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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뜨락에서] 손편지를 받으면

안성남 / 수필가

위문 편지를 받아 본 적이 있는가. 편지 한 통이 변함 없는 생활에 변화를 주고 색다른 느낌을 가져다 준다. 비록 그것이 어떤 권유에 의해서 그저 쓰여진 것이고 판에 박은 문장이라도 어떤 아이가 삐뚤빼뚤 나름 힘을 다하여 완성한 '위문 편지'이니 별로 위문 받을 일 없어도 칙칙한 군 생활에서 제법 위문이 됐다. 시간을 아껴 답장 한번 보내면 때로는 답장이 오기도 하고 혹은 그 한번으로 끝나버렸지만 그래도 편지 받는다는 각별한 즐거움을 주던 그런 것이었다. 편지를 받는다는 것이 그때는 아주 큰 즐거움이었던 기억이다. 친구에게서 부모님에게서 그리고 어떤 사람에게서 날아오던 편지를 몇 번이나 읽어보며 미소 짓던 일이 새삼스럽다.

당연히 그 때 받던 편지는 손으로 직접 써서 보내는 것이었다. 펼치면 바로 달려들던 낯익은 글씨들이 이름이 없어도 보낸 이를 금방 알아볼 수 있게 해주었다. 또박또박하던 꼼꼼한 학교 친구의 글씨, 흘려 쓴 한문이 물 흐르듯 이어지던 아버님의 글씨, 꼬물꼬물 벌레 기어가는 듯한 친했던 여자 친구의 글씨, 씩씩한 모습 그대로의 훈련소 동기의 글씨, 멋을 부려 한 자 한 자 새기듯 써 놓은 어느 후배의 글씨 등 받는 재미와 더불어 저마다 다른 얼굴을 만나는 기대가 함께 했다. 동료의 연애 편지를 대신 써주던 웃음 나는 기억과 더불어.

편지를 직접 쓰는 광경이나 모습이 이제는 그립거나 보고 싶은 그림이다. 잔뜩 멋을 부려서 우리는 읽을 수도 없는 알파벳으로 마치 그림 그리듯 채워놓은 고급 종이에 화려한 서명으로 마감하고 접어서 밀봉하여 건네주던 서구 사람들의 방식도 그럴 듯하다. 짙은 먹물을 넉넉히 먹인 날렵한 붓으로 조심조심 써 내리고 품격 있게 접고 고운 봉투에 넣어 가만히 건네어 주는 우리네 모습도 참으로 운치 있는 것이었다.

가끔 명절 축하 카드를 받을 때 속에 인쇄 글씨만 차갑게 있는 것보다 단 몇 줄이라도 직접 쓴 글씨로 채워지면 그 축하가 더 진심으로 다가오게 된다. 아무 감정 없이 건조한 인사말 몇 개 던져주는 것이 아니고 다가와 손 잡으며 정말로 기뻐하는 표정이 포옹 할 때 그 축하가 정말로 받아들여 진다. 혹시 화가 친구가 있어 그의 깔끔한 그림과 문장이 함께하는 편지를 받는다면 펼쳐 들었을 때 감동은 당연히 아주 특별한 색깔을 지닌다.



몸이 가서 직접 만나 이야기를 주고 받지 못하므로 인간의 대단한 발명인 글씨의 힘을 빌어 '나'를 전하는 것이 편지라는 방법이다. 만나지 못하므로 오히려 가능한 한 나의 모든 것을 실어 보내고 싶은

것이고 나의 체취 나의 진심 나의 언어를 거기에 온전히 실어보려 애쓰게 된다. 우리의 마음을 그대로 전하기에는 많이 부족한 언어의 전달력에도 불구하고 풀어놓은 그 글 속에 나의 진정이 전해지기 바라며 열심히 편지를 쓴다.

글씨가 악필인 사람들은 직접 써서 보내야 했던 시절에는 고민을 많이 해야 했다. 필체가 좋은 사람들은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자신 있게 편지지를 채워나가기도 했지만 받는 사람들은 예쁜 글씨나 못생긴 글씨나 그다지 영향 받지 않는 것 같다. 잘생긴 글씨가 아니어도 그 곳에 담긴 소식이나 고운 마음의 애틋함이 가슴을 때린다. 글씨 반듯한 것으로 말하자면 전자기기로 깨끗하게 출력 된 것을 따라 갈 것이 없겠지만 그것이 보기 좋은 만큼 감동을 주고 있는지는 의심이 간다. 편지는 원래 손으로 쓰는 것이었다. 그래야 샘솟는 마음의 물결이 온몸을 타고 흐르다가 떨리는 손 끝을 지나 정성으로 집어 든 필기 도구를 통하여 함께 펼쳐 놓은 우리들의 심상 위에 하나 둘 들어 나며 귀한 사연이 만들어 진다. 그래서 "그대 편지를 받는다면 나는 눈물을 흘릴 것"이라는 말이 그냥 하는 말이 아닌 것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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