탄생시킨 또 하나의 수퍼 터스칸은 바로 '태양처럼'이라는 뜻을 지닌 솔라이아다. 솔라이아 역시 키안티 지역에서 생산된 와인이지만, 블렌딩 비율을 바꿈으로써 색다른 맛을 선보인다. 티나넬로가 산지오베세 중심이라면 솔라이아는 카베르네 소비뇽를 주연으로, 산지오베세는 조연으로 캐스팅했다. 1979년 첫 출시됐고 2000년 와인스펙테이터 선정 100대 와인 중 1위가 바로 이 솔라리아였다.

피에로의 동생 로도비코 안티노리 역시 수퍼 터스칸의 신화로 통한다. 1943년생으로 피에로보다 5살 어린 로도비코는 형과 달리 볼게리 지역에서 와인 사업에 뛰어들었다. 100% 메를로 품종으로 생산된 마세토가 바로 로도비코의 첫 작품이다. 마세토는 점토질이 많은 이 지역의 토양에서 따온 말로 '작은 점토조각'이란 뜻이다. 1986년 첫 출시된 마세토는 단일 품종이기 때문에 극히 적은 수량만 생산되며, 화려하고 매혹적 향기, 힘있는 타닌이 특징으로 한병에 무려 670달러를 호가한다.

로도비코의 또 하나의 작품은 2001년 스펙테이터 선정 100대 와인 중 정상에 오른 올네라이아이다. 올네라이아는 고귀한 여성의 자태, 로마어에서는 골드, 물푸레나무의 물이 오른 모습 등을 뜻하는 말이라고 한다. 이 와인 역시 해안 지역인 볼게리에서 생산됐지만 메를로 뿐 아니라 카베르네 소비뇽, 카베르네 프랑크, 프티 베르도 등의 품종을 블렌딩했다. 마치 프랑스 보르도의 최고급 와인을 연상케 한다는 것인 와인마니아들의 평가다. 이 와인이 2001년 세계 정상으로 등극하자 세계적인 로버트 몬다비 가문이 바로 그 다음 해인 2002년 지분의 50%를 투자하기도 했고 현재는 다시 이탈리아인이 대주주가 됐다.

이처럼 수퍼 터스칸의 탄생에는 650년 역사를 자랑하는 안티노리 가문이 큰 역할을 한 것이다. 정리하자면 라케타가 볼게리에서 원조격인 사시카이아를, 큰 조카인 피에르는 키얀티에서 티나넬로와 솔라이아를, 작은 조카인 로도비코는 볼게리에서 마세토와 올네라이아를 탄생시킨 것이다. 현재도 이들 형제는 건재하지만 이제 이 안티노리 패밀리 양조장은 26대손인 피에로의 세 딸을 중심으로 운영되고 있다. 안티노리 패밀리가 건재하는 한 수퍼 터스칸의 신화는 계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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