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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뜨락에서] 잠은 요술 방망이

정명숙 / 시인

과연 잠을 대체하는 캡슐이 나올까. 최첨단의 테크놀로지로 우주여행 시 필요한 음식대용품과 비타민제도 많이 있다고 한다. 미식가들은 혀를 따라 먼 길도 마다 않지만 상황에 따라 먹어야 한다는 생리적 욕구가 부담이 될 수도 있다. 바쁜 현대인들을 위해 고단백 저칼로리의 'finger food'도 많이 나와 있다. 하지만 아직까지 수면을 대신해주는 약은 없다. 오히려 공항이나 오피스 건물들이 많은 대도시에는 시간제로 대여해주는 수면실이 속속들이 등장하는 현실이다. 세상은 초고속으로 바뀌고 있지만 아직 수면을 대체하는 방안은 없다. 인간이 음식 없이 2~3주 까지 생존할 수는 있어도 수면 없이 과연 얼마나 생존이 가능할까.

이차 세계대전을 일본에서 겪은 시어머님께서는 세상에서 가장 힘든 고통이 잠 못 자는 고통이라 하신다. 그 당시 도쿄에서 매일 밤 꼭 잠들 시간만 되면 원폭이 투하되어 극도로 잠에 굶주려 서서 눈감고 피해 다니셨단다. 잠의 굶주림이 배고픔과는 비교도 안될 만큼 고통스러웠다고 하신다. 나도 가끔 병원에서 하루 종일 힘들게 일한 날은 운전해서 집에 돌아오는 길에 걷잡을 수 없이 졸음이 쏟아져 정말 몸이 블랙홀로 빨려드는 경험을 하곤 한다. 그런 날은 잠자리에 들 때도 목화솜을 지고 가는 당나귀가 물 속으로 가라앉는 심정이 된다. 그런 때는 저녁식사도 거르고 잠에 스르륵 빠진다. 그렇게 숙면을 취하고 다음 날 일어나게 되면 어느 새 힘이 불끈불끈 솟아난다. 참으로 신기하다. 수면의 중요성은 현대인들 스스로가 더욱 절실하게 느낀다. 과학자들은 숙면이 육체와 정신의 건강, 생산성, 인지능력, 심리적 안정과 장수에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연구를 계속하고 있다. 숙면을 하게 되면 다음 날 아침이 상쾌하다. 수면 중에 피로가 풀리고 뇌세포가 충분한 휴식을 취하게 되면 다음 날은 효율적으로 보낼 수 있다. 양질의 수면은 비만.당뇨.치매의 위험을 줄일 수 있다. 수면 연구가들은 스마트 폰을 아예 끄거나 다른 방에 놓고 잠자리에 들기를 권한다. 잠들기 전에 명상을 하게 되면 잠드는 일과 깨지 않고 곤한 잠을 자는데 도움이 된다.

어떤 날은 힘든 결정을 앞두고 뇌가 진흙에 빠져 있다고 느껴질 때 그 결정을 다음 날로 미룰 수밖에 없다. 뇌세포가 충분히 휴식을 취하고 나면 다음 날 명쾌한 해답이 당신이 깨기만을 기다리고 있기도 하다. 몸이 건강하다는 말은 신체의 모든 장기가 제대로 기능을 하고 있음을 뜻한다. 어느 조그마한 한 부분이라도 균형이 깨지게 되면 벌써 컨디션이 좋지 않다. 몸은 수면을 원한다. 상태에 따라 장시간에서 며칠을 푹 쉬고 나면 건강을 되찾게 된다. 이는 수면이 면역체제를 강화시킨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아주 어렸을 적 기억이지만 너무 또렷한 일화가 있다. 아마 7~8세 정도였을까. 아버지 형제들이 많은 대가족 사이에서 자랐고 마을에 조상을 대대로 모신 선산이 지금도 있다. 일 년 내내 제사가 끊이지 않았다. 숙부.고모네 가족과 사촌 20~30명이 모여 거의 한 달에 한 번 정도 어른들은 엄숙한 의식을 치루고 우리 어린이들은 신나게 놀고 먹어댔다. 지금도 신기한 것은 실컷 먹고 잠들었다가 자정에 제사가 끝나고 나면 또 일어나 숨을 쉴 수 없을 때까지 먹고 또 먹었다. 그래도 자고 일어나면 아침에 배가 홀쭉해져 다시 배가 고팠다. 그 당시 나는 너무 어려서 먹은 음식이 어떻게 소화되는지 생리학도 전혀 몰랐고 단지 잠은 아무리 많이 먹고 자도 아침이 되면 배를 다시 고프게 하는 신기한 요술 방망이라고 믿었다. 50년 이상이 지난 지금도 나는 잠을 요술 방망이라고 믿고 싶다. 육체적.정신적으로 힘들었던 하루의 일과를 마치고 잠자리에 들어갔다 나오면 지친 육신은 햇살과 함께 다시 태어나고 정신은 중무장이 된다. 그렇게 삶은 한걸음씩 앞으로 나아간다. 삶의 리듬을 만들어주는 잠! 이대로가 좋다! 천재들이여 부디 잠 캡슐을 꿈도 꾸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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