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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건강 에세이] 라스푸틴의 활동

1904년, 러시아의 ‘미친 수도승’ 라스푸틴이 병을 치료하는 용한 능력을 갖고 있다고 소문이 퍼질 무렵 왕실에서는 경사가 났다. 황제 니콜라스와 왕비 알렉산드리아 사이에 아이가 태어난 것이다. 그들 사이에 이미 딸이 4명이 있었지만 17세기 이후 러시아 왕실에서 처음으로 왕위를 계승할 아들 알렉시스를 얻게 되었다. 전 국민이 즐거워할 경사였다. 그런데 이 아들은 마루를 기기만 해도 관절에 멍이 들고 피부가 부어올랐다. 당시에 치료가 전혀 없었던 혈우병 환자였다. 이 병은 열성 인자로 인해 유전이 되는데 유럽 왕실에서 전해 내려온 근친결혼으로 인해 후손에 나타난 것이다. 치료 방법이 없어 좌절한 부모는 자식을 과보호하고 오직 신앙심에만 의지하게 되었다. 4살에는 합병증으로 심장 질환까지 발생해서 휠체어를 타야 했는데 왕실은 모든 것을 비밀로 했기 때문에 러시아 국민은 이런 사실을 알지 못했다.

라스푸틴은 1905년에 당시 러시아의 수도였던 세인트 피터즈버그에 나타났다. 그의 명성은 이미 그곳에서도 잘 알려져 있었다. 왕비 알렉산드리아는 그를 왕궁으로 초대했다. 울리는 목소리, 강렬한 푸른 눈동자, 산발한 머리털, 자신감 그리고 무례함까지도 왕비에게는 신비한 존재로 다가왔다.

1912년 왕실은 폴란드에 있는 사냥터로 휴가를 떠났다. 여기서 왕자는 넘어져 사타구니에 멍이 생겼다가 저절로 없어졌다. 그러나 얼마 후에 흔들리는 마차를 타고 가다가 재발하더니 결국 발을 뻗지도 못할 정도로 악화 되었다. 황급한 마음에 왕비는 라스푸틴에게 전보를 보내 아들을 위해 기도해 달라고 청했다. 시의들도 왕자의 생명을 포기한 상태였다. 다음 날 라스푸틴은 답장을 보냈다. 신이 기도를 들어주셨으니 알렉시스는 완쾌하리라는 내용이었다. 그리고는 의사들이 왕자의 치료에서 손을 떼라고 조언했다. 바로 다음 날, 알렉시스의 출혈은 정지되었고 사타구니의 상처도 아물었다. 이제 왕비는 라스푸틴을 전적으로 믿게 되었다. 아들의 회복은 기적이고 라스푸틴은 기적을 불러오는 사람이다. 왕비는 의사들을 환자의 곁에 들이지 않았다.

처음에 교회 지도자들은 라스푸틴을 믿었고 그를 진정한 성자로 여겼다. 그러나 차차 그가 여자를 밝힌다는 소문이 들려왔다. 마침내 그가 수녀 한명을 강간하려 했다는 보고까지 받자 화가 난 대주교는 손에 든 십자가로 라스푸틴의 머리를 내려쳤다. 라스푸틴은 이미 시베리아에 부인과 3자매의 아버지인 기혼자였기 때문이다. 그의 난잡한 행동이 알려지자 의회는 미친 수도승을 추방하기로 결의했지만 왕비는 그를 적극적으로 두둔하고 나서서 추방은 면했다.



일차 대전이 발발하자 라스푸틴은 황제에게 전쟁에 휘말리지 말라고 권고했다. 전쟁이 벌어지면 결국 러시아 제국과 왕실은 망할 것이라고 예언했다. 그러나 황제는 독일과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에 대해 선전포고를 했다. 황제와 왕자는 전선에 나가 전투를 지휘했다.

1916년 알렉시스는 아버지 황제와 일선에 나가 있다가 심하게 코피를 흘렸다. 의사들은 속수무책이었고 왕비는 손수 밤을 새우며 간호했다. 부모는 알렉시스가 죽을 것으로 생각했다. 그런데 한 밤중에 라스푸틴이 예고도 없이 병상을 방문해 무릎을 꿇고 기도를 했다. 기도를 중얼거리더니 성호를 근 다음 왕비에게 안심시켰다. “걱정 마시지요. 괜찮을 것입니다.” 다음 날 알렉시스는 완쾌되었고 황제는 일선으로 떠날 수 있었다.

이제 왕비는 라스푸틴을 전적으로 의지해 정부의 고위직을 임명했다. 군의 요직 임명, 승진은 물론 군 사령관도 라스푸틴의 의견에 따랐다. 왕비를 통해 황제가 언제 어디서 적군에 공격할 것까지도 결정했다. 그는 꿈에서 신의 계시를 받았다고 주장했다.


정유석 (정신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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