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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물의 죽음은 자신의 죽음

[백성호의 현문우답] 예수를 만나다 <34> 바리새인들도 감탄한 예수의 현답<상>

올리브 산 위로 올라갔다. 예루살렘 성(城)이 한 눈에 들어왔다. 둥근 황금빛 지붕. 지금은 이슬람 성전이다. 모스크 특유의 문양으로 치장된 이슬람의 3대 성지다. 예수 당시에는 달랐다. 그곳에 유대교 성전이 있었다. 이집트를 탈출한 유대인들이 광야를 떠돌 때는 천막으로 성막을 쳤다. 그 안에 십계명을 새긴 돌판을 모셨다. 그게 성전이었다. 신을 만나는 장소였다. 유대인은 가나안 땅에 나라를 세운 뒤에야 성을 쌓고 거대한 성전을 건축했다. 예수 당시에는 예루살렘 성의 한가운데 유대 성전이 있었다. 종교 국가였던 유대 사회의 심장에 해당하는 장소였다.

예수는 그곳을 향했다. 유대 광야와 사마리아, 갈릴리 일대를 돌면서 하늘의 뜻을 전하던 예수는 이제 예루살렘으로 들어가려는 참이었다. 예수와 제자들 일행은 예루살렘 동편의 올리브 산 근처까지 왔다. 제자들이 끌고 온 나귀의 등에 예수는 올라탔다. 나귀는 어렸다. 성경에는 '아직 아무도 탄 적이 없는 어린 나귀'라고 적혀 있다. 마태복음의 예루살렘 입성 대목에는 "그분은 겸손하시어 암나귀를, 짐바리 짐승의 새끼, 어린 나귀를 타고 오신다"고 기록돼 있다. 어린 나귀는 '겸손'을 상징한다. 예수는 건장한 큰 말을 타고서 위엄을 내세우며 가지 않았다. 오히려 보잘 것 없는 나귀를 타고서 '초라한 모습'으로 예루살렘에 들어갔다. 그게 예수의 마음이었다. 유대 사회의 심장으로 자처해서 들어가는 예수의 심정은 '낮춤'이었다. 그 낮춤은 단순한 겸손이 아니다. '신의 속성'을 향해 무한히 낮아지는 낮춤이다. 그게 나중에 겟세마네의 기도로 이어지고, 다시 십자가의 길로 이어졌다. 예수는 그렇게 도성으로 들어섰다.

성경에 따르면 숱한 사람이 예수의 예루살렘 입성을 환영했다고 한다.아시아의 남방 국가에서 귀한 손님을 맞을 때 꽃잎을 흩뿌리는 풍습과 통한다. 이런 술렁임 속에서 예수는 성으로 들어갔다. 누구는 예수를 알았고 누구는 예수를 몰랐다. 예수를 모르는 사람들이 물었다. "저분이 누구냐?" 그러자 군중이 답했다. "저분은 갈릴리 나사렛 출신 예언자 예수님이시오." (마태복음 21장11절) 그리스어 성경에는 이 대목이 그리스어로도 'prophetes'라고 기록돼 있다. '예언자'란 뜻이다. 이 단어만 봐도 당시 유대인들이 예수를 어찌 봤는지 알 수 있다. 그들은 예수를 세례 요한처럼 '예언자'로 여기고 있었다.

나는 올리브 산의 전망대에 섰다. 예수는 이 고개를 넘어갔다. 그리 높지 않은 고개였다. 예수에게는 '생사(生死)의 고개'였다. 여기를 넘어서 예루살렘으로 들어간 까닭에 예수는 결국 '십자가 죽음'을 맞았다. 성전 경비병들에게 체포돼서 끌려가던 날 밤에도 예수는 이 고개에 있었다. 이 산의 중턱 겟세마네에서 기도를 하고 있었다. "내 뜻대로 마시고 아버지 뜻대로 하소서"라고 기도하며 다시 한번 죽음의 고개를 넘어야 했다.



삶과 죽음은 인류의 영원한 숙제다. 예수 당시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다. 예수는 이 '답이 없는 물음'에 답을 내놓았다. 절벽처럼 아득하기만 한 삶과 죽음의 낭떠러지. 그 사이에 다리를 놓았다. 그 '다리'를 전하기 위해 예수는 예루살렘으로 들어갔다.

예수가 찾아간 곳은 '유대의 심장'이었다. 예루살렘 성전 앞에는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돈을 바꾸어주는 환전상들과 제물로 바칠 비둘기를 파는 장수들이 늘어서 있었다. 하늘에 올리는 제물의 본래 취지는 달랐다. 구약 시대에 유대인들은 자신의 집에서 태어난 가축 중 첫째 새끼를 바쳤다. 유목민이었던 유대인들에게 가축은 재산 목록 1호였다. 유대인들은 자신에게 가장 소중한 대상을 떼어내 하늘에 바쳤다. 그 제물이 피를 흘리고 불에 타는 걸 보면서 그들은 무엇을 경험했을까. 제물 대신 자신이 불타는 걸 체험하지 않았을까. 제물의 죽음을 통해 '자신의 죽음'을 경험하지 않았을까. 그 와중에 눈물을 흘리고, 회개하며, 자신을 씻어내리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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