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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며 생각하며] 뜨거운 한 끼의 저녁이라도

김 도 수 / 자유기고가·뉴저지

'밥을 지은 후 솥 씻은 물을 마심으로써 한국인들은 식사를 끝낸다'라는 말로 우리의 숭늉 문화를 재미있게 묘사한 사람이 6.25 당시 가장 먼저 한국전에 참전한 미8군 산하 24사단장 윌리엄 딘(1899~1981) 소장이다. 그는 3년의 한국전쟁 중 불과 20일간 참전한 뒤 낙오자로 36일을 헤매다 전라북도 진안읍 운산리에서 3만 원(당시 5달러)에 눈이 먼 농부 한두규의 밀고로 인민군에 잡혀 1953년 10월 4일 포로교환 때 풀려난 비운의 장성이다.

이런 딘 소장에게 미국은 미국이 줄 수 있는 최고의 훈장을 수여했다. 그 이유는 1950년 7월 1일 한강을 도하한 북한군이 탱크를 필두로 파죽지세로 남하할 때 불가항력 상황 속에서 3.5인치 바주카포로 탱크를 공격하는 등 지연작전을 잘 수행하였음은 물론 포로 기간 동안 끝까지 인천상륙작전 같은 중요 군사기밀을 지켜낸 그의 군인정신을 높이 평가했기 때문이다.

딘 소장이 맥아더 사령부로부터 서울-대전을 잇는 중요 축선에서 북한군 주력부대를 막아 내라는 특명을 받은 시점은 1950년 6월 30일이다. 이후 딘 소장이 스미스 소령을 대장으로 한 406명의 특공대를 일본에서 한국에 공수시켜 7월 5일 오산 죽미령에서 첫 접전을 하지만 계란으로 바위 치기였다. 그리고 본대인 19.21.34연대가 부산에 상륙하여 썰물처럼 밀려오는 적군을 막아 보려 애썼지만 워낙 중과부적이라 엄청난 인명 손실만 남긴 채 퇴각을 반복한다. 평택.천안.조치원.공주를 거쳐 7월 18일에는 대전까지 밀리면서 사단 전멸이라는 참담한 위기를 맞이하지만 고립무원으로 보고할 곳도 의논할 곳도 없다. 결국 운명의 7월 21일, 딘 소장은 마지막 남은 1개 소총 소대와 50여 대의 차량을 이끌고 나침반도 지도도 없이 달빛에 의지한 채 동남 방향으로 탈출을 감행했으나 길을 잘못 들면서 끝없는 그의 비운은 시작되었다.

'전쟁의 승패는 적이 미처 방어하지 못하는 곳에 공격을 집중하여 적이 전혀 뜻하지 못하는 의표를 찌르며 나아갈 때 승리를 손에 넣는다.' 손자병법에 나오는 말이다. 한국전에서 이 전략을 가장 잘 활용한 사람을 들라면 김일성과 맥아더가 아닌가 싶다. 김일성은 개전 후 단 3일 만에 서울을 접수했고 이후 속전속결로 유엔군이 개입하기 전에 대전.대구.부산까지 수중에 넣으려 한 반면 맥아더는 김일성이 전혀 상상하지 못한 인천을 상륙 작전지로 택해 그의 허를 찔렀다. 아무튼 김일성의 이 전략은 전쟁 초기 어느 정도 성공하는 듯했지만 한.미 연합군의 필사적인 지연전술에 밀려 대전 함락에 20여 일을 소진하면서 그의 의도는 빗나갔고 이후 승기를 빼앗기게 된다. 그런 의미에서 딘 소장의 초전 20일은 20일 이상의 가치로 평가되는 대목이다. 그가 살신성인의 무용으로 적의 남하를 저지했기에 18일 포항에 상륙한 제1기병사단이 계획대로 20일 영동에 전개될 수 있었고 차츰 전열을 정비한 한국군이 요소요소에서 진지를 구축하고 적을 격파해 마지노선 같은 낙동강 방어전선이 제 역할을 충실히 감당할 수 있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미국 입장에서 한국전쟁은 2차대전을 포함한 이후 4개의 전쟁 가운데 가장 많은 인명 손실과 전쟁 비용이라는 진기록을 남기고 있다. 총 178만9000여 명이 참전한 가운데 3만6940명이 사망했고 9만2134명 부상, 8000여 명의 행방불명 등 총 13만7250명의 인명 피해를 입었다. 그리고 천문학적인 5000억불의 실전 비용과 2000억불의 복구 및 경제개발 원조 비용이 제공되었다. 미국 내 이름 있는 고위 장성이 총출동하다시피 한 가운데 많은 희생자를 배출하였고 그들의 자녀 또한 142명이 출전하여 35명이 전사했다. 반면 적군인 중공군 측에서는 모택동의 아들 모안영이 1950년 10월 평안북도 동찬군 대유동에서 미군 전투기 폭격에 의해 사망했다.

이번 주일은 6.25 발발 후 67주년이 되는 날이다.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는 나라, 만나본 적도 없는 국민을 지키기 위해' 헌신했던 귀한 참전 어른들이 우리 주위에 많다. 다시 한번 그날의 아픔을 기억하며 우리라도 그들을 찾아 노고를 치하하고 감사하며 뜨거운 한 끼의 저녁이라도 대접함이 도리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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